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background
미즈토리 히사시는 체조와 깊은 인연을 맺은 가정에서 성장하며 어린 시절부터 체조의 길을 걷게 되었다.
1.1. Birth and family
미즈토리 히사시는 1980년 7월 22일 일본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모두 전직 체조 선수였으며, 가족 체조 클럽을 운영했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본업인 목수 일 외에 직접 집 옆에 "水鳥体操館"을 지었을 정도로 체조에 대한 열정이 깊었다. 그는 5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여섯 형제자매 중 다섯 명이 체조 선수로 성장했다. 셋째 아들인 水鳥繭見미즈토리 마유미일본어는 오페라 가수이며, 사촌인 水鳥舞夏미즈토리 마나츠일본어 또한 일본체육대학 출신의 여자 체조 선수이다. 그의 혈액형은 A형이다.
1.2. Childhood and education
이러한 가정 환경 속에서 미즈토리 히사시는 유치원 시절부터 "미즈토리 체조관"에서 체조를 시작했으며, 6세부터 선수 코스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에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전국 10위권 안에 들지 못하는 등 슬럼프를 겪었다. 이에 "가족에게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오카야마현의 간사이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간사이 고등학교에서 그는 실력을 크게 향상시켰고, 1998년 전국 고교 선발대회 개인 종합에서 冨田洋之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1999년 4월에는 일본체육대학에 입학했으며, 2003년 4월에는 도쿠슈카이 체조 클럽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 Gymnastics career
미즈토리 히사시의 체조 선수 경력은 뛰어난 성과와 함께 여러 차례의 심각한 부상을 극복하며 펼쳐진 드라마틱한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2.1. Early career and significant injuries
일본체육대학에 재학 중이던 1999년 4월, 그는 전일본 체조 선수권 대회 단체전 도마 종목에서 오른쪽 대퇴골 골절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에는 유니버시아드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상위권 선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2002년에는 전일본 선수권 대회 개인 종합 결승 마루 운동 중 왼쪽 무릎의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되는 대형 부상을 또다시 겪었다. 당시 이 경기에는 미즈토리 가문의 세 형제가 모두 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년여간의 길고 힘든 재활 훈련을 거쳐 다시금 체조 선수로서의 복귀를 위해 노력했다.
2.2. 2004 Athens Olympics
장기간의 재활 끝에 2004년 5월, 그는 NHK컵 체조 선수권 대회 남자 개인 종합에서 3위를 기록하며 마침내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2004년 8월 16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는 일본 남자 기계 체조 팀의 일원으로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결승전에서는 링 종목의 첫 번째 주자로 나서며 팀의 초반 분위기를 이끌었다.
2.3. World and Asian Championships achievements
2005년 11월 24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 체조 선수권 대회에서 그는 개인 종합 은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서의 실력을 입증했다. 2006년 12월 6일 도하에서 개최된 2006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철봉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한 이 대회에서 단체전과 개인 종합에서도 각각 은메달을 추가했다.
특히 2007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세계 체조 선수권 대회에서는 극적인 상황에서 활약했다. 대회 직전 주전 선수인 鹿島丈博의 부상으로 예비 선수였던 미즈토리가 긴급 투입되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단체전 은메달(9월 6일)을 획득한 것은 물론, 개인 종합 동메달(9월 7일), 마루 운동 동메달(9월 8일), 그리고 철봉 동메달(9월 9일)을 추가하며 총 4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당시 일본 대표팀이 획득한 모든 메달이었기에, 그의 활약은 국가대표 선발 방식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10년 광저우에서 열린 2010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일본 팀의 일원으로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2.4. Later competitive career and retirement
2008년에는 왼쪽 팔 부상으로 인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13일, 전일본 사회인 체조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는 이후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훈련을 계속했다. 그러나 2012년 5월, 런던 올림픽 최종 선발전에서 14위에 그치자, 그는 결국 현역 선수 생활 은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3. Awards and honors
미즈토리 히사시는 그의 뛰어난 체조 경력을 통해 여러 영예로운 상과 훈장을 받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의 활약에 대한 공로로 2004년 11월 3일 자수포장을 수훈했다. 또한 2004년에는 사이노쿠니 공로상을 수상했다. 2007년에는 그의 탁월한 경기력과 체조계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일본 스포츠상을 수상했다.
4. Personal life
2009년 8월, 미즈토리 히사시는 세 살 연상의 여성과 결혼하며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5. Post-retirement activities
선수 은퇴 후에도 미즈토리 히사시는 체조계와 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2년 4월, 그는 오사카 오타니 대학 인간사회학부 스포츠 건강학과에서 전임 강사로 임용되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체조 강화 본부장으로 취임하여 일본 국가대표팀의 훈련과 발전을 총괄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현재 그는 게이오기주쿠 대학 쇼난 후지사와 캠퍼스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체육 교육 및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6. Anecdotes and notable events
2005년 설날, 미즈토리 히사시는 TBS에서 방영된 인기 예능 프로그램 "最強の男は誰だ!壮絶筋肉バトル!!スポーツマンNo.1決定戦"에 출연하여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뜀틀 세계 일 결정전'이라는 코너에 참가했는데, 이 대결은 사상 최초로 일본과 아테네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는 23단(높이 3.06 m)의 '몬스터 박스'를 뛰어넘어 프로그램이 공인한 세계 기록을 달성했다. 특히 그는 이 기록을 달성한 다섯 명의 선수 중 유일하게 두 발로 착지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성공을 보여주었다. 미즈토리는 아테네 올림픽 단체 종합 은메달리스트인 미국의 Morgan Hamm과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하며 그의 운동 능력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7. Legacy and influence
미즈토리 히사시는 일본 체조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32년 만에 일본 남자 체조팀이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선수 시절 겪었던 여러 차례의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의지와 인내로 복귀하여 다시금 정상급 기량을 선보인 그의 회복력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
2007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예비 선수로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팀의 모든 메달(총 4개)을 획득하는 데 기여한 그의 활약은 팀 내에서의 그의 중요성과 다재다능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성과는 그의 개인적인 명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선수 선발 방식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를 촉발시키며 실력주의의 중요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도 그는 대학 강사 및 교수, 그리고 국가대표팀 강화 본부장으로서 후배 선수 양성과 일본 체조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기여하고 있다. 체조 선수였던 부모님으로부터 이어져 온 그의 가족 체조관 "미즈토리 체조관"은 일본 체조 발전에 대한 그의 가문의 깊은 헌신을 상징하며, 그의 유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