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와 음악 활동
휴고 베커는 개인적인 배경과 전문 음악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며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가족 현악 사중주단 활동, 오케스트라 수석 연주, 유명 연주자들과의 실내악 협연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쳤다.
1.1. 탄생과 유년기
휴고 베커는 1863년 2월 13일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장 베커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아버지는 여섯 살 때부터 그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려 했지만, 어린 베커는 교회 음악회에서 들은 첼로의 음색에 매료되어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첼로로 악기를 바꾸었다.
1.2. 교육과 초기 경력
베커는 만하임 궁정 극장의 첼로 수석 연주자인 퀸딩어(Kündinger)를 시작으로 프리드리히 그뤼츠마허, 쥘 드 스베르(Jules de Swert), 그리고 오귀스트 프랑숌의 제자 에게지 등 여러 스승에게 첼로를 배웠다. 또한 드레스덴에서 카를 헤스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15세에 그는 만하임 궁정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 연주자로 임명되었고, 1880년에는 아버지와 여동생, 남동생으로 구성된 가족 현악 사중주단과 함께 순회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1.3. 연주 활동
1884년, 베커는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솔로 첼리스트로 임명되었다. 이듬해에는 프랑크푸르트 호흐 음악원의 첼로 교수로 부임했으며, 솔리스트와 현악 사중주단원으로서 각지에서 연주 의뢰가 쇄도했다. 한때 카를스루에에서 병역 의무를 수행하며 예술 활동을 중단했지만, 그곳에서 펠릭스 모틀과 교류할 수 있었다. 병역을 마친 후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온 그는 "왕립 프로이센 교수"라는 직함을 얻어 첼로 수업을 지도했으며, 휴고 헤어만을 리더로 하는 박물관 현악 사중주단(Museum String Quartet)의 일원이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클라라 슈만과 요하네스 브람스와의 교류를 심화했다.
1891년부터는 매년 런던에서 연주회를 열었으며, 카를로 알프레도 피아티의 월요일 콘서트와 토요일 콘서트에서 피아티를 대신해 연주했고, 이후 그의 후계자가 되었다. 또한 에른스트 폰 도흐나니와 첼리스트 앙리 마르토와 함께 트리오를 결성했고,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한스 폰 뷜로와 정기적으로 협연하며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베커는 외젠 이자이와 페루초 부조니와 함께 피아노 삼중주단을 결성하여 실내악을 연주했으며, 1914년부터 1921년까지는 아르투르 슈나벨과 카를 플레쉬와 함께 제3기 슈나벨 삼중주단(Schnabel Trio)을 결성하여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쳤다.
1.4. 교육 활동
1885년부터 프랑크푸르트 호흐 음악원의 첼로 교수로 재직했으며, 1909년부터 1929년까지는 베를린 고등음악학교의 첼로 교수직을 맡았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재능 있는 제자들을 길러냈는데, 그중에는 조르주 제오르제스쿠, 파울 그륌머, 엔리코 마이나르디, 루돌프 메츠마허, 베아트리스 해리슨 등이 있다. 특히 제오르제스쿠는 베커의 후임으로 앙리 마르토 사중주단의 첼리스트가 되기도 했으며, 손 부상으로 첼리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지휘자로 전향한 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휴고 베커에게서 배웠다"고 언급했다.
1.5. 만년과 죽음
베를린 고등음악학교 교수직 재임은 그의 연주 활동에 어느 정도 제약을 가져왔다고 알려져 있다. 휴고 베커는 1941년 7월 30일 뮌헨 근처 가이젤가스타이크에서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 작품과 소장 악기
휴고 베커는 첼로 연주 기법에 대한 중요한 이론서와 여러 음악 작품을 남겼으며,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 두 대를 소장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2.1. 주요 작곡 작품
- 첼로 협주곡 가장조 Op. 10 (1902년 출판)
- 사랑의 삶 (Liebesleben) Op. 7 (1894년 작곡)
- 안단테 레리죠소 (Andante religioso)
- 첼로와 피아노 반주를 위한 세 개의 소품
- 사랑의 장면 (Scènes d'amour), 듀오
- 두 개의 소품 (Deux Morceaux): 로망스(Romance), 우아한 왈츠(Valse gracieuse), 듀오
- 모음곡 《숲의 요정의 삶에서》 (Aus dem Leben des Waldschrat)
2.2. 저서
베커는 첼로 연주 기법에 대한 그의 이론적인 저서인 《첼로 연주의 메커니즘과 미학(Mechanik und Ästhetik des Violoncellospiels)》을 집필했다. 이 책은 첼로 연주의 기술적, 미학적 측면을 깊이 있게 다루어 후대 첼리스트와 교육자들에게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다.
2.3.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
그는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 두 대를 소장했는데, 하나는 1700년경 제작된 '크리스티아니(Cristiani)'였고, 다른 하나는 1719년 제작되어 현재 '베커(Becker)'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첼로이다.
3. 영향과 평가
휴고 베커는 동시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제자들을 통해 후대에까지 음악적 유산을 남겼다. 그의 연주는 동시대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3.1. 동시대 작곡가 및 제자들에게 미친 영향
휴고 베커는 동시대 작곡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막스 레거의 《첼로 소나타 Op. 28》과 《무반주 첼로 모음곡 Op. 131c의 2》는 베커에게 헌정되었다. 또한 오이겐 달베르의 《첼로 협주곡》과 에른스트 폰 도흐나니의 《콘체르티노》는 베커의 권유로 작곡된 작품들이다. 그의 제자들은 베커로부터 받은 음악적 유산을 바탕으로 각자의 음악 세계를 발전시켰으며, 그의 교육 방식과 연주 철학은 후대의 첼로 교육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3.2. 비평 및 후대 평가
1895년 빈에서 열린 콘서트에 대해 음악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베커는 그의 독특한 연주 방식과 활의 역동성으로 첼로는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순식간에 날려버린다"고 극찬했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첼로 연주자 율리우스 베키는 "베커는 종종 상반되는 독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각 유파의 연주 기법을 익히고 습득하여 자신의 예술을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들은 휴고 베커가 단순한 연주자를 넘어, 다양한 첼로 연주 전통을 통합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을 구축한 위대한 음악가였음을 보여준다.
4. 함께 보기
- 첼로
- 첼리스트
- 스트라디바리우스
- 프랑크푸르트 호흐 음악원
- 베를린 예술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