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 및 배경
지자우마 산투스는 1929년 2월 27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태어났다. 그의 키는 172 cm, 몸무게는 73 kg이었다. 그는 선수 생활 초기에 미드필더로 활약했지만, 이후 수비수 포지션으로 전환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라이트백으로 활약하며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주 수비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었던 니우통 산투스와는 혈연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클럽 경력
지자우마 산투스는 선수 경력 동안 세 클럽에서 활약했으며, 각 클럽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포르투게자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비의 중앙에서 뛰었으나, 이후 수비의 오른쪽으로 옮겨졌다. 1949년부터 1958년까지 총 434경기에 출전하여 클럽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이 시기에 핑가, 줄리뉴 보텔류, 브랑당징요와 같은 선수들과 함께 역대 최고의 포르투게자 팀 중 하나로 손꼽히며, 1952년과 1955년에 리우-상파울루 토너먼트에서 우승했고, 1951년과 1953년에는 피타 아술 인터나시오날을 획득했다.
파우메이라스에서는 498경기에 출전하여 클럽 역대 일곱 번째로 많은 경기를 뛰었다. 그는 아데미르 다 기아, 줄리뉴 보텔류, 지자우마 디아스, 바바와 같은 스타들과 함께 '알비베르데' 유니폼을 입고 '제1 아카데미'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파우메이라스에서 그는 선수 경력 중 가장 많은 우승 타이틀을 획득했다. 구체적으로는 파울리스타 챔피언십 1959년, 1963년, 1966년 우승, 브라질 챔피언십 1960년, 1967년 (호베르탕과 브라질 컵으로 두 번의 우승으로 기록됨) 우승을 달성했다. 또한 1965년에는 리우-상파울루 토너먼트에서 우승했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1961년과 1968년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로 이적하여 42세까지 뛰었다. 이는 당시 축구 선수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장수 기록으로, 이 클럽에서 32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평생 세 클럽에서만 뛰었지만, 1960년 11월 9일 상파울루 FC의 모룸비 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에 특별 초청 선수로 출전하여 나시오날 우루과이를 상대로 3-0 승리에 기여하며 잠시 상파울루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지자우마 산투스의 국가대표 경력은 여러 대회에 걸쳐 중요한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네 차례의 FIFA 월드컵 참가는 그의 선수 생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1952년부터 1968년까지 브라질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98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했으며, 3골을 기록했다. 또한 2번의 비공식 경기에도 출전했다. 그는 1954년부터 1966년까지 4회 연속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그의 국가대표 데뷔전은 1952년 팬 아메리칸 챔피언십에서 페루를 상대로 치렀으며,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그는 1957년 남미 선수권 대회 대표팀에 아르헨티나의 네스토르 로시와 함께 만장일치로 선발된 유일한 선수였다. 비공식 기록을 포함하여 브라질 국가대표팀 100경기 출전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알려져 있다.
3.1. FIFA 월드컵 참가
지자우마 산투스는 4차례의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브라질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3.1.1. 1954 FIFA 월드컵
지자우마 산투스는 1954년 월드컵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5-0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월드컵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이 대회에서 브라질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헝가리와의 '베른의 전투'로 알려진 4-2 패배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자신의 첫 국가대표 골을 기록했다.
3.1.2. 1958 FIFA 월드컵

1958년 월드컵에서 지자우마 산투스는 초기에는 데 소르디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그는 결승전인 스웨덴과의 경기 전까지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브라질은 이 경기에서 5-2로 승리했으며, 산투스는 이 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 결과, 단 한 경기만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 올스타팀에 포함되었다.
3.1.3. 1962 FIFA 월드컵
1962년 월드컵에서 지자우마 산투스는 다시 주전 선수로 복귀하여 브라질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결승전에서 그는 브라질의 마지막 골을 어시스트했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골키퍼 빌리암 슈로이프가 골라인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것을 보고, 오후 햇살의 눈부심을 이용해 높고 크게 휘어지는 롱 볼을 골문으로 띄웠다. 슈로이프가 크로스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실수했고, 브라질의 스트라이커 바바가 공을 골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는 그의 뛰어난 전술적 지능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3.1.4. 1966 FIFA 월드컵
37세의 나이였던 지자우마 산투스는 1966년 월드컵에 4회 연속으로 선발되었다. 그의 대표팀 발탁은 카를루스 아우베르투가 대신 선발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일부에게는 놀라움을 주었다. 산투스는 처음 두 경기에 출전했으나, 헝가리에게 3-1로 패한 후 다음 경기에서는 출전하지 못했다. 브라질은 다음 경기에서 포르투갈에게 패하며 토너먼트에서 탈락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지자우마 산투스는 선수 생활 초기에 미드필더로 시작했으나, 이후 수비수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차분함과 수비 위치에서의 뛰어난, 그리고 꾸준한 활약 덕분에 그는 역대 가장 위대한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중앙 수비수로도 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산투스는 빠르고 신체적으로 강인한 수비수였으며, 그의 체력, 대인 방어, 태클 능력으로 유명했다. 공중볼 처리에도 능했다. 라이트백으로서의 뛰어난 수비 능력 외에도, 그는 훌륭한 기술과 공격 능력을 보유하여 이 포지션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뛰어난 볼 컨트롤, 훌륭한 드리블, 창의성, 그리고 정확한 배급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자신의 페널티 지역 안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압박을 받을 때 일대일 상황에서 공을 가지고 상대를 돌파하곤 했다. 또한 그는 팀의 공격 전개에 기여하기 위해 측면을 따라 전진하여 오버래핑 공격을 시도한 최초의 풀백 중 한 명이었다. 우루과이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그에게 '무랄랴'(벽)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산투스는 또한 정확한 페널티킥과 세트피스 키커였으며, 긴 드로인 능력을 갖춘 것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축구 선수로서의 능력 외에도, 산투스는 매우 공정하고 올바른 선수이자 모범적인 프로 선수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높은 활동량, 긴 선수 생활, 훈련에 대한 규율, 그리고 올바른 행동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길고 광범위한 선수 경력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퇴장당하지 않았다.
5. 사망
지자우마 산투스는 2013년 7월 23일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우베라바의 한 병원에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사망하기 전 20년 동안 우베라바에 거주했다. 그의 사망 원인은 폐렴과 심각한 혈역학적 불안정이었으며, 이는 결국 심장마비로 이어졌다. 그는 2013년 7월 1일부터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6. 수상
지자우마 산투스는 선수 경력 동안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수많은 영광을 누렸으며, 개인적으로도 권위 있는 상과 명예를 얻었다.
6.1. 클럽 수상
클럽 | 대회 | 연도 |
---|---|---|
포르투게자 | 토르네이우 리우-상파울루 | 1952, 1955 |
포르투게자 | 피타 아술 인터나시오날 | 1951, 1953, 1954 |
파우메이라스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 1959, 1963, 1966 |
파우메이라스 | 캄페오나투 브라실레이루 세리 A | 1960, 1967 (호베르탕), 1967 (브라질 컵) |
파우메이라스 | 토르네이우 리우-상파울루 | 1965 |
파우메이라스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 | 1961, 1968 |
6.2. 국가대표팀 수상
국가대표팀 | 대회 | 연도 |
---|---|---|
브라질 | FIFA 월드컵 | 1958, 1962 |
브라질 | 팬 아메리칸 대회 | 1952 |
브라질 | 호카 컵 | 1957, 1960, 1963 |
브라질 | 코파 리우 브랑쿠 | 1968 |
브라질 | 타사 오스바우두 크루즈 | 1955, 1956, 1962 |
브라질 | 타사 베르나르두 오이긴스 | 1959 |
6.3. 개인 수상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54, 1958, 1962
- 월드 사커 월드 XI: 1962, 1963, 1965
- FIFA XI: 1963
- FIFA 월드컵 올타임 팀: 1994
- FIFA 100: 2004
- The Best of The Best - 세기의 선수 50인 선정
- 브라질 축구 박물관 명예의 전당
7. 유산 및 평가
지자우마 산투스는 그의 포지션에서 선구적인 활약을 펼치며 축구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단순한 수비수를 넘어,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라이트백 포지션의 역할과 중요성을 재정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경기 방식은 후대 많은 풀백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현대 축구에서 풀백이 공격적으로 기여하는 역할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기억된다.
특히 그의 모범적인 태도와 높은 직업윤리는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긴 선수 경력 동안 단 한 번도 퇴장당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뛰어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깨끗한 플레이는 그의 기술적 능력만큼이나 높이 평가되며, 팬들과 동료들 사이에서 '모범적인 선수'로 불렸다.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에 포함된 것은 그의 위대한 업적과 역사적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는 프란츠 베켄바워와 필립 람과 함께 세 차례의 FIFA 월드컵 올스타팀에 선정된 유일한 세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월드컵 역사상 가장 꾸준하고 뛰어난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뛰어난 수비 능력과 더불어 공격적인 재능을 겸비한 완벽한 풀백의 전형을 제시하며 브라질 축구의 황금기를 이끈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