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프랜시스 이시드로 에지워스(Francis Ysidro Edgeworth영어, 1845년 2월 8일 ~ 1926년 2월 13일)는 아일랜드계 영국인 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이며 통계학자이다. 그는 1880년대 통계학 방법론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1891년부터는 권위 있는 학술지인 《경제 저널》(The Economic Journal)의 창립 편집장을 역임했다. 에지워스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수리경제학과 통계학에 수학적 기법을 적용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대표작인 1881년의 『수리정신학(Mathematical Psychics영어)』은 무차별 곡선과 에지워스 상자 등 현재 미시경제학의 핵심 개념들을 처음 제시했으며, 경제학의 계약 이론에서 불확정성 문제를 탐구했다.
2. 생애
에지워스는 아일랜드 롱퍼드 주 에지워스타운에서 태어나, 사교육을 통해 학업을 이어갔다. 그는 학부 시절 뛰어난 기억력과 기지를 보였으며, 대학 졸업 후에는 경제학과 통계학을 독학하며 자신만의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2.1. 유년기 및 가족 배경
에지워스는 1845년 2월 8일 아일랜드 롱퍼드 주 에지워스타운에서 프랜시스 보퍼트 에지워스(Francis Beaufort Edgeworth)와 로사 플로렌티나(Rosa Florentina)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이시드로 프랜시스 에지워스였으나, 후에 이름의 순서가 바뀌었다. 어머니 로사는 망명한 카탈루냐 장군 안토니오 에롤레스(Antonio Eroles)의 딸이었다. 에지워스의 아버지 프랜시스 보퍼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대영 박물관 계단에서 십대 스페인 난민이었던 로사를 만나 함께 도피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저명한 정치인이자 작가, 발명가였던 리처드 러블 에지워스이며, 그 이복 고모는 유명한 작가 마리아 에지워스이다. 에지워스 가문은 1580년대 아일랜드에 정착한 명문가로, 1606년 공동 국새보관인을 지낸 프랜시스 에지워스(Francis Edgeworth)와 다운 및 코너의 주교였던 에드워드 에지워스(Edward Edgeworth)에게서 유래한다. 그는 일곱 자녀 중 막내였으며, 학교에 다니지 않고 에지워스타운 저택에서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2.2. 교육
에지워스는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고전학을 전공했으며, 1863년 장학금을 받고 1865년 졸업했다. 1867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로 유학하여 1868년 볼리올 칼리지에 입학했다. 옥스퍼드에서 그는 고대 언어 및 현대 언어를 공부했으며, 이 시기에 제러미 벤담의 저술에 큰 영향을 받았다. 비록 학위는 1873년에 받았지만, 그의 학부 시절부터 뛰어난 기억력과 기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3. 초기 활동 및 학업
대학 졸업 후 에지워스는 1870년경 런던 햄프스테드로 거처를 옮겼으나, 이후 10년간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877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것으로 미루어 법률을 공부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실제 변호사 직업을 계속하지는 않았다. 이 시기에 그는 수학과 통계학을 독학했으며, 이웃이었던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가 작성한 수리경제학 문헌 목록이 그의 경제학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학술 및 전문 경력
에지워스는 그의 1880년대 경제학 및 수리통계학 저술들을 바탕으로 학계에서 인정받아 중요한 직책들을 맡게 되었다. 그는 대학교수로서 학술 연구에 매진했을 뿐만 아니라, 영향력 있는 학술지의 편집자로서 학계 발전에 기여했다.
1888년, 에지워스는 킹스 칼리지 런던의 경제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3년 후인 1891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드럼몬드 정치경제학 교수로 임용되어 1922년까지 재직했다. 또한 같은 1891년부터 사망하기 35년 전인 1926년까지 《경제 저널》(The Economic Journal)의 창립 편집자 또는 공동 편집자로 활동하며 학술지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1889년과 1922년에는 영국 학술 협회 경제학 부회장을 지냈으며, 왕립통계학회 회장(1912년~1914년)과 왕립 경제학회 부회장, 그리고 영국 학사원 회원으로 역임하는 등 여러 학술 단체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4. 경제학 및 통계학에 대한 공헌
에지워스는 신고전파 경제학 발전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특히 경제학에서 개인의 의사결정에 공식적인 수학적 기법을 적용한 최초의 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독창적이고 심도 있는 경제학 사상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효용 이론을 발전시켰고, 무차별 곡선과 에지워스 상자 다이어그램을 도입하여 경제 가치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데 기여했다.
4.1. 수리정신학 (Mathematical Psychics)
1881년에 출간된 에지워스의 대표작 『수리정신학: 도덕 과학에 수학을 적용하는 에세이(Mathematical Psychics: An Essay on the Application of Mathematics to the Moral Sciences영어)』는 그의 경제학 경력 초기에 발표된 가장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저서로 평가된다. 이 책에서 그는 제번스의 물물교환 이론을 비판하며, "재계약(recontracting)" 시스템에서는 실제로는 많은 해법, 즉 "계약의 불확정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에지워스의 "최종 합의의 범위(range of final settlements)" 개념은 나중에 마틴 슈빅 (1959년)에 의해 게임 이론의 "핵심" 개념으로 부활했다. 이 책에는 일반화된 효용 함수 U(x, y, z, ...)의 등고선으로서의 무차별 곡선이 최초로 등장한다.
이 책은 난해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에지워스는 문학 작품을 자주 인용하고, 라틴어, 프랑스어, 고대 그리스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 된 구절을 본문에 삽입했다. 수학적 내용 또한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경제학적 또는 도덕적 문제에 수학을 적용한 그의 창의적인 방식 중 다수는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이었던 알프레드 마셜은 『수리정신학』에 대한 서평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 책은 천재성의 분명한 징후를 보여주며, 앞으로 위대한 일들이 펼쳐질 것을 약속합니다... 독자들은 그가 좀 더 오래 이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좀 더 완전히 다듬고, 오랜 노력 끝에 얻게 되는 단순성을 확보했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주장하는 대로 '시도적인 연구'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 광채, 힘, 독창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지워스의 가까운 친구였던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수리정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 책의 독자들이 무엇을 생각하든, 아마 모두가 이 책이 매우 놀랍다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에지워스 씨의 문체는 내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문체는 모호하지 않더라도 함축적이어서, 독자들은 모든 중요한 문장을 수수께끼처럼 풀어내야 합니다.
4.2. 주요 경제 이론
에지워스는 다양한 경제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 에지워스의 한계 정리(Edgeworth's limit theorem):** 경제 주체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불확정성의 정도가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무한한 수의 경제 주체(완전 경쟁)의 극한 상황에서는 가능한 계약의 집합이 완전히 확정되고 경제학자들의 '균형'과 동일해진다. 이러한 계약의 불확정성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거래자들의 효용의 합을 극대화하는 공리주의 원칙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 국제 무역 이론:** 국제 무역의 주요 명제를 설명하기 위해 오퍼 곡선과 공동 무차별 곡선을 최초로 사용했으며, '최적 관세' 개념을 포함했다.
- 조세 역설:** 특정 상품에 대한 조세 부과가 오히려 가격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조세 역설을 제시했다. 그는 또한 최적의 조세 분배는 '각 납세자가 부담하는 한계 불효용이 동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고도의 누진세에 대한 공리주의적 토대를 마련했다.
- 독점 가격 결정 이론:** 1897년 독점 가격 책정에 관한 논문에서 에지워스는 수량 조정을 통한 과점 문제에 대한 쿠르노의 정확한 해법과 가격 조정을 통한 과점 모형에서 베르트랑의 '즉각적 경쟁' 결과를 비판했다. 동시에 에지워스는 생산 능력 제약 및/또는 증가하는 한계 비용 곡선을 가진 두 기업 간의 가격 경쟁이 불확정성을 초래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는 베르트랑-에지워스 모형으로 이어졌다.
- 한계 생산성 이론:** 그는 여러 논문(1904년, 1911년)에서 한계 생산성 이론을 비판하고, 신고전파 경제학의 분배 이론을 더욱 견고한 기반 위에서 정교화하려 노력했다.
- 전시 재정:** 제1차 세계 대전 중 전쟁 재정에 관한 그의 연구는 독창적이었으나, 다소 이론적이어서 그가 기대했던 실질적인 영향력을 얻지는 못했다.
4.3. 통계학적 기여
에지워스는 통계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확률론을 통계학에 적용하는 데 선구적이었으며, 에지워스 급수 (Edgeworth series)와 같이 그의 이름이 붙은 개념들이 존재한다. 그는 과거의 경험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확률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빌헬름 렉시스가 주도한 독일 학파의 연구자들과 영국 학자들 사이의 교류를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년에는 확률 자체보다는 통계학으로 관심의 중심이 옮겨졌으며, 확신이나 예상과 같이 주관이 크게 좌우하는 대상을 수학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심리학에서 전체는 부분의 총합과 같지 않다고 보았으며, 수량 비교는 의미가 없고, 작은 변화가 큰 효과를 가져오며, 균일성과 동질성을 가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철학적 보편성은 주장할 수 없더라도, 방대한 통계 자료는 실제 응용에 문제가 없을 만큼 확실성을 갖추고 있다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게 답하기도 했다.
5. 사상과 철학
에지워스의 초기 경제 사상에는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와 알프레드 마셜의 영향이 컸으며, 특히 마셜과는 수학과 윤리학을 통해 경제학에 도달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에지워스는 사회 과학에 수학적 방법론을 적용한 선구자 중 한 명으로, 그 자신은 이러한 방법론을 "수리 심리학"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한계 이론이 전제하는 공리주의적 윤리와 심리학을 끝까지 견지했으며, 이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경제학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1877년 저서 『윤리학의 새로운 방법과 오래된 방법(New and Old Methods of Ethics영어)』에서는 헨리 시즈윅의 저서에 대한 논평 형식으로 공리주의와 측정의 문제를 논했다. 1881년에 출간된 『수리정신학(Mathematical Psychics영어)』에서는 "감각, 즉 쾌락과 고통의 계량법"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켰다. 그는 "어떤 경우에는 더 큰,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더 작은 쾌락 단위의 모임, 행복의 양이 관찰될 수 있다"는 것이 경제학에 수학을 적용할 수 있는 근거라고 생각했다.
에지워스가 도덕 학에 수학을 적용한 또 다른 예는 "확신, 즉 확률 계산"이다. 확률론 자체에 대한 그의 저술로는 1884년 『마인드』지에 기고된 『가능성의 철학(The Philosophy of Chance영어)』이 있다.
6. 개인적인 삶과 특징
에지워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국제적으로 폭넓은 인맥을 유지했다. 그는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에 능통했으며, 존 밀턴, 알렉산더 포프, 베르길리우스, 호메로스와 같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전통적인 학자의 면모를 보였다.
그는 동시대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었다. 그의 기지(機智)와 해학(諧謔), 초연한 태도, 그리고 여러 기행과 일화들은 그를 기억에 남는 학자로 만들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특징들은 그의 학문적 깊이와 더불어 그의 매력을 더했다.
7. 주요 저서 및 논문
프랜시스 에지워스는 『수리정신학』과 같은 중요한 저서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술 논문을 통해 그의 학문적 유산을 확립했다. 그의 저술들은 경제학, 통계학, 윤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으며, 그의 사상적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 『윤리학의 새로운 방법과 오래된 방법(New and Old Methods of Ethics영어)』 (1877년)
- 『수리정신학: 도덕 과학에 수학을 적용하는 에세이(Mathematical Psychics: An Essay on the Application of Mathematics to the Moral Sciences영어)』 (1881년)
- 『확률론의 철학(The Philosophy of Chance영어)』 (1884년)
- 『순수 독점 이론(The Pure Theory of Monopoly영어)』 (1897년)
- 『분배 이론(The Theory of Distribution영어)』 (1904년)
- 『전쟁과 정치경제의 관계에 대하여(On the Relations of Political Economy to War영어)』 (1915년)
- 『전쟁 비용과 경제 이론이 제시하는 절감 방안(The Cost of War and ways of reducing it suggested by economic theory영어)』 (1915년)
- 『전시의 통화와 재정(Currency and Finance in Time of War영어)』 (1918년)
- 『부채 상환을 위한 자본세(A Levy on Capital for the Discharge of the Debt영어)』 (1919년)
- 『여성의 경제적 복지와 관련된 임금(Women's Wages in Relation to Economic Welfare영어)』 (1923년)
특히 그의 주요 논문들은 1925년에 그 자신에 의해 『정치경제학 관련 논문집(Papers relating to political economy영어)』이라는 제목으로 세 권의 책으로 집대성되었다. 그러나 이 외에도 수많은 논문들이 다양한 학술지에 흩어져 있어 그의 방대한 연구 활동을 보여준다.
8. 수상 및 평가
에지워스는 그의 탁월한 학문적 업적으로 생전에 여러 영예와 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저술 스타일은 일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8.1. 수상 및 영예
에지워스는 1907년 왕립통계학회로부터 가이 메달 금메달을 수상했다. 이는 통계학 분야에서의 그의 지대한 공헌을 인정받은 결과이다. 또한 그는 왕립통계학회 회장(1912년~1914년), 영국 학술 협회 경제학 부회장, 왕립 경제학회 부회장, 그리고 영국 학사원 회원 등을 역임하며 학계에서 높은 위상을 가졌다. 1928년에는 아서 라이언 볼리가 『F. Y. 에지워스의 수리 통계학 공헌(F. Y. Edgeworth's Contributions to Mathematical Statistics영어)』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여 그의 업적을 기렸다.
8.2. 비판 및 논란
에지워스의 경제학적 사상은 독창적이고 심오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인 학자들은 그의 표현 방식이 명확하지 않다는 불만을 자주 제기했다. 그는 장황한 문체를 사용하고 독자에게 정의를 제공하지 않은 채 모호한 단어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었다. 그의 문체는 불명확하지 않더라도 함축적이어서, 독자들이 모든 중요한 문장을 수수께끼처럼 풀어내야 한다는 평을 받았다. 이러한 점은 그의 저작 『수리정신학』에 대한 알프레드 마셜과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의 서평에서도 잘 드러난다.
9. 영향
에지워스는 신고전파 경제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경제학에서 개인의 의사결정에 공식적인 수학적 기법을 적용한 최초의 학자였으며, 효용 이론을 발전시키고 무차별 곡선과 에지워스 상자를 도입하여 미시경제학의 기초를 다졌다. 특히 에지워스의 '핵심' 개념은 나중에 게임 이론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그의 국제 무역, 조세, 독점 이론에 대한 공헌 또한 후대 경제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통계학 분야에서는 확률론의 적용과 에지워스 급수 등 독창적인 기여를 통해 통계 방법론의 발전에 기여했다. 비록 그의 일부 저작은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통찰력과 수학적 엄밀성은 많은 후대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이론과 개념들은 오늘날에도 경제학과 통계학 교육 및 연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