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리샤를리송 바르보사 펠리스비누(Richarlyson Barbosa Felisbino포르투갈어, 1982년 12월 27일 ~ )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해설위원이다. 그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지만, 레프트백이나 중앙 수비수로도 뛰는 등 뛰어난 다재다능함을 보였다. 리샤를리송은 상파울루 FC에서 세 차례의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 우승을 차지하며 선수 경력의 정점을 찍었으며, 이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경험하는 등 브라질 최고 수준의 클럽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보냈다.
그의 축구 경력은 빛나는 성과와 함께 성 정체성과 관련된 끊임없는 논란에 시달렸다. 특히 2022년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브라질 남자 국가대표팀과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에서 뛴 선수 중 최초로 LGBT임을 커밍아웃한 인물이 되었다. 이러한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브라질 축구계는 물론 전 세계 스포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촉발했다. 과거 그가 겪었던 동성애 혐오적 발언과 이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 그리고 당시 판사의 편향된 판결은 스포츠계 내 인권 침해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은퇴 후 SporTV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축구장 밖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사회적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다.
2. 어린 시절 및 배경
리샤를리송 바르보사 펠리스비누는 1982년 12월 27일 브라질 히우그란지두노르치주 나탈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이며 일찍이 축구 선수로서의 길을 걸었다.
2.1. 가족 관계
리샤를리송의 가족 중 여러 명이 축구 선수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인 레라(Lela포르투갈어)는 전 축구 선수로, 리샤를리송이 뛰었던 산투 안드레에서도 활약한 바 있다. 형인 알레산드로(Alecsandro포르투갈어) 또한 축구 선수로, 2013년에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리샤를리송과 함께 한 팀에서 뛰기도 했다. 이는 형제가 같은 팀에서 함께 뛴 첫 사례였다. 또한, 그의 처남인 데쿠(Deco포르투갈어) 역시 유명한 축구 선수이다.
3. 축구 경력
리샤를리송은 1998년 이투아누 FC 유소년 팀에 입단하며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미드필더와 레프트백, 중앙 수비수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다재다능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3.1. 유소년 및 초기 프로 경력
리샤를리송은 이투아누 FC 유소년 팀에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활동하며 코파 상파울루 지 주니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02년 이투아누 FC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으며,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산투 안드레 소속으로 33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다. 산투 안드레는 그의 아버지 레라도 선수 경력 중 뛰었던 상파울루 대도시권의 ABC 지역에 위치한 클럽이었다.
그는 2003년 포르탈레자로 임대되어 16경기에서 1골을 기록했으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잘츠부르크로 임대되어 27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넣었다. 이 시기 그의 활약은 상파울루의 거대 클럽인 SE 파우메이라스의 주목을 받았다. 파우메이라스는 리샤를리송의 영입을 추진하며 그의 별명(이름인 '리샤를리송' 대신 성인 '펠리스비누'로 변경) 문제로 인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결국 리샤를리송은 파우메이라스와의 계약을 최종적으로 거절하고 라이벌 구단인 상파울루 FC로 이적하는 막판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상파울루와 산투 안드레 간의 법적 분쟁이 발생하여 상파울루 데뷔가 지연되기도 했다.
3.2. 상파울루 FC
리샤를리송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상파울루 FC에서 147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하며 선수 경력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보냈다. 초기에는 주전 기회를 많이 잡지 못했지만, 무리시 하말류 감독이 부임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하말류 감독의 지휘 아래 리샤를리송은 자신의 선수 경력 중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으며, 상파울루가 3년 연속으로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에서 우승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다재다능함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둥가 감독의 주목을 받아 아일랜드와의 친선 경기를 앞두고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둥가 감독은 리샤를리송의 뛰어난 다재다능함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클럽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리샤를리송은 동성애자라는 소문에 시달리며 끊임없는 감시와 혐오 발언의 표적이 되었다. 심지어 상파울루의 서포터즈들조차 그에게 모욕적이고 동성애 혐오적인 구호를 외칠 정도였다. 상파울루에서 오랜 기간 활약한 후 그의 경기력은 점차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니베르시타리오와의 경기, 그리고 플루미넨시 FC와의 경기와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그는 무모한 플레이로 퇴장을 당했다. 특히 플루미넨시와의 경기에서는 심판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경기장을 떠나면서는 심판에게 "그는 게이(faggot)이다"라고 폭언을 하는 등 분노를 표출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잦은 퇴장과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상파울루는 결국 그를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3.3.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리샤를리송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벨루오리존치를 연고로 하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66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그는 당시 팀의 "최고의 영입"으로 간주되며 팀의 전력 보강에 큰 기여를 했다. 주전 선수로 꾸준히 활약한 리샤를리송은 2012년 캄페오나투 미네이루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2012년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아틀레치쿠 미네이루가 13년 만에 201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 진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3년에는 그의 형인 알레산드로가 팀에 합류하여 두 형제가 처음으로 같은 팀에서 함께 뛰는 경험을 했다.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그는 2013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이라는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3.4. 후기 경력 및 은퇴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를 떠난 후 리샤를리송은 여러 클럽을 거쳤다. 2014년에는 비토리아에서 24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비토리아가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B로 강등되자, 2014년 12월 리샤를리송은 눈물을 흘리며 프로 축구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은퇴 선언 약 한 달 후인 2015년 1월 27일, 그는 은퇴 번복을 발표하고 샤페코엔시에 합류하여 13경기에 출전했다.
그 이후로도 그의 경력은 이어졌다. 2016년에는 그레미오 노보리존치노에서 5경기 1골, FC 고아에서 12경기 1골을 기록했으며, 2017년에는 구아라니 FC에서 22경기 1골을 기록했다. 2018년에는 시아놀치 FC에서 9경기 1골, 2019년에는 EC 노로에스치에서 16경기 1골, 캄피넨시 클루비에서 2경기에 출전했다. 2020년에도 EC 노로에스치에서 11경기 2골, 2021년에는 아메리카-RJ에서 7경기 1골을 기록하며 마지막으로 EC 노로에스치에서 11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추가하며 프로 축구 경력을 마무리했다.
3.5. 국가대표 경력
리샤를리송은 2008년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어 그 해에 두 차례 국가대표 경기에 출전했으며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당시 둥가 감독은 그의 다재다능함을 높이 평가하며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4. 플레이 스타일 및 포지션
리샤를리송은 다재다능함이 돋보이는 선수였다.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지만, 레프트백이나 중앙 수비수까지 소화하며 팀의 다양한 전술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었다. 그의 주요 능력은 강력한 수비력, 태클, 그리고 넓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미드필드 장악력이었다. 그는 볼 탈취에 능했으며,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특히 상파울루 FC 시절에는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팀의 3년 연속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볼 배급에도 일정 수준의 기여를 할 수 있는 선수로, 수비와 공격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5. 사생활 및 대중적 이미지
리샤를리송은 프로 축구 선수 경력 동안 자신의 사생활, 특히 성 정체성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그의 대중적 이미지와 선수 경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5.1. 양성애자 커밍아웃
2022년, 리샤를리송은 팟캐스트 '노스 아르마리오스 도스 베스티아리오스'(Nos Armários dos Vestiários포르투갈어, '라커룸의 벽장 속에서')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 커밍아웃은 그를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에서 뛰었던 남자 선수 중 최초로 공개적으로 LGBT임을 밝힌 인물로 만들었다. 그의 선언은 브라질 축구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스포츠 커뮤니티에서 성 정체성과 다양성에 대한 논의에 큰 파급효과를 가져왔으며, 성소수자 선수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공개하는 데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러한 선언을 통해 스포츠계 내의 동성애 혐오와 편견에 맞서 싸우는 중요한 목소리가 되었다.
5.2. 명예훼손 소송 및 동성애 혐오 논란
리샤를리송의 성 정체성과 관련된 논란은 2022년 커밍아웃 이전부터 그의 경력을 따라다녔다. 특히 2007년 6월 25일, 브라질의 한 신문사 '아고라 상파울루'는 유명 축구팀의 한 선수가 주간 시사 잡지 '판타스티쿠'와의 독점 인터뷰를 통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음 날, 브라질의 스포츠 해설가 미우통 네비스는 자신의 TV 쇼 '디바치 볼라'에서 파우메이라스 축구 클럽의 이사 조제 시릴루 주니오르를 초대하여 해당 선수가 파우메이라스 소속인지 질문했다. 시릴루 주니오르는 "리샤를리송이 파우메이라스에 거의 영입될 뻔했다"고 답하며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당시 언론과 대중은 이를 리샤를리송이 해당 선수라는 잠재적 단서로 받아들였지만, 리샤를리송은 이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리샤를리송이 막판에 파우메이라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라이벌 팀인 상파울루 FC로 이적한 사건은 파우메이라스의 전 축구 이사 살바도르 우고 팔라이아와의 갈등을 초래했고, 이는 파우메이라스 팀이 동성애 혐오적이라는 추측을 낳았다. 그러나 나중에 이러한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리샤를리송의 변호사 헤나투 살게는 시릴루 주니오르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마노엘 막시미아누 준케이라 필류 판사는 이 소송을 기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논란의 판결을 내렸다. 그는 축구가 "강인하고 남성적인 스포츠이지, 동성애적인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이유로 "리샤를리송은 FIFA에 의해 영원히 추방되어 다시는 축구를 할 수 없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동성애자 선수는 팀을 떠나거나 자신만의 팀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판결 이후 준케이라 필류 판사는 상파울루 법무 협의회에 15일 이내에 자신을 해명해야 했으며, 살게 변호사에 의해 다시 법정에 서게 되었다. 이 사건은 브라질 사회와 스포츠계에 큰 충격을 주며 성소수자 인권과 스포츠의 인권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5.3. 기타 대외 활동
축구 외적인 활동으로 리샤를리송은 2023년 브라질의 리얼리티 노래 경연 프로그램인 '더 마스크드 싱어 브라질' 시즌 3에 출연하여 세라믹 정수기를 코스튬 플레이하며 대중에게 또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6. 은퇴 후 경력
프로 축구 선수 은퇴 후, 리샤를리송은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며 축구계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현재 SporTV의 해설위원으로 재직하며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전문적인 분석과 견해를 전달하고 있다.
7. 수상 경력
리샤를리송은 선수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팀 및 개인 수상 내역을 달성했다.
산투 안드레
- 코파 두 브라지우: 2004 코파 두 브라지우
상파울루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 2006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 2007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 2008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
- FIFA 클럽 월드컵: 2005 FIFA 클럽 월드 챔피언십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01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2012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2013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개인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 올해의 팀: 2007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
- 볼라 지 프라타: 2007
8. 경력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출전 | 리그 득점 | 컵 출전 | 컵 득점 | 대륙 대회 출전 | 대륙 대회 득점 | 기타 출전 | 기타 득점 | 총 출전 | 총 득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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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투 안드레 | 2002 | 18 | 1 | 18 | 1 | |||||||||||||||||||||||||||||||||||||||||||||||||||||||||||||||||||||||||
→ 포르탈레자 (임대) | 2003 | 16 | 1 | 16 | 1 | |||||||||||||||||||||||||||||||||||||||||||||||||||||||||||||||||||||||||
→ 잘츠부르크 (임대) | 2003-2005 | 27 | 2 | 27 | 2 | |||||||||||||||||||||||||||||||||||||||||||||||||||||||||||||||||||||||||
상파울루 | 2005 | 11 | 0 | 11 | 0 | 2006 | 30 | 1 | 30 | 1 | 2007 | 30 | 2 | 30 | 2 | 2008 | 30 | 0 | 30 | 0 | 2009 | 28 | 2 | 28 | 2 | 2010 | 18 | 1 | 18 | 1 | ||||||||||||||||||||||||||||||||||||||||||||||||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 2011 | 32 | 1 | 32 | 1 | 2012 | 29 | 0 | 29 | 0 | 2013 | 5 | 0 | 5 | 0 | |||||||||||||||||||||||||||||||||||||||||||||||||||||||||||||||
비토리아 | 2014 | 24 | 1 | 24 | 1 | |||||||||||||||||||||||||||||||||||||||||||||||||||||||||||||||||||||||||
샤페코엔시 | 2015 | 13 | 0 | 13 | 0 | |||||||||||||||||||||||||||||||||||||||||||||||||||||||||||||||||||||||||
노보리존치노 | 2016 | 5 | 1 | 5 | 1 | |||||||||||||||||||||||||||||||||||||||||||||||||||||||||||||||||||||||||
고아 | 2016 | 12 | 1 | 12 | 1 | |||||||||||||||||||||||||||||||||||||||||||||||||||||||||||||||||||||||||
구아라니 | 2017 | 22 | 1 | 22 | 1 | |||||||||||||||||||||||||||||||||||||||||||||||||||||||||||||||||||||||||
시아놀치 | 2018 | 9 | 1 | 9 | 1 | |||||||||||||||||||||||||||||||||||||||||||||||||||||||||||||||||||||||||
노로에스치 | 2019 | 16 | 1 | 16 | 1 | |||||||||||||||||||||||||||||||||||||||||||||||||||||||||||||||||||||||||
캄피넨시 | 2019 | 2 | 0 | 2 | 0 | |||||||||||||||||||||||||||||||||||||||||||||||||||||||||||||||||||||||||
노로에스치 | 2020 | 11 | 2 | 11 | 2 | |||||||||||||||||||||||||||||||||||||||||||||||||||||||||||||||||||||||||
아메리카-RJ | 2021 | 7 | 1 | 7 | 1 | |||||||||||||||||||||||||||||||||||||||||||||||||||||||||||||||||||||||||
노로에스치 | 2021 | 11 | 1 | 11 | 1 | |||||||||||||||||||||||||||||||||||||||||||||||||||||||||||||||||||||||||
클럽 합계 | 378 | 24 |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브라질 | 2008 | 2 | 0 | |||||||||||||||||||||||||||||||||||||||||||||||||||||||||||||||||||||||||||
국가대표 합계 | 2 | 0 |
9. 유산과 평가
리샤를리송은 브라질 축구계에서 독특하고 중요한 유산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단순히 뛰어난 미드필더이자 수비수로서 팀의 성공에 기여한 것을 넘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며 스포츠계에서 성소수자 인권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의 경력은 빛나는 업적과 함께 동성애 혐오와 편견에 맞선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였다.
9.1. 축구계 LGBT 인권에 미친 영향
리샤를리송의 2022년 양성애자 커밍아웃은 브라질은 물론 전 세계 축구 커뮤니티 내의 성 정체성과 다양성에 대한 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브라질 남자 국가대표팀과 최고 리그에서 활약한 선수 중 최초로 공개적으로 LGBT임을 밝힘으로써,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축구 문화에 강력한 변화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의 커밍아웃은 다른 성소수자 선수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공개하고 편견에 맞설 용기를 얻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또한, 축구 팬과 관계자들에게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축구 환경을 더욱 포용적이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2007년 그가 겪었던 명예훼손 소송과 당시 판사의 편향된 판결은 스포츠 인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사례로 남아있다. 리샤를리송은 이러한 편견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며 축구계에 목소리를 낸 회복탄력성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유산은 축구 실력을 넘어, 포괄성과 존중의 가치를 옹호하며 스포츠계의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낸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