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이치 고마노
유이치 고마노駒野 友一고마노 유이치일본어는 1981년 7월 25일 와카야마현 가이난시에서 태어난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현역 시절 주로 수비수로 활동했으며, 특히 오른쪽 풀백과 왼쪽 풀백 포지션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는 산프레체 히로시마, 주빌로 이와타, FC 도쿄, 아비스파 후쿠오카, FC 이마바리 등 여러 J리그 클럽에서 뛰며 23년간의 프로 경력을 쌓았다. 고마노는 정교한 크로스와 뛰어난 수비 능력, 그리고 풍부한 활동량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2005년에는 J리그에서 '크로스 볼 부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가대표팀 경력으로는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2006년 FIFA 월드컵과 2010년 FIFA 월드컵에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특히 2010년 FIFA 월드컵 16강전 파라과이와의 승부차기에서 실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당시 감독이었던 알베르토 자케로니로부터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은퇴 후에는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아카데미 코치로 활동하며 유소년 선수 육성에 기여하고 있으며, J리그 공로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축구계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았다.
2. 유년기 및 유스 경력
고마노 유이치는 프로 축구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여러 고난을 극복하며 축구 경력을 쌓아왔다.
2.1. 유년기 및 교육
고마노 유이치는 1981년 7월 25일 와카야마현 가이난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포워드로 뛰었으나, 중학교 2학년 때 간사이 지역 선발팀에 소집되면서 "왼발을 잘 쓴다"는 이유로 왼쪽 사이드 하프로 발탁되며 자신의 포지션을 바꾸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여러 사립 고등학교와 클럽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996년 가을, 그의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그는 기숙사비 감면 혜택이 있는 산프레체 히로시마 FC 유스팀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같은 해 겨울 히로시마현 요시다 중학교로 전학하여 학업을 이어갔고, 1997년부터 히로시마 유스팀에 정식으로 합류하며 본격적인 유스 경력을 시작했다.
2.2. 유스 클럽 경력
고마노는 산프레체 히로시마 유스팀에서 주로 윙백으로 활약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동기인 모리사키 가즈유키와 모리사키 고지 형제와 함께 2종 등록 선수로 등록되어 프로 팀 훈련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시기 감바 오사카,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산프레체 히로시마 등 여러 클럽에서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았으며, 최종적으로 산프레체 히로시마 유스팀과 히로시마현립 요시다 고등학교를 선택하며 프로 선수로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의 동기 선수로는 모리사키 가즈유키, 모리사키 고지 형제, 하타 고스케, 마쓰시타 유키, 야마가타 교헤이, 나카야마 겐키 등이 있었다.
3. 클럽 경력
고마노 유이치는 여러 J리그 클럽에서 뛰며 꾸준하고 헌신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3.1. 산프레체 히로시마
2000년, 고마노는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프로 계약을 맺으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의 눈에 띄어 오른쪽 풀백으로 사와다 겐타로를 제치고 주전 자리를 꿰찼다. 그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그해 J1리그 2nd 스테이지 3위 달성에 기여했다. 이후에도 팀의 오른쪽 아웃사이드 레귤러로 활약했지만, 선수 생활 중 여러 심각한 부상과 질병을 겪었다.
2003년 8월, J2 28라운드 요코하마 FC전에서 왼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수술 후 입원 중에는 다리를 깁스로 고정하면서 정맥혈전증이 발병하여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끈질긴 재활 끝에 2004년 4월 나비스코컵 요코하마 F. 마리노스전에서 복귀했다.
2004년 9월에는 포도막염이 발병하여 실명 위기까지 겪었으나, 경미한 수준에 그쳤다. 2005년에는 완벽히 컨디션을 회복하여 사토 히사토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제공하며 수많은 득점 기회를 만들어냈고, 오른쪽 풀백임에도 불구하고 9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는 특히 자신의 오른발에서 나오는 크로스를 특기로 삼았으며, 포워드의 움직임에 맞춘 궤적을 연구하고 연습하여 날카롭게 휘어지는 얼리 크로스는 그의 큰 무기가 되었다. 당시 축구 전문지에서는 그를 '크로스 볼 부문' J리그 선수 중 1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2007년, 산프레체 히로시마는 수비 불안 등으로 리그 16위에 그치며 승격/강등 플레이오프 끝에 J2리그로 강등되었다. 이 시기 고마노는 히로시마의 잔류 요청 외에도 주빌로 이와타와 비셀 고베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았고, 결국 주빌로 이와타로의 이적을 결정했다. 당시 사토 히사토는 팀의 강등 이후 팬들에게 잔류를 시사하는 메시지를 남기며 팀 전력 유지를 위해 동료들을 설득했지만, 국가대표 주축 선수였던 고마노만은 즉시 설득하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고마노는 당시 임대 이적 중이던 웨슬레이를 제외하고 히로시마를 떠난 유일한 주력 선수가 되었다.
3.2. 주빌로 이와타
2008년, 고마노는 산프레체 히로시마 FC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하여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09년부터는 다나카 마코토가 떠나면서 비어있던 히로시마 시절과 같은 등번호 '5'번을 달았고, 포지션도 미드필더에서 수비수 (풀백)로 변경했다. 그는 2년 연속 J1리그 잔류 경쟁을 경험했으며, 2009년 말에는 산프레체 히로시마 FC의 복귀 요청에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히로시마의 재정난으로 복귀는 무산되었고 결국 주빌로 이와타에 잔류했다.
2010년에도 풀백으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으나, 그해 10월 한국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오른쪽 상완골 골절을 당하며 시즌 막판 경기들을 결장했다. 이 부상으로 그는 2010년 J리그컵 결승전에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주빌로 이와타는 12년 만에 J리그컵 우승을 차지했다.
2011년, 고마노는 오른쪽 풀백으로 J1리그 전 경기에 풀타임 출전하며 마에다 료이치와의 뛰어난 연계 플레이로 리그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비공식 기록, J리그는 어시스트를 공식 집계하지 않음). 2012년 1월에는 벨기에 1부 리그의 신트트라위던 VV 이적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으나, 주빌로 이와타와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었고 이적료 조달이 원활하지 않아 결국 이적은 무산되고 주빌로 이와타에 잔류하게 되었다.
2012년에도 그는 리그 전 경기에 출전하며 생애 처음으로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2013년에는 모리시타 히토시 감독의 새로운 전술 변화에 따라 풀백에서 윙백으로 포지션을 옮겼으나, 이는 팀의 부진으로 이어졌다. 그는 그해 주장을 맡아 J1리그 통산 350경기 출장을 달성했지만, 클럽 사상 처음이자 본인에게는 3번째 J2리그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2015년 시즌 후반에는 미야자키 도모히코에게 왼쪽 풀백 주전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33라운드 더스파쿠사쓰 군마전에서는 교체 출전하여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의 베테랑으로서 J1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하지만 주빌로 이와타로부터 계약 연장을 제안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젊은 선수 육성 기조에 따라 단년 계약으로 제안이 들어오자 그는 결국 팀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3.3. FC 도쿄 및 아비스파 후쿠오카
2016년, 고마노는 FC 도쿄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월 9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2016 플레이오프 촌부리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자신의 첫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근육 파열 부상을 당해 리그 개막전에는 결장했다. 같은 해 4월 3일 J3리그 3라운드 블라우블리츠 아키타전에서는 FC 도쿄 U-23 소속으로 처음으로 J3리그 경기에 출전했다.
2016년 7월, 부상과 어린 선수인 오가와 료야의 활약으로 인해 리그 경기 출전이 단 1회에 그치자, 그는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임대 이적하게 되었다. 이후 11월 22일 FC 도쿄와의 계약 만료가 발표되었고, 2017년 1월 6일 임대 이적했던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완전 이적했다. 10월 22일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와의 경기에서 J리그 통산 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016년 J1리그에서 아비스파가 최하위로 강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마노는 2017년에는 주전 선수로 활약했지만, 2018년에는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2018년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났다.
3.4. FC 이마바리 및 은퇴
2019년 1월 4일, 고마노는 2010년 FIFA 월드컵 당시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오카다 다케시가 대표를 맡고, 산프레체 히로시마 FC 시절 감독이었던 오노 쓰요시가 감독을 맡고 있던 일본 풋볼 리그 클럽 FC 이마바리에 입단한다고 발표되었다. 그는 2019년 시즌에 JFL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활약을 보였다.
2022년 10월 11일, 고마노는 23년간의 프로 축구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2022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4. 국가대표 경력
고마노 유이치는 일본의 다양한 연령대별 대표팀과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국가대표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4.1. 연령별 대표팀
2001년 6월, 고마노는 2001년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일본 U-20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왼쪽 미드필더와 왼쪽 사이드 백으로 모든 3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2004년 8월에는 일본 U-23 국가대표팀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하여 왼쪽 사이드 백과 왼쪽 미드필더로 2경기를 뛰었다. 하지만 가나와의 경기에서 왼쪽 쇄골 골절 부상을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4.2. 성인 국가대표팀
고마노는 2005년 동아시아컵에서 미우라 아쓰히로의 부상으로 대체 발탁되며 성인 국가대표팀에 처음 소집되었다. 2005년 8월 3일 중국과의 경기에서 국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에도 그는 주전 아키라 가지의 백업 선수로 자리매김했으며, 2006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고마노는 추가 발탁된 모니와 데루유키와 함께 '아테네 세대' 출신 중 소수에 불과한 선수였다.
아키라 가지의 부상으로 인해 고마노는 월드컵 본선 첫 경기인 오스트레일리아전에서 선발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동점골을 허용한 직후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드리블하며 상대 수비수에게 파울을 얻어내 추가 득점 기회를 만들었지만, 심판 판정은 파울이 아니었다 (이후 FIFA 심판위원회는 이 플레이가 페널티 킥에 해당한다고 오심을 인정했다). 하지만 수비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역전패를 당했고, 아키라 가지가 컨디션을 회복한 2차전부터는 다시 교체 선수로 출전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이비차 오심 감독 체제에서는 그의 '스피드' (다리 힘, 순발력뿐만 아니라 정확한 상황 판단에 이르는 속도를 포함)를 높이 평가받아 왼쪽 풀백 및 왼쪽 윙백의 최우선 선수로 중용되었다. 오심 감독은 항상 "생각하며 달리는" 축구를 강조했다. 그러나 오심 감독의 후임인 오카다 다케시 감독 체제에서는 우치다 아쓰토나 나가토 유토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 밀려 다시 교체 선수로 돌아갔다.
4.3. 2010 FIFA 월드컵
2010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치러진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 곤노 야스유키가 부상을 당하면서 고마노는 안정적인 플레이로 다시 주전 자리를 꿰찼다. 그는 월드컵 본선 그룹 리그 3경기와 결선 토너먼트 1경기 등 총 4경기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선발 출전했다. 그는 뛰어난 컨디션을 유지했으며, 스프린트 횟수에서는 일본 대표팀에서 고마노와 혼다 게이스케만이 4경기 모두 100회 이상을 기록했다. 또한 카메룬전에서는 시속 25.77 km/h를 기록하는 등 공수 양면에서 헌신적인 활약으로 일본의 결선 토너먼트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결선 토너먼트 16강전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는 상대 진영 깊숙한 곳까지 올라가 수차례 크로스를 올리며 공격 기회를 만들었고, 파라과이에게 밀리는 시간대에는 몸을 던지는 수비로 위기를 막아내는 등 풍부한 활동량으로 팀의 무실점에 기여했다. 경기는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고마노는 3번째 키커로 나섰다. 하지만 그가 찬 공은 크로스바를 맞고 튀어나오면서 실축했고, 파라과이는 모든 키커가 성공하면서 일본은 3대5로 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 실축으로 인해 고마노는 깊은 슬픔에 잠겼지만,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당시 감독이었던 알베르토 자케로니로부터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10년 8월 이후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 체제에서도 우치다 아쓰토와 나가토 유토의 백업으로 활동했지만, 2011년 10월 11일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타지키스탄전에서는 국제 A매치 데뷔골을 포함해 1골 2어시스트의 활약을 펼쳤다. 이 경기에서의 득점은 그의 65번째 A매치 경기에서 나온 것으로, 골키퍼를 제외한 일본 대표팀 선수 중 가장 늦게 터진 A매치 데뷔골이었다.
2013년 동아시안컵에서는 이전까지의 높은 공헌도를 인정받아 팀 주장을 맡았다. 첫 경기 중국전에서는 2실점에 관여하기도 했지만, 급조된 팀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며 일본의 대회 첫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팀에 헌신하는 자세로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으로부터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201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예비 등록 30명 명단에만 포함되었고, 최종 23인 명단에서는 제외되어 3번째 월드컵 본선 출전의 기회를 놓쳤다.
5. 플레이 스타일 및 개인 생활
고마노 유이치는 다재다능한 플레이 스타일과 더불어 유머러스한 개인 생활로도 알려져 있다.
5.1. 플레이 스타일
고마노는 주로 오른쪽 풀백과 왼쪽 풀백을 소화하는 수비수였지만, 윙백으로도 활약하며 공수 양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정확한 크로스 능력이다. 오른발을 주로 사용하지만 사실 왼손잡이인 그는, 날카롭게 휘어지는 크로스볼로 포워드들에게 수많은 득점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2005년에는 J리그에서 '크로스 볼 부문' 1위로 선정될 정도로 그의 크로스 정확도는 독보적이었다.
이비차 오심 감독은 고마노의 '스피드'를 높이 평가했는데, 이는 단순히 빠른 발을 넘어 정확한 상황 판단에 이르는 빠른 사고 능력을 의미했다. 오심 감독의 "생각하며 달리는" 축구 철학에 부합하는 선수였다. 그는 또한 꾸준한 경기 출전과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팀에 기여하며 '믿음직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5.2. 개인 생활 및 일화
고마노 유이치는 축구 외적으로도 독특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오른발잡이지만, 야구는 왼손으로 던지고 왼손으로 치며, 골프도 왼손으로 치는 왼손잡이다.
그에게는 모리카와 유키라는 남동생이 있는데, 모리카와는 아마추어 선수로 간사이 축구 리그 1부의 파나소닉 에너지 스모토 축구부에서 뛰었다. 고마노는 친한 동료들에게 '코마짱'이나 '코마'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종종 놀림의 대상이 되는 '놀림 캐릭터'였다. 야베치 FC에 출연했을 때는 나카야마 마사시에게 '코마키치'라고 불리기도 했고, 2014년 주빌로 이와타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마쓰이 다이스케는 입단 회견에서 "1년 동안 고마노를 계속 놀릴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FIFA 월드컵에서 두 번이나 착용한 일본 국가대표팀의 등번호 '3'번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2012년에는 혼다 게이스케가 3번을 양보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거절하여, 혼다는 결국 4번을 달게 되었다.
2014년부터는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소속의 '후루사토 애슬리트'로 활동했다. 또한 데오데오, 토이 스토리 3, 푸마 등 여러 상업 광고에 출연했으며, 영화 '극장판 가면라이더 가이무 사커 대결전! 황금 열매 쟁탈배!'에도 본인 역으로 출연했다. PUSHIM의 '맹세 feat.MIHIRO -마이로-'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했다.
2010년에는 와카야마현으로부터 '와카야마현 스포츠 특별상'을 수상했다.
6. 은퇴 후 경력
프로 축구 선수 생활을 마친 고마노 유이치는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2023년 4월부터는 자신의 친정팀인 산프레체 히로시마 FC의 아카데미 보급부 코치로 취임하여 유소년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같은 해 10월 24일에는 J리그 공로선수상을 수상하며 일본 축구에 대한 그의 오랜 공헌을 인정받았다. 2025년 2월부터는 산프레체 히로시마 FC 아카데미의 유스 코치로 자리를 옮겨, 더욱 심도 있는 지도자 경력을 이어갈 예정이다.
7. 경력 통계
고마노 유이치의 프로 축구 선수 경력 전반에 걸친 종합적인 통계는 다음과 같다.
7.1. 클럽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내셔널컵 | 리그컵 | 대륙 대회 | 총합 | ||||||
---|---|---|---|---|---|---|---|---|---|---|---|---|
디비전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히로시마 | 2000 | J1리그 | 0 | 0 | 3 | 0 | 1 | 0 | - | 4 | 0 | |
2001 | 24 | 1 | 2 | 0 | 3 | 0 | - | 29 | 1 | |||
2002 | 27 | 1 | 2 | 0 | 4 | 0 | - | 33 | 1 | |||
2003 | J2리그 | 23 | 0 | - | 0 | 0 | - | 23 | 0 | |||
2004 | J1리그 | 18 | 1 | 1 | 0 | 3 | 0 | - | 22 | 1 | ||
2005 | 34 | 2 | 4 | 0 | 1 | 0 | - | 39 | 2 | |||
2006 | 31 | 2 | 1 | 0 | 2 | 1 | - | 34 | 3 | |||
2007 | 34 | 2 | 3 | 0 | 5 | 1 | - | 42 | 3 | |||
합계 | 191 | 9 | 16 | 1 | 19 | 0 | - | 226 | 10 | |||
주빌로 이와타 | 2008 | J1리그 | 34 | 1 | 1 | 1 | 0 | 0 | - | 35 | 2 | |
2009 | 34 | 1 | 1 | 0 | 1 | 0 | - | 36 | 1 | |||
2010 | 23 | 0 | 4 | 0 | 0 | 0 | - | 27 | 0 | |||
2011 | 34 | 2 | 3 | 0 | 0 | 0 | 1 | 0 | 38 | 2 | ||
2012 | 34 | 3 | 4 | 0 | 1 | 0 | - | 39 | 3 | |||
2013 | 34 | 2 | 4 | 1 | 2 | 0 | - | 40 | 3 | |||
2014 | J2리그 | 35 | 3 | - | 2 | 0 | - | 37 | 3 | |||
2015 | J2리그 | 29 | 1 | - | 0 | 0 | - | 29 | 1 | |||
합계 | 257 | 13 | 17 | 2 | 6 | 0 | 1 | 0 | 281 | 15 | ||
FC 도쿄 | 2016 | J1리그 | 1 | 0 | - | - | 2 | 0 | 3 | 0 | ||
FC 도쿄 U-23 | 2016 | J3리그 | 4 | 0 | - | - | - | 4 | 0 | |||
아비스파 후쿠오카 | 2016 | J1리그 | 12 | 1 | 0 | 0 | 0 | 0 | - | 12 | 1 | |
2017 | J2리그 | 39 | 1 | - | 0 | 0 | - | 39 | 1 | |||
2018 | 24 | 1 | - | 1 | 0 | - | 25 | 1 | ||||
합계 | 75 | 3 | 0 | 0 | 1 | 0 | - | 76 | 3 | |||
FC 이마바리 | 2019 | 일본 풋볼 리그 | 29 | 1 | - | - | - | 29 | 1 | |||
2020 | J3리그 | 24 | 1 | - | - | - | 24 | 1 | ||||
2021 | 23 | 0 | - | 1 | 1 | - | 24 | 1 | ||||
2022 | 17 | 0 | - | - | - | 17 | 0 | |||||
경력 총합 | 621 | 27 | 33 | 3 | 27 | 2 | 3 | 0 | 684 | 32 |
; 기타 공식전 기록
- 2007년 J1·J2 승격 플레이오프: 2경기 0득점
- 2008년 J1·J2 승격 플레이오프: 2경기 0득점
- 2014년 J1 승격 플레이오프: 1경기 0득점
- 2017년 J1 승격 플레이오프: 2경기 0득점
; 기타 국제 공식전 기록
- 2011년 수루가 뱅크 챔피언십: 1경기 0득점
- 2016년 AFC 챔피언스리그 2016 플레이오프: 1경기 0득점
; 출장 기록
- 2000년 3월 25일: 공식전 첫 벤치 등록 - J1리그 1st 3라운드 vs 가와사키 프론탈레 (도도로키 육상 경기장)
- 2000년 4월 12일: 공식전 첫 출장 - 나비스코컵 1회전 1차전 vs 몬테디오 야마가타 (야마가타현 종합 운동 공원 육상 경기장)
- 2001년 3월 31일: J리그 첫 출장 - J1리그 1st 3라운드 vs 콘사도레 삿포로 (히로시마 광역 공원 육상 경기장)
- 2001년 5월 19일: J리그 첫 득점 - J1리그 1st 10라운드 vs 도쿄 베르디 1969 (히로시마 스타디움)
- 2005년 11월 20일: J1리그 100경기 출장 - J1리그 31라운드 vs 요코하마 F. 마리노스 (닛산 스타디움)
- 2008년 11월 23일: J1리그 200경기 출장 - J1리그 32라운드 vs 가시와 레이솔 (야마하 스타디움)
- 2012년 4월 21일: J1리그 300경기 출장 - J1리그 7라운드 vs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야마하 스타디움)
- 2013년 8월 28일: J1리그 350경기 출장 - J1리그 23라운드 vs 알비렉스 니가타 (도호쿠 전력 빅 스완 스타디움)
7.2. 국가대표 통계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일본 | 2005 | 5 | 0 |
2006 | 10 | 0 | |
2007 | 12 | 0 | |
2008 | 13 | 0 | |
2009 | 9 | 0 | |
2010 | 11 | 0 | |
2011 | 7 | 1 | |
2012 | 5 | 0 | |
2013 | 6 | 0 | |
총합 | 78 | 1 |
7.3. 국가대표 득점
# | 날짜 | 개최지 | 상대팀 | 득점 | 결과 | 대회 |
---|---|---|---|---|---|---|
1 | 2011년 10월 11일 | 나가이 스타디움, 오사카시, 일본 | 타지키스탄 | 3-0 | 8-0 |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
8. 수상 경력
고마노 유이치는 선수 생활 동안 다양한 팀 및 개인 타이틀을 획득했다.
8.1. 클럽
- J리그컵: 2010 (주빌로 이와타)
- 수루가 뱅크 챔피언십: 2011 (주빌로 이와타)
8.2. 국가대표팀
- SBS컵 국제 유스 축구: 1999, 2000
- 재팬 유스컵: 2001
-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02
- EAFF 동아시안컵: 2013
8.3. 개인
- J리그 어워드 우수선수: 2005, 2007, 2012
- J리그 베스트 일레븐: 2012
- 일본 풋볼 리그 베스트 일레븐: 2019
- 와카야마현 스포츠 특별상: 2010
- J리그 공로선수: 2023
9. 유산 및 평가
고마노 유이치는 2010년 FIFA 월드컵 16강 파라과이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하여 팀의 8강 진출 실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기 내외적인 헌신적인 태도와 꾸준함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당시 감독이었던 알베르토 자케로니로부터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일본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그의 노력과 희생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의 재능과 부상을 극복한 회복력은 그의 경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산프레체 히로시마 FC에서의 첫 주전 도약과 주빌로 이와타에서의 J리그 베스트 일레븐 선정은 그의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는 증거다. 또한 그의 오른발 크로스는 J리그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았으며, 팀의 공격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은퇴 후에는 친정팀 산프레체 히로시마 FC의 아카데미 코치로 활동하며 유소년 선수 양성에 기여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J리그 공로선수상을 수상하며 일본 축구계에 대한 그의 오랜 공헌을 인정받았다. 이 상은 단순히 선수로서의 성과를 넘어,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이라는 점에서 그의 유산과 평가를 더욱 공고히 한다. 고마노 유이치는 비록 월드컵에서의 아쉬운 순간을 남겼지만, 일본 축구 역사에서 성실함과 헌신으로 기억될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10. 같이 보기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산프레체 히로시마 FC의 선수 목록
- 주빌로 이와타의 선수 목록
- FC 도쿄의 선수 목록
- 아비스파 후쿠오카의 선수 목록
- FC 이마바리의 선수 목록
- J리그 베스트 일레븐
- J리그컵
- FIFA 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