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헨드라완의 어린 시절과 배드민턴에 입문하게 된 배경을 다룬다.
1.1. 출생 및 유년 시절
헨드라완은 1972년 6월 27일 인도네시아 동자와 주 말랑의 라왕에서 태어났다. 그의 키는 1.7 m이고 몸무게는 65 kg이다. 오른손잡이 선수로 활동했다.
1.2. 교육 및 배드민턴 입문
그는 10세부터 배드민턴을 시작했으며, 배드민턴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배드민턴에 깊이 몰두했다. 이후 치파융 국립 훈련 센터에서 최고 수준의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2. 선수 경력
헨드라완의 선수 시절 주요 업적, 경기 방식, 그리고 주요 상대 선수들과의 전적을 상세히 설명한다.
헨드라완은 1990년대 초반부터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나, 초기에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로 평가받던 동료 선수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경기력은 점진적으로 향상되었고,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는 2003년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2.1. 주요 대회별 성과
헨드라완이 선수 경력 동안 참여한 주요 국제 대회에서의 성과를 연도별로 정리한다.
헨드라완은 선수 경력 동안 다양한 국제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많은 메달을 획득했다.
2.1.1. 올림픽 게임
헨드라완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여 남자 단식 은메달을 획득했다. 시드니 올림픽 파빌리온 3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중국의 지신펑을 상대로 4-15, 13-15의 스코어로 패배하며 은메달에 머물렀다.
2.1.2. 세계 선수권 대회
2001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결승전에서 덴마크의 페테르 게이드를 15-6, 17-16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1.3. 아시안 게임
헨드라완은 아시안 게임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98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 남자 단식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2002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 남자 단식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남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팀의 성공에도 기여했다.
2.1.4. 아시아 선수권 대회
199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아시아 선수권 대회 남자 단식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결승전에서 중국의 쑨쥔에게 14-18, 15-8, 9-15로 패배했다.
2.1.5. 토마스 컵
헨드라완은 인도네시아 배드민턴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서 토마스 컵에서 세 차례 우승(1998년 홍콩, 2000년 쿠알라룸푸르, 2002년 광저우)을 이끌었다. 특히 2002년 토마스 컵 결승전에서는 말레이시아의 로슬린 하시엠과의 마지막 5번째 경기를 승리하며 2-2 동점 상황을 깨고 인도네시아의 우승을 확정 짓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토마스 컵에서 항상 에이스로 출전하여 인도네시아를 여러 차례 위기에서 구하고 우승으로 이끌었다.
2.1.6. 수디르만 컵
헨드라완은 수디르만 컵에서도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199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대회에서 혼합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고, 2001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혼합 단체전 은메달을 차지했다.
2.1.7. IBF 월드 그랑프리
국제 배드민턴 연맹(IBF)이 1983년부터 2006년까지 승인한 월드 배드민턴 그랑프리에서 5번의 우승과 3번의 준우승을 기록했다.
| 연도 | 대회 | 상대 | 점수 | 결과 |
|---|---|---|---|---|
| 1993 | 프랑스 오픈 | 쇠렌 B. 닐센 (덴마크) | 15-9, 13-18, 15-11 | 우승 |
| 1995 | 스위스 오픈 | 옌스 올손 (스웨덴) | 9-15, 9-15 | 준우승 |
| 1995 | 덴마크 오픈 | 폴에릭 회위에르 라르센 (덴마크) | 18-17, 14-17, 16-17 | 준우승 |
| 1995 | 러시아 오픈 | 폴에릭 회위에르 라르센 (덴마크) | 17-14, 15-11 | 우승 |
| 1997 | 태국 오픈 | 陈刚천강중국어 (중국) | 15-9, 15-1 | 우승 |
| 1998 | 싱가포르 오픈 | 페테르 게이드 (덴마크) | 15-10, 15-8 | 우승 |
| 2000 | 일본 오픈 | 吉新鹏지신펑중국어 (중국) | 15-6, 15-17, 4-15 | 준우승 |
| 2000 | 태국 오픈 | 부디 산토소 (인도네시아) | 15-8, 15-10 | 우승 |
2.1.8. 기타 대회
그는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SEA Games)와 IBF 인터내셔널 대회에서도 성과를 올렸다. 2001년 쿠알라룸푸르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 남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1992년 브루나이 오픈 남자 단식에서 풍 페르마디에게 6-15, 1-15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1999년 베트남 호찌민 시에서 열린 아시아컵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2001년 싱가포르 아시아컵 남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 연도 | 대회 | 상대 | 점수 | 결과 |
|---|---|---|---|---|
| 1992 | 브루나이 오픈 | 풍 페르마디 (인도네시아) | 6-15, 1-15 | 준우승 |
2.2. 경기 스타일
헨드라완은 전형적인 수비 중심의 선수로, 끈질긴 리시브와 정확한 네트 플레이를 통해 상대방의 체력을 소모시킨 후 카운터 공격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많은 정상급 선수들이 그의 끈질긴 플레이 스타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특별히 눈에 띄는 에이스 샷은 없었지만, 작은 체구를 역으로 활용한 가벼운 풋워크는 매우 안정적이었고, 라켓 컨트롤 또한 능숙하여 다양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2.3. 주요 상대 전적
헨드라완은 세계 선수권 대회 준결승 및 올림픽 8강에 진출했던 선수들을 포함하여 여러 주요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다음과 같은 전적을 기록했다.
- 바오춘라이 (중국) 0-1
- 陈宏천훙중국어 (중국) 3-1
- 董炯둥츙중국어 (중국) 3-1
- 吉新鹏지신펑중국어 (중국) 0-2
- 쑨쥔 (중국) 2-3
- 夏煊泽샤쉬안쩌중국어 (중국) 4-2
- 풍 페르마디 (중화 타이베이) 1-2
- 페테르 게이드 (덴마크) 2-1
- 폴에릭 회위에르 (덴마크) 3-5
- 토마스 스튀어라우리드센 (덴마크) 1-5
- 탐 카이 췬 (홍콩) 4-0
- 풀렐라 고피찬드 (인도) 1-1
- 헤리안토 아르비 (인도네시아) 1-3
- 타우픽 히다얏 (인도네시아) 1-2
- 조코 수프리안토 (인도네시아) 0-1
- 아르디 B. 위라나타 (인도네시아) 2-0
- 이현일 (대한민국) 1-0
- 이광진 (대한민국) 1-0
- 박태상 (대한민국) 2-0
- 손승모 (대한민국) 0-1
- 로널드 수실로 (싱가포르) 0-2
- 분삭 폰사나 (태국) 1-0
3.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후 헨드라완의 지도자로서의 활동과 기여를 다룬다.
3.1. 인도네시아 대표팀 지도
선수 은퇴 후 헨드라완은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그는 처음에는 여자 단식팀 코치를 맡았고, 이후 남자 단식팀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3.2. 말레이시아 대표팀 지도
2009년부터 헨드라완은 말레이시아 배드민턴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활동하며 말레이시아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는 2024년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말레이시아 배드민턴 발전에 기여했다.
4. 개인사
헨드라완의 개인적인 삶, 특히 결혼과 자녀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4.1. 결혼 및 자녀
헨드라완은 오랜 연인이었던 전 배드민턴 선수 실비아 앙그라이니와 2001년 1월 7일에 결혼했다. 실비아 앙그라이니는 유명한 배드민턴 선수인 헨드라 세티아완의 누나이다. 부부에게는 조세핀 세비야라는 딸과 알렉산더 토마스라는 아들, 두 명의 자녀가 있다.
4.2. 자녀 이름에 담긴 의미
헨드라완의 자녀들의 이름에는 배드민턴에 대한 부모의 애정이 담겨 있다. 딸의 이름인 조세핀 세비야는 헨드라완이 2001년 세계 챔피언에 올랐던 스페인 세비야 시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아들의 이름인 알렉산더 토마스는 헨드라완이 세 차례 우승했던 토마스 컵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는데, 특히 2002년 토마스 컵 결승전에서 말레이시아의 로슬린 하시엠을 상대로 결정적인 5번째 경기를 승리했던 것을 기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5. 평가 및 유산
헨드라완은 선수로서 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올림픽 은메달과 세계 선수권 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는다. 특히 토마스 컵에서 인도네시아의 세 차례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팀의 에이스이자 위기 상황에서 빛나는 해결사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수비 중심의 끈질긴 플레이 스타일과 안정적인 풋워크는 많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국가대표팀에서 후배 선수들을 양성하며 배드민턴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그는 선수와 지도자로서 배드민턴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