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1.1. 출생 및 유년 시절
헤르베르트 프로하스카는 1955년 8월 8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의 특징적인 곱슬머리 때문에, 빈 방언으로 곱슬머리를 뜻하는 "슈네커를(Schneckerl독일어)"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1.2. 선수 시절 특징
프로하스카는 미드필더로서 기술적, 전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그는 우아하면서도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겸비했으며, 주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하며 경기를 조율했다. 특히 그의 기술, 축구 지능, 그리고 정확한 패스 능력은 정평이 나 있었다.
2. 선수 경력
프로하스카는 FK 아우스트리아 빈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국내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명문 클럽인 인테르 밀란과 AS 로마에서도 활약하며 유럽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입증했다.
2.1. 클럽 경력
프로하스카는 1972년 FK 아우스트리아 빈에서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1980년까지 그는 FK 아우스트리아 빈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팀이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오스트리아컵 3회 우승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1980년, 그는 세리에 A의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하여 두 번째 시즌인 1981-82 시즌에는 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었다. 1982년에는 같은 리그의 AS 로마로 이적했고, 이적 첫해인 1982-83 시즌에 이탈리아 챔피언십인 스쿠데토를 차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외국인 선수에게 비교적 폐쇄적이었던 세리에 A에서 그가 핵심 선수로 성공적으로 활약한 것은 이후 많은 오스트리아 출신 선수들이 이탈리아 리그로 이적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1983년, 그는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기 위해 FK 아우스트리아 빈으로 복귀하여 1989년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다. 복귀 후 그는 FK 아우스트리아 빈에서 추가적으로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3회 우승(1984, 1985, 1986)과 오스트리아컵 1회 우승(1986)을 더하며 총 리그 7회, 컵 4회 우승을 기록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프로하스카는 1974년 11월 튀르키예와의 친선 경기에서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1978년 FIFA 월드컵과 1982년 FIFA 월드컵에 오스트리아 대표로 참가했다.
1978년 FIFA 월드컵에서는 2차 리그 최종전에서 당시 전 대회 우승국이었던 서독을 3대 2로 꺾는 이른바 "코르도바의 기적"의 일원이었다. 1982년 FIFA 월드컵에서는 1차 리그 3차전 서독과의 경기(히혼의 무기력 경기, 일부에서 승부 조작이 의심되며 월드컵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경기로 불림)에서도 피치 위에 있었다.
그는 1989년 6월 아이슬란드와의 1990년 FIFA 월드컵 예선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으며, 오스트리아는 1990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그는 참가하지 않았다. 프로하스카는 오스트리아 국가대표로 총 84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기록했다.
연도 | 출전 | 득점 |
---|---|---|
1974 | 1 | 0 |
1975 | 7 | 1 |
1976 | 7 | 1 |
1977 | 8 | 1 |
1978 | 13 | 0 |
1979 | 7 | 3 |
1980 | 7 | 0 |
1981 | 5 | 2 |
1982 | 10 | 1 |
1983 | 4 | 0 |
1984 | 7 | 3 |
1985 | 4 | 0 |
1986 | 0 | 0 |
1987 | 0 | 0 |
1988 | 1 | 0 |
1989 | 3 | 0 |
통산 | 84 | 12 |
3. 지도자 경력
프로하스카는 선수 은퇴 직후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1989년 선수 은퇴 후 곧바로 FK 아우스트리아 빈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1990년부터 1992년까지 팀을 이끌며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2회 우승과 오스트리아컵 2회 우승을 차지했다.
1993년에는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팀을 1998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98년 월드컵 본선에서도 팀을 지휘했다. 하지만 1999년 3월 27일 스페인과의 EURO 2000 예선 경기에서 0대 9라는 참담한 패배를 당한 후 사임했다. 이후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다시 FK 아우스트리아 빈의 감독을 맡았고, 국가대표팀 감독직 사임 후에는 감독직에서 일찍이 은퇴했다.
4. 수상 및 영예
헤르베르트 프로하스카는 선수와 감독 경력을 통틀어 수많은 개인 및 팀 수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4.1. 선수로서의 팀 영예
-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 (7회): 1976, 1978, 1979, 1980, 1984, 1985, 1986
- 오스트리아컵 우승 (4회): 1974, 1977, 1980, 1986
- 오스트리아 슈퍼컵 우승 (1회): 1997
-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1983
-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1982
4.2. 개인 수상
-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상 (크로네-푸스발러발): 1975, 1985
-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상 (APA-푸스발러발): 1984, 1985, 1988
- UEFA 주빌리 어워드 (오스트리아 골든 플레이어): 2003년 11월, 오스트리아 축구 협회에 의해 지난 50년간 가장 뛰어난 선수로 선정됨. 2004년 시상.
- 오스트리아 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2004년 8월, 오스트리아 축구 협회 100주년 기념 투표에서 선정됨.
- 오스트리아 국가 훈장: 2005년 수여.
4.3. 지도자로서의 팀 영예
-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 (2회): 1991, 1992
- 오스트리아컵 우승 (2회): 1990, 1992
- 오스트리아 올해의 감독상 (크로네-푸스발러발): 1997
5. 미디어 활동


감독직 은퇴 후 헤르베르트 프로하스카는 오스트리아 국영 방송(ORF)의 축구 전문가이자 해설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 당시 주심이었던 그레이엄 폴이 한 선수에게 옐로카드를 세 번 준 실수를 저지른 것에 대해, 경기 전 과도한 음주가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언급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6. 평가 및 영향력
헤르베르트 프로하스카는 오스트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의 우아하면서도 강력했던 플레이 스타일은 오스트리아 축구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그가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성공적으로 활약한 것은 이후 많은 오스트리아 선수들이 해외 리그, 특히 이탈리아로 진출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선수로서 국내외에서 수많은 우승을 차지하고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했으며, 감독으로서도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끄는 등 오스트리아 축구 발전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은퇴 후에도 미디어 활동을 통해 오스트리아 축구 팬들과 소통하며 그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