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오스로에스 1세(𐭇𐭅𐭎𐭓𐭅Husrōwxpr)는 109년부터 129년까지 1년간의 통치 중단 기간을 포함하여 파르티아 제국의 서부 지역을 다스린 파르티아의 왕위 주장자이자 왕이었다. 그는 재위 기간 대부분 동안 동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경쟁자 볼로가세스 3세와 왕위를 두고 다투었다. 116년, 로마 제국의 황제 트라야누스의 침공으로 인해 크테시폰에서 잠시 왕위에서 축출되었으며, 트라야누스는 오스로에스 1세의 아들 파르타마스파테스를 왕위에 앉혔다. 그러나 이듬해 트라야누스가 사망하자 파르티아 귀족층에 의해 오스로에스 1세의 통치가 복구되었다. 129년, 그는 볼로가세스 3세에 의해 최종적으로 권력에서 물러났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오스로에스 1세의 초기 생애와 가계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지만, 그의 권력 장악 과정은 파르티아 내부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다.
2.1. 출생과 가계
오스로에스 1세의 출생 연도나 출생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는 파코루스 2세에게 반기를 들고 왕위를 주장하며 역사에 등장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보노네스 2세의 아들이자 볼로가세스 2세와 파코루스 2세의 동생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2.2. 왕위 계승
109년, 오스로에스 1세는 당시 파르티아의 왕이었던 파코루스 2세에 대항하여 왕위를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파코루스 2세의 아들인 볼로가세스 3세가 재위하던 시기, 오스로에스 1세는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한 파르티아 제국의 서부 지역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파르티아는 오스로에스 1세가 서부를, 볼로가세스 3세가 동부를 통치하는 양분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3. 통치와 내분
오스로에스 1세의 통치 기간은 주로 파르티아 제국 내에서의 권력 다툼과 로마 제국과의 충돌로 점철되었다.
3.1. 서부 파르티아 통치
오스로에스 1세는 파르티아 제국의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통치하며, 동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경쟁자인 볼로가세스 3세와 지속적인 왕위 다툼을 벌였다. 이러한 내분은 파르티아 제국의 국력을 약화시켰고, 이는 훗날 로마 제국의 침공에 취약한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4. 로마 제국과의 전쟁
오스로에스 1세의 재위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로마 제국과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아르메니아 왕국의 왕위 계승 문제로 촉발되었으며, 파르티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4.1. 아르메니아 문제와 트라야누스의 침공
113년, 오스로에스 1세는 로마 제국과의 란데이아 조약을 위반했다. 그는 볼로가세스 3세의 형제인 악시다레스를 아르메니아 왕국의 왕위에서 폐위시키고, 악시다레스의 형제인 파르타마시리스를 새로운 아르메니아 왕으로 임명했다. 이러한 조치는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파르티아 영토를 침공할 명분을 제공했으며, 트라야누스는 오스로에스 1세와 볼로가세스 3세 간의 내전을 이용하여 파르티아를 침공했다. 오스로에스 1세의 동생 미트라다테스 4세와 조카 사나트루케스 2세도 로마군에 맞서 싸웠다. 114년, 트라야누스는 아르메니아를 정복하여 로마의 속주로 편입시켰다.
4.2. 로마의 점령과 파르타마스파테스의 옹립
116년,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아의 수도였던 셀레우키아와 크테시폰을 점령했다. 트라야누스는 심지어 페르시아만까지 진격하여 카라케네의 파르티아 속국 통치자 아탐벨로스 7세에게 공물을 바치도록 강요했다. 파르티아인들의 반란을 우려한 트라야누스는 크테시폰에 오스로에스 1세의 아들 파르타마스파테스를 왕위에 앉혔다. 이 원정 중에 트라야누스는 오스로에스 1세의 딸을 사로잡았으며, 그녀는 129년에 양국 간의 평화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로마의 포로로 남아있었다. 오스로에스 1세의 동생 미트라다테스 4세와 조카 사나트루케스 2세는 파르타마스파테스의 옹립에 강력히 반발하며 로마군과 싸웠으나 패배했다.

4.3. 트라야누스 사후 왕위 복구
트라야누스의 정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복된 모든 영토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바빌로니아인들과 유대인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로마군을 몰아냈고, 사나트루크 휘하의 아르메니아인들도 로마에 문제를 일으켰다. 117년 트라야누스가 사망하자 파르티아인들은 파르타마스파테스를 왕위에서 축출하고 오스로에스 1세를 다시 왕위에 복구시켰다. 트라야누스의 후계자인 하드리아누스는 트라야누스가 동방에서 정복했던 나머지 영토들을 포기하고, 파르티아 왕자 아르메니아의 볼로가세스 1세가 새로운 아르메니아 왕이 되는 란데이아 조약을 승인했다.
5. 볼로가세스 3세와의 대립 및 최후
로마와의 전쟁으로 약화된 파르티아 제국 서부 지역은 볼로가세스 3세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볼로가세스 3세의 동부 영토는 로마의 침공으로부터 온전했기 때문이다. 이 전쟁 중에 아트로파테네 왕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영토가 볼로가세스 3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볼로가세스 3세는 알란족의 침입에도 대응해야 했지만, 결국 129년에 오스로에스 1세를 권력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오스로에스 1세가 물러난 후 그의 동생 미트라다테스 4세가 왕위를 계승하며 볼로가세스 3세와의 대립을 이어갔다.
6. 주화와 영향
오스로에스 1세의 통치 기간에 발행된 주화는 그의 통치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의 은화 앞면에는 갈래머리를 하고 디아뎀을 착용한 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반면, 동화에는 갈고리와 옆에 뿔 장식이 있는 티아라를 쓴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스로에스 1세의 주화는 엘리마이스의 통치자 엘리마이스의 오스로에스의 주화와 매우 유사하여,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들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나 엘리마이스의 통치자가 오스로에스 1세의 주화를 모방했을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7. 가족
오스로에스 1세에게는 아들 파르타마스파테스와 트라야누스에 의해 포로로 잡혔던 딸이 있었다. 또한, 그의 동생 미트라다테스 4세와 조카 사나트루케스 2세가 로마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