1. 개요
`권오곤`은 대한민국 최초의 유엔 산하 국제 기구 소속 재판관이자 저명한 법조인이다. 그는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 ICTY영어) 재판관으로 선출되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재판에 참여했으며, 보스니아 내전의 핵심 인물인 라도반 카라지치 재판의 재판장을 맡아 국제 정의 실현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ICTY의 부소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영어) 당사국총회 의장으로 선출되는 등 국제 형사 사법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사회 정의 실현에 헌신했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권오곤`은 유년 시절부터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한국과 국제 법학 교육에서 높은 성취를 이루며 국제 사법 정의에 대한 깊은 동기를 갖게 되었다.
2.1. 유년 시절 및 교육
`권오곤`은 1953년 9월 2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1972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며 학사 학위(LL.B.영어)를 취득했다. 이후 198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학위(LL.M.영어)를 받았으며, 1985년에는 미국 하버드 로스쿨에서 다시 법학 석사 학위(LL.M.영어)를 취득하며 국제 법학 분야에서의 깊이 있는 학업을 이어갔다.
2.2. 사법 시험 및 연수원
`권오곤`은 1977년 제19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며 한국 사법계에 입문하는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 이후 1979년 대법원 산하 사법연수원 제9기를 역시 수석으로 수료하며, 한국 법률가로서의 기본 소양과 실무 역량을 최고 수준으로 갖추었음을 입증했다.
2.3. 국제 사법 정의에 대한 동기
`권오곤` 재판관은 네덜란드 헤이그를 방문했던 후배 판사의 이야기를 듣고,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순국한 이준 열사의 정신을 되새겼다. 특히 만국평화회의를 기념하여 세워진 평화궁에 한국인이 없다는 사실에 깊은 아쉬움을 느끼며, 국제 사회 정의 실현에 기여하고자 유엔 국제 재판관인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 선거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계기는 그가 국제 형사 사법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3. 대한민국에서의 사법 경력
`권오곤`은 국제 무대에 진출하기 전, 대한민국 법원에서 판사 및 주요 행정직을 역임하며 다양한 사법 실무 경험과 행정 역량을 쌓았다.
3.1. 법원 재직
`권오곤`은 1979년 판사로 임용된 후, 서울지방법원에서 재직하며 사법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1986년부터 1990년까지는 서울형사지방법원과 대구고등법원에서 판사로 활동했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는 창원지방법원, 수원지방법원, 그리고 다시 서울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로 재직하며 다양한 법률 분야에서 심도 있는 경험을 쌓았다. 특히 1999년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로 승진하였으며, 2001년 ICTY 재판관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대구고등법원에서 재직했다.
3.2. 대통령 보좌 및 법원 행정
`권오곤`은 법관 재직 중에도 다양한 중요 행정 직책을 역임하며 법률 행정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발휘했다. 그는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전두환 대통령의 법률 보좌관(Assistant Legal Advisor영어)으로 근무하며 청와대에서 국정 운영에 대한 법률 자문을 제공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는 법원행정처에서 기획담당관을 맡아 법원 운영 및 정책 기획에 참여했으며,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활동하며 중요 사건의 심리 및 판결 연구를 수행했다. 또한 1997년부터 1999년까지는 헌법재판소 연구부장으로서 헌법 관련 연구와 재판 지원 업무를 이끌었다.
4. 국제 사법 활동
`권오곤`은 국제 형사 사법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유엔 국제 재판관으로서 중요한 활동과 업적을 남겼으며, 이는 국제 정의 실현에 크게 기여했다.
4.1.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
`권오곤`은 2001년 유엔 총회에서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 ICTY영어) 재판관으로 선출되며 대한민국 최초의 유엔 산하 국제 기구 소속 재판관이 되었다. ICTY는 1990년대 구유고슬라비아 내전 중 발생한 반인도범죄, 전쟁범죄, 집단살해 등을 재판하기 위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가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한 국제재판소이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설립된 뉘른베르그 재판소와 도쿄 재판소 이후 최초로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로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ICTY 재판관으로서 `권오곤`은 발칸 분쟁 기간 동안 전쟁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들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을 선고하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재판을 비롯하여 여러 예심 절차, 모독 재판, 선고 재판에 참여했다. 특히 제2재판부의 일원으로서 주요 사건인 `검사 대 포포비치 외`(`Prosecutor v. Popović et al`) 사건의 재판을 담당했으며, 특정 사건을 국내 법원으로 회부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회부 재판부(Referral Bench영어)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재판소의 절차 및 증거 규칙 추가 및 수정을 담당하는 규칙 위원회(Rules Committee영어)의 위원으로도 기여했다.
4.1.1.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재판
`권오곤`은 ICTY 재판관으로 선출된 직후부터 유고슬라비아의 전 대통령이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재판을 심리하는 재판부에 참여했다. 이 재판은 1990년대 발칸 분쟁의 핵심 인물에 대한 것으로, 국제 형사 사법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4.1.2. 라도반 카라지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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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보스니아 내전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라도반 카라지치가 체포되자, 2009년 그를 재판하는 재판부가 구성되었고, `권오곤` 재판관은 이 재판부의 재판장으로 선임되었다. 카라지치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스릅스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전쟁 중 벌어진 인종 청소 등 잔혹한 범죄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되던 인물이었다.
`권오곤` 재판관을 포함한 재판부는 2016년 3월 24일 카라지치에게 징역 40년 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문은 600여 명의 증인 증언과 약 30만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소송 기록을 토대로 작성된 2,700 페이지에 이르는 초대형 판결이었다. 본 판결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참혹했던 전쟁 중 하나인 보스니아 내전의 전모와 책임을 엄격한 증거에 기반하여 명백히 밝혀냈다는 점에서 법률적,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특히 집단살해죄와 공동범죄집단(joint criminal enterprise영어), 상급자책임(superior responsibility영어) 등 뉘른베르그 판결 이래 이론적으로 현격하게 발전해 온 국제형사법 법리들을 실제 판결에 유감없이 적용했다는 점에서 국제법상 기념비적인 의의를 지니며, 뉘른베르그 판결 이후 국제형사법 역사상 가장 중요한 판결 중 하나로 평가된다.
4.1.3. 포포비치 등 재판
`권오곤` 재판관은 `검사 대 포포비치 외`(`Prosecutor v. Popović et al`) 사건의 재판을 담당했다. 이 재판은 스레브레니차 학살과 관련된 핵심 피고인들인 보스니아 세르비아인 고위 군 및 경찰관 9명에 대한 재판으로, 이들은 집단살해, 집단살해 공모, 절멸, 살인, 박해, 강제 이주, 추방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주요 피고인인 부야딘 포포비치 외에 류비샤 베아라, 류보미르 보로프차닌, 밀란 그베로, 라디보예 밀레티치, 드라고 니콜리치, 빈코 판두레비치, 즈드라브코 톨리미르, 밀로라드 트르비치 등이 함께 재판을 받았다. 이들 중 7천 명 이상을 살해한 혐의를 받던 세르비아계 군인 포포비치 등에 대해 `권오곤` 재판관은 2010년 무기징역을 비롯한 중형을 선고하며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엄정한 책임을 물었다.
4.2.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부소장
`권오곤`은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의 재판관들로부터 신망을 얻어, 2008년 11월 동료 재판관들의 선출을 통해 ICTY 부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2009년 11월에 2년 임기의 부소장으로 재선출되며 재판소의 운영과 행정 분야에서 중요한 리더십을 지속적으로 발휘했다.
4.3. 국제형사재판소(ICC) 당사국총회 의장
`권오곤`은 2017년 12월 4일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제16차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영어) 당사국총회에서 3년 임기의 차기 의장으로 공식 선출되어 2017년 12월 14일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ICC 당사국총회는 재판관 및 소추관 선출, 재판소 운영 감독, 예산 결정, 로마 규정(Rome Statute영어, 1998년 120개국 채택한 ICC 설립 근거 조약) 및 소송 규칙 개정 등 광범위한 권한을 보유한 국제형사재판소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이다. 그는 이 직책을 통해 국제 형사 사법 체계의 운영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4.4.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 선거 독립 위원회 위원
`권오곤`은 2010년부터 2011년까지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 선거와 관련하여 재판관 후보의 자격을 검증하기 위해 ICC 관련 비정부 기구(NGO) 연합체인 국제형사재판소 연합(Coalition for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CICC영어)이 창설한 독립 위원회(Independent Panel on ICC Judicial Elections영어)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이 활동을 통해 국제 사법 기구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5. ICTY 이후 활동 및 기타 직책
`권오곤`은 국제 재판소에서의 임기를 마친 후에도 국내외 법률계 및 학계에서 다양한 활동과 리더십을 발휘하며 그의 전문성을 계속해서 공유하고 기여했다.
5.1.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법연구소 소장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에서 15년간 재판관으로 활동한 `권오곤`은 임기를 마친 후 귀국하여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초대 국제법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그는 이 연구소에서 투자자-국가 간 소송(Investor-State Dispute, ISD영어) 등 국제 소송 사례 연구와 국제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을 담당하며 국제 법률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국내에 접목하고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5.2. 한국법학원 원장
`권오곤`은 국내 최대 규모이자 유일한 법률가 단체인 한국법학원의 제15대 및 제16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활동 중이다. 한국법학원은 판사, 검사, 변호사, 법학 교수 등 모든 법률 직역을 아우르는 중요한 단체로, `권오곤`은 원장으로서 한국 법률계의 발전과 화합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그는 ICTY 부소장으로 재임 중이던 2009년에는 김용담 전 대법관의 후임 후보자 4명 중 1명으로 추천되기도 하는 등 국내 법조계에서도 꾸준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6. 저술 및 학술 활동
`권오곤`은 국제 형사 재판에서의 풍부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저술 활동과 학술적 기여를 통해 국제 법학계의 발전에 기여했다.
6.1. 주요 저술
`권오곤`은 국제 형사 재판 실무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여러 학술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2007년부터 옥스퍼드 대학교의 국제형사법 잡지(Journal of International Criminal Justice영어) 편집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같은 해 `판사의 관점에서 본 국제 형사 재판의 도전`(The Challenge of an International Criminal Trial as Seen from the Bench영어)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동 저널 5권 2호에 360-376페이지로 게재했다. 이 논문은 국제 형사 재판의 실제 과정과 그 복잡성을 심도 있게 분석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7. 수상 및 영예
`권오곤`은 국제 형사 사법 분야에서의 공로와 법조계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 및 관련 기관으로부터 여러 중요한 훈장과 상을 수상했다.
- 2008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 2009년: 올해의 법조인상을 수상했다.
- 2011년: 영산법률문화상을 수상했다.
- 2013년: 한국법률문화상을 수상했다.
- 2018년: 경암교육문화재단으로부터 경암상을 수상했다.
8. 영향 및 평가
`권오곤`의 활동은 국제 형사 사법 분야와 국내 법률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리더십과 기여는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와 신망을 얻었다.
8.1. 국제법 발전에 대한 기여
`권오곤`은 국제 형사 사법 분야에서 그의 활동을 통해 국제법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라도반 카라지치 재판의 재판장으로서 그가 선고한 판결은 집단살해죄, 공동범죄집단(joint criminal enterprise영어), 상급자책임(superior responsibility영어) 등 국제형사법의 핵심 법리들을 실제 사건에 적용하며 뉘른베르그 판결 이래 가장 중요한 판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판결은 보스니아 내전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국제 형사법의 이론적 발전을 실무에 반영하여 기념비적인 의의를 지닌다.
또한 그는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법과대학의 휘트니 R. 해리스 세계 법률 연구소(Whitney R. Harris World Law Institute영어)에서 추진하는 반인도적 범죄 이니셔티브(Crimes Against Humanity Initiative영어) 자문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반인도적 범죄의 예방 및 처벌에 관한 세계 최초의 조약 제정을 지원하는 등 국제 형사법의 확립과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8.2. 사회적 평가 및 신망
`권오곤`은 탁월한 국제적 감각과 뛰어난 인화력, 친화력을 바탕으로 법조계 안팎에서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 그는 법관으로서 다양한 요직을 두루 거치며 엘리트 법조인으로 평가받았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통으로 불릴 만큼 넓은 시야와 소통 능력을 겸비하여 국내외 법률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회적 평가와 신망은 그가 국제 형사 사법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큰 자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