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background
이르지 라슈카는 1941년 오늘날 체코에 해당하는 지역인 프렌슈타트 포트 라드호슈템(Frenštát pod Radhoštěm프렌슈타트 포트 라드호슈템체코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제2차 세계 대전과 나치 독일의 보헤미아 모라비아 보호령 시기와 겹쳐 있었다.
1.1. Childhood and family
1941년 2월 4일 프렌슈타트 포트 라드호슈템에서 태어난 이르지 라슈카는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어머니는 홀로 네 명의 자녀를 키워야 했다. 겨울 스포츠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숙부와 사촌 모두 현역 스키 점프 선수였으며, 그들은 어린 라슈카를 제자로 삼았다. 라슈카는 체코 신문 리도베 노비니(Lidové noviny리도베 노비니체코어)와의 인터뷰에서 "프렌슈타트 아이들은 스키를 신고 태어난다고 말하곤 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라슈카는 스키 외에도 축구, 자전거 경기, 핸드볼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2. Introduction to ski jumping
어린 스키 점프 선수 시절, 라슈카는 전설적인 즈데넥 렘사(Zdeněk Remsa즈데넥 렘사체코어) 코치의 문하에 들어가 '렘사 보이스'라고 불리는 그의 그룹에 합류했다. 슈마바(Šumava슈마바체코어)에서의 군 복무가 라슈카의 경력에 위협이 되자, 렘사 코치는 그가 군 스포츠 클럽인 두클라 리베레츠(Dukla Liberec두클라 리베레츠체코어)에 입단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도왔다. 1964년, 그는 인스브루크 동계 올림픽에 교체 선수로 참가하여 요세프 마토우슈(Josef Matouš요세프 마토우슈체코어)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마토우슈는 1차 시기에서 선두를 달리며 1928년 장크트모리츠 동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던 루돌프 푸르케르트 이후 체코 역사상 두 번째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될 기회를 잡았으나, 2차, 3차 시기에서 거리를 늘리지 못하고 메달을 놓쳤다. 4년 후, 라슈카는 마토우슈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2. Ski jumping career
이르지 라슈카는 스키 점프 선수로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수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2.1. Early career development
라슈카는 1966년 FIS 노르딕 세계 스키 선수권 대회에서 노멀힐과 라지힐 모두 4위를 차지하고, 1967-68 시즌 4개국 토너먼트에서 종합 2위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1968년 그르노블 동계 올림픽의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정작 라슈카 본인은 5위 안에 들면 만족할 것이며, 10위 안에 들어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2. 1968 Grenoble Winter Olympics

1968년 그르노블 동계 올림픽에서 라슈카는 노멀힐 종목 1차 시기에서 79 m를 비행했다. 비록 발두르 프라임(Baldur Preiml발두르 프라임독일어)의 비행 거리보다는 짧았지만, 뛰어난 비행 자세로 1차 시기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체코의 작가 오타 파벨(Ota Pavel오타 파벨체코어)은 그의 첫 점프를 "짧은 인간의 일생과 같았던 무한한 침묵 속의 아름다운 비행이었다. 화가이자 편집자인 오타 마셰크는 거의 기절할 뻔했고, 사진작가 야르다 스칼라는 사진 찍는 것을 멈췄다. 렘사 코치는 눈으로 얼굴을 씻고 있었고, 꽥꽥거리던 노르웨이의 비외른 비르콜라도 꽥꽥거리는 것을 멈췄다"고 묘사했다. 2차 시기에서는 72.5 m에 그쳤지만, 그는 금메달을 획득하며 체코슬로바키아 역사상 최초의 동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이어서 라지힐 종목에서는 소련의 블라디미르 벨로우소프(Владимир Белоусов블라디미르 벨로우소프러시아어)에게만 뒤져 은메달을 추가했다. 이 시즌에 그는 총 6번의 연속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2.3. World records and subsequent achievements
1969년 3월 22일, 라슈카는 유고슬라비아 플라니차에 새로 개장한 벨리칸카 브라토프 고리셰크(Velikanka bratov Gorišek벨리칸카 브라토프 고리셰크슬로베니아어)에서 두 개의 세계 기록을 세웠다. 그는 먼저 156 m를 비행하여 이전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고, 이어서 164 m를 날아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 기록은 하루 만에 동독의 만프레트 볼프(Manfred Wolf만프레트 볼프독일어)가 165 m를 기록하며 경신되었다.
날짜 | 스키 점프대 | 장소 | 미터 (m) | 피트 (ft) |
---|---|---|---|---|
1969년 3월 21일 | 벨리칸카 브라토프 고리셰크 K153 | 플라니차, 유고슬라비아 | 156 m | 156 m (512 ft) |
1969년 3월 22일 | 벨리칸카 브라토프 고리셰크 K153 | 플라니차, 유고슬라비아 | 164 m | 164 m (538 ft) |
1970년에는 고국 체코슬로바키아 비소케 타트리(Vysoké Tatry비소케 타트리슬로바키아어)에서 열린 FIS 노르딕 세계 스키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는데, 무려 10만 명 이상의 관중이 그의 점프를 보기 위해 운집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라지힐 은메달, 노멀힐 8위를 기록했다. 1970-71 시즌에는 4개국 토너먼트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에서는 노멀힐 5위, 라지힐 10위를 기록했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창설된 스키 플라잉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2.4. Transition to coaching and retirement
1974년부터 라슈카는 코치 활동을 겸했지만, 선수로서의 활약은 계속 이어갔다. 그는 체코 신문 호스포다르슈케 노비니(Hospodářské noviny호스포다르슈케 노비니체코어)에 "첫 주니어 선수가 나를 이기면 즉시 은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1976년, 프란티셰크 노바크(František Novák프란티셰크 노바크체코어)에게 패배한 후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Coaching career
선수 생활 은퇴 후 이르지 라슈카는 스키 점프 코치로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그는 메달(Medal)과 말레츠(Malec)와 함께 체코 스키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맡았다. 1990년대에는 체코 주니어 대표팀 코치로도 활동했으며, 체코 스키 연맹의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그는 체코 스키계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4. Legacy and reception
이르지 라슈카는 체코 스키 역사에 지대한 유산을 남겼으며, 후대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4.1. "Czech Skier of the Century" and influence
체코 스키 연맹의 여론 조사에서 이르지 라슈카는 '20세기 체코 최고의 스키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은 체코슬로바키아에 큰 자긍심을 안겨주었으며, 이후 많은 스키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의 업적은 체코 스키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손자들인 얀 마조흐(Jan Mazoch얀 마조흐체코어)과 이르지 마조흐(Jiří Mazoch이르지 마조흐체코어) 형제 또한 스키 점프 선수로 활동하며 할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5. Death
이르지 라슈카는 2012년 1월 20일, 향년 70세의 나이로 노비이친(Nový Jičín노비이친체코어)의 병원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