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초반 및 교육
오은선은 1966년 3월 5일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태어났다.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강원도에서 보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현재까지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에 거주하고 있다.
그녀는 서울중곡초등학교와 송곡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수원대학교에서 전자계산학과를 전공했다. 대학교 2학년 시절, 북한산을 등반한 것을 계기로 산악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2. 산악 경력
오은선은 산악 활동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등반 경력을 쌓아왔으며, 특히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 완등이라는 목표를 향해 도전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의 업적은 칸첸중가 등정 논란이라는 큰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2.1. 초기 활동
오은선은 1993년 고 지현옥 대장이 이끄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원으로 참가하며 첫 해외 원정을 시작했다. 이후 1997년 7월 17일, 가셔브룸 2봉을 무산소로 등정하며 생애 첫 8,000미터급 봉우리에 올랐다. 2004년에는 산소 보조 장비의 도움을 받아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초기에는 여러 8,000미터급 봉우리 등정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2.2. 7대륙 최고봉 등정
오은선은 2006년 한국 여성 산악인 최초로 7대륙 최고봉 완등에 성공했다. 그녀의 7대륙 최고봉 등정 기록은 다음과 같다.
| 날짜 | 봉우리 | 대륙 | 높이 |
|---|---|---|---|
| 2002년 8월 24일 | 엘브루스 | 유럽 | 5642 m |
| 2003년 5월 24일 | 매킨리 | 북아메리카 | 6194 m |
| 2004년 1월 9일 | 아콩카과 | 남아메리카 | 6959 m |
| 2004년 5월 20일 | 에베레스트 | 아시아 | 8848 m |
| 2004년 8월 19일 | 킬리만자로 | 아프리카 | 5895 m |
| 2004년 11월 12일 | 코지어스코 | 오세아니아 | 2228 m |
| 2004년 12월 19일 | 빈슨 매시프 | 남극 | 4892 m |
| 2006년 12월 3일 | 칼스텐츠 피라미드 | 오세아니아 | 4884 m |
칼스텐츠는 호주 대륙 최고봉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2.3.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 도전
오은선은 세계 여성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 완등에 도전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2006년 시샤팡마 등정에 성공하며 8000미터급 봉우리 3개를 달성했고, 당시 9개 봉우리를 등정한 에두르네 파사반 등 다른 여성 산악인들과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초오유와 K2에 올라 5개 봉우리를 달성했고, 2008년에는 4개 봉우리를 추가하며 빠르게 선두 그룹을 추격했다. 그녀는 2008년에 세계 여성 산악인 최초로 한 해 4개봉 연속 등정(마칼루, 로체, 브로드피크, 마나슬루)을 성공시켰다. 2009년에도 칸첸중가, 다울라기리, 낭가파르밧, 가셔브룸 1봉을 무산소로 연속 등정하며 2년 연속으로 한 해 4개봉을 무산소로 완등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2.3.1. 주요 등정 기록
오은선의 8,000미터급 봉우리 주요 등정 기록은 다음과 같다.
| 날짜 | 봉우리 | 높이 | 특징 |
|---|---|---|---|
| 1997년 7월 17일 | 가셔브룸 2봉 | 8035 m | 무산소 |
| 2004년 5월 20일 | 에베레스트 | 8848 m | 산소 사용, 아시아 여성 최초 단독 등정 |
| 2006년 10월 13일 | 시샤팡마 | 8027 m | 무산소 |
| 2007년 5월 8일 | 초오유 | 8188 m | 무산소, 단독 |
| 2007년 7월 20일 | K2 | 8611 m | 산소 사용, 한국 여성 최초 등정 |
| 2008년 5월 13일 | 마칼루 | 8485 m | 무산소 |
| 2008년 5월 26일 | 로체 | 8516 m | 무산소, 단독 |
| 2008년 7월 31일 | 브로드피크 | 8051 m | 무산소, 단독 |
| 2008년 10월 12일 | 마나슬루 | 8163 m | 무산소 |
| 2009년 5월 6일 | 칸첸중가 | 8586 m | 무산소 (논란 있음) |
| 2009년 5월 21일 | 다울라기리 | 8167 m | 무산소 |
| 2009년 7월 10일 | 낭가파르밧 | 8126 m | 무산소 |
| 2009년 8월 3일 | 가셔브룸 1봉 | 8080 m | 무산소 |
| 2010년 4월 27일 | 안나푸르나 | 8091 m |
2.3.2. 경쟁 및 주목
오은선은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 완등을 향한 경쟁에서 스페인의 여성 산악인 에두르네 파사반과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였다. 2009년에는 10번째 8000미터급 봉우리인 칸첸중가 등정(이후 논란)을 주장하며 세계 5대 고봉을 모두 오른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이러한 경쟁 구도는 대중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3.3. 안나푸르나 완등 선언
2010년 4월, 오은선은 14좌 완등의 마지막 봉우리인 안나푸르나에 대한 두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2009년 10월 첫 시도에서는 눈보라로 인해 정상까지 500 m를 남겨두고 하산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4월 23일, 오은선은 6400 m에 위치한 캠프 C3에 도달했으나, 강한 바람 때문에 다음 날 다시 후퇴해야 했다. 4월 26일, 그녀는 캠프 C2(5600 m)에서 캠프 C4까지 11시간을 등반하며 정상을 향한 준비를 마쳤다.

마침내 2010년 4월 27일 현지 시각 오후 3시 15분, 오은선은 7200 m 지점의 캠프 C4를 출발한 지 13시간 만에 안나푸르나 정상에 도달하며 14좌 완등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녀는 정상에서 대한민국 국기를 꽂고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생중계되던 등반 상황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당시 5명의 다른 등반가들이 그녀와 동행했다. 그녀의 완등 소식에 이명박 대통령은 "도전의 의미를 보여주었다"며 축하를 보냈다. 오은선은 5월 3일 안나푸르나에서 무사히 하산했다. 그녀는 14좌 완등 후 3~4년간 등반을 쉬며 대학원 진학과 자선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3. 칸첸중가 등정 논란
오은선이 2009년 5월 6일 등정했다고 주장한 칸첸중가에 대한 의혹은 그녀의 14좌 완등 기록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큰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 논란은 산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오은선 측과 의혹 제기 측 간의 첨예한 공방이 오갔다.
3.1. 의혹 제기
칸첸중가 등정 의혹은 오은선이 정상에서 촬영했다고 제출한 사진의 선명도가 낮아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작되었다. 이 사진은 그녀의 등정을 증명하는 유일한 시각적 증거였지만, 흐릿한 상태였다. 오은선은 기자회견에서 안개와 강한 눈보라 때문에 사진이 흐릿하게 나왔다고 해명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와 동행했던 셰르파 중 일부는 그녀가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의혹은 오은선의 경쟁자였던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에 의해 증폭되었다. 파사반은 안나푸르나 하산 중 오은선 팀과 대화했으며, 이후 히말라야 등정 기록의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홀리에게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 기록을 "논란 중(disputed)"으로 기록해 줄 것을 요청했다. 홀리는 2010년 4월 24일, 오은선의 사진에 바위만 보이는 반면 파사반 팀의 정상 사진에는 눈이 있었다는 점과, 오은선과 함께 등반했던 셰르파 3명 중 2명이 그녀가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점을 근거로 자신의 결정을 설명했다. 스페인 산악인 페란 라토레는 오은선 팀이 설치한 고정 로프가 정상 200 m 지점에서 멈춰 있었다고 주장했고, 8000미터급 봉우리 기록을 관리하는 웹사이트인 8000ers.com의 에베르하르트 위르갈스키는 상황이 혼란스러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꾸며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고 언급했다. 2010년 8월 21일 SBS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정상의 증거는 신(神)만이 아는가 - 오은선 칸첸중가 등정의 진실' 편을 방영하며 정상 등반 속도가 너무 빨랐다는 점과 증거 사진의 부실함을 지적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3.2. 오은선 측의 반박
의혹이 제기되자 오은선의 스폰서인 블랙야크는 2010년 4월 26일 오은선을 대신하여 성명을 발표했다. 블랙야크 측은 당시 칸첸중가에 여러 팀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오은선의 등정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당시 파사반 역시 "한국의 오은선이 바람에도 불구하고 막 정상에 도달했다"고 기록했다고 언급했다. 블랙야크는 칸첸중가 정상은 날씨가 좋아도 망원경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등정 시각적 확인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오은선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점은 8400 m 지점이었고, 정상 등정 주장 시간까지 3시간 40분이 걸렸는데, 이는 숙련된 등반가들에게 현실적인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산 정상부의 마지막 200 m는 비교적 완만하여 고정 로프가 필수가 아니며, 파사반을 포함한 다른 산악인들도 고정 로프 없이 그 구간을 등반했다고 강조했다.
안나푸르나에서 하산한 오은선은 2010년 5월 3일 직접 의혹에 대해 해명하며 "이렇게까지 되어서 정말 슬프다"고 말했다. 그녀는 KBS가 칸첸중가 정상 등정 영상과 사진 증거를 가지고 있으며, 아직 공개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파사반의 주장을 반박하며, "파사반에 따르면 일부 셰르파들이 내가 칸첸중가에 오르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셰르파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왜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파사반은 5월 4일 관련 셰르파 7명의 이름을 공개했는데, 일부 셰르파가 오은선을 위해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전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오은선은 칸첸중가를 다시 등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3.3. 엘리자베스 홀리의 입장 변화
히말라야 등정 기록을 정리하는 권위자로 여겨지는 엘리자베스 홀리는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 기록에 대해 입장을 여러 차례 바꾸었다. 2009년 5월 3일, 홀리는 카트만두에서 오은선과 한 시간 동안 논의한 후, 오은선이 14좌 완등을 모두 성공했느냐는 질문에 오은선이 "네, 했습니다"라고 답하자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홀리는 언론에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은 인정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그녀의 설명은 파사반의 것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누가 옳은지 정말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홀리의 데이터베이스는 파사반이 이의를 철회하지 않는 한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을 "논란 중"으로 계속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홀리는 오은선의 등정 기록이 "평생 논란이 될 것 같다"고 말했으며, 그녀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쌓이고 있다"고 언급하며 이전보다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3.4. 대한산악연맹의 결론
칸첸중가 등정 논란이 계속되자 대한산악연맹은 2010년 8월 26일 정밀 검증 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는 칸첸중가를 이전에 등정한 한국인 산악인 7명이 참석했으며, 서성호 산악인은 전화로 의견을 제시했다. 연맹 사무총장 이의재는 회의 참가자들이 오은선의 칸첸중가 사진이 "실제 풍경과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견해를 공유했으며,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반 과정에 대한 이전 설명들이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연맹의 결론에 대해 오은선은 "일방적인 의견"이라며 반박했다. 그녀는 회의에 참여한 모든 산악인들이 처음부터 자신의 업적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3.5. 추가 증거 및 관련 반응
칸첸중가 등정 논란과 관련하여 추가적인 증거들이 제기되었다. 2010년 8월 27일 B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2009년 5월 오은선 다음으로 칸첸중가 정상에 도달한 노르웨이 산악인 욘 강달(Jon Gangdal)은 오은선의 대한민국 국기가 정상에서 50 m에서 60 m 아래 지점에서 돌에 눌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증언했다.
네팔 산악협회 회장 앙 셰링은 2010년 4월 27일 "우리는 오은선의 업적을 세계 최고봉을 모두 등정한 최초의 여성 산악인으로 인정한다"고 말했으며, 네팔 정부도 오은선이 칸첸중가를 등반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최초로 14좌를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 또한 오은선을 만난 후 그녀의 업적을 인정하기도 했다.
반면, 에두르네 파사반은 오은선이 실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2010년 5월 23일 자신이 세계 14대 최고봉을 등정한 두 번째 여성이라고 인정했다.
4. 등반 전략 및 특징
오은선은 등반 시 베이스 캠프 사이를 이동할 때 헬리콥터를 사용하고, 사전에 등반을 준비하는 팀을 고용하는 등 효율적인 전략을 사용했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아웃도어 용품 제조사인 블랙야크의 후원을 받았다. 그녀의 뛰어난 등반 능력 때문에 "철녀"와 "다람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0년 안나푸르나 등반 당시, 조난당한 스페인 등반가 톨로 칼라파트(Tolo Calafat)의 구조에 불협조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은선은 칼라파트가 아프다는 사실을 하산한 후에야 알았으며, 이미 도와줄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그녀는 "오후 3시경 정상에 도착했고, 스페인 등반가는 한 시간 후에 도착했다. 캠프 C4로 돌아왔을 때는 모두 지쳐 있었다"고 설명하며, "정말 돕고 싶었지만, (7시간을 다시) 올라가서 그를 구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오은선은 2009년 11번째 8000미터급 봉우리 등반 후 추락사한 전 라이벌 고미영을 자신의 영감의 원천 중 한 명으로 꼽았다. 그녀는 등반을 "어떤 약물보다도 훨씬 강한 중독"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5. 방송 활동
오은선은 14좌 완등 도전과 관련하여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그녀의 주요 방송 활동 이력은 다음과 같다.
- 2010년 4월 18일 KBS '오은선, 히말라야 14좌 도전!'
- 2010년 4월 27일 KBS '오은선, 히말라야 14좌 완등!'
- 2010년 4월 30일 KBS '오은선, 히말라야를 품다'
- 2010년 5월 12일 KBS '오은선과 KBS, 히말라야를 품고 돌아오다'
- 2010년 5월 23일 KBS 특별생방송 '2010특별기획 오은선 14번째 하늘에 서다'
6. 평가와 유산
산악인 오은선의 업적은 한국 산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녀의 도전 정신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칸첸중가 등정 논란은 그녀의 명성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한국 사회에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6.1. 긍정적 평가
오은선은 여성 산악인으로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녀는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 K2 등정, 그리고 7대륙 최고봉 완등을 달성했다. 또한, 2년 연속으로 한 해 4개 8,000미터급 봉우리를 무산소로 등정하는 등 경이로운 속도와 끈기를 보여주며 불굴의 도전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녀의 도전은 한국 산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6.2. 비판 및 논란의 영향
오은선의 명성은 칸첸중가 등정 논란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대한산악연맹의 공식적인 등정 실패 판정은 그녀의 14좌 완등 기록에 대한 국제적인 공신력을 크게 훼손시켰다. 이 논란은 단순한 기록 논쟁을 넘어, 증거의 투명성, 스포츠 윤리, 그리고 언론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그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등정 의혹 제기 외에도 안나푸르나에서 조난당한 동료 구조 미협조 논란 등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은 한 개인의 명성을 넘어 한국 산악계 전체의 신뢰 문제로까지 번지며, 스포츠의 본질과 기록의 진정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