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존 에릭 힐먼(John Eric Hillman, 1966년 4월 27일생)은 미국 인디애나주 출신의 전 프로 야구 투수이다. 그는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3시즌, 일본 프로 야구(지바 롯데 마린즈,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4시즌 동안 활동했다. 힐먼은 한때 랜디 존슨과 함께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키가 큰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NPB에서도 루크 판 밀이 입단하기 전까지 제이슨 터먼과 함께 최장신 선수로 기록되었다. 은퇴 후에는 방송 분석가로도 활동했다.
2. 유년기 및 아마추어 경력
존 에릭 힐먼은 1966년 4월 27일,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리노이주 시카고 교외의 Homewood-Flossmoor High School에서 야구를 했으며, 이후 East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대학 야구 경력을 이어갔다. 1987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뉴욕 메츠에 16라운드 지명으로 계약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3.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경력
힐먼은 뉴욕 메츠 소속으로 3시즌 동안 메이저리그 투수로 활동했다. 1992년 5월 18일에 메이저리그에 처음으로 승격되었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총 49경기에 등판하여 36번의 선발 출장을 기록했으며, 4승 14패, 방어율 4.85의 성적을 남겼다. 메이저리그에서의 그의 투구 스타일은 큰 키에서 내리꽂는 공이었으나, 빠른 구속보다는 제구력과 변화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4. 일본 프로 야구 (NPB) 경력
존 에릭 힐먼은 메이저리그 경력 이후 일본 프로 야구에서 4시즌을 보냈다. 그는 지바 롯데 마린즈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 후 부상과 관련한 논란에 휩싸였다.
4.1. 지바 롯데 마린즈 시절
힐먼은 1994년 12월 21일, NPB의 지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했다. 그의 입단은 바비 발렌타인의 첫 감독 재임기였다. 1995년, 그는 일본에서의 첫 시즌에 12승을 거두며 팀이 리그 2위로 약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듬해인 1996년에는 14승 9패를 기록하며 맹활약했고,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을 두고 팀 동료인 이라부 히데키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 활약을 인정받아 그 해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고, 올스타 게임 2차전의 MVP로도 뽑혔다.
키가 208 cm에 달했지만, 힐먼의 직구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 장신에서 내리꽂는 커브, 슬라이더, 스크루볼 등 다양한 변화구를 주무기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특히 1996년에는 15개의 사구를 기록할 정도로 상대 타자의 몸쪽을 과감하게 공략하는 투구 스타일을 보였다. 당시 힐먼, 이라부, 고미야마 사토루로 이어지는 선발 3인방은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며 리그 정상급의 선발진으로 평가받았다.
힐먼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1996년 올스타 게임에서는 5회 종료 후 키프 그로스와 함께 그라운드 키퍼 복장으로 등장하는 등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1996년 시즌 개막 직후 오릭스 블루웨이브와의 경기에서 호시노 노부유키와의 팽팽한 투수전 끝에 0-1로 패한 뒤, 히어로 인터뷰를 하던 호시노에게 다가가 서로의 선전을 격려하는 장면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96년 9월 23일, 오릭스의 우승이 확정된 시점(로ッテ는 10경기가 남은 상태)에서 힐먼의 방어율은 2.28로 리그 1위였고, 2위인 이라부 히데키의 2.73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같은 달 28일, 힐먼이 4.1이닝 4자책점으로 방어율이 2.405로 나빠지자, 로ッテ 구단은 힐먼을 더 이상 등판시키지 않고, 메이저리그 이적을 희망하던 이라부에게 타이틀을 안겨주기 위해 남은 6경기에서 3번의 선발 등판을 시켰다. 결국 이라부는 22이닝 동안 1자책점만 허용하며 방어율 2.403으로 역전하여 타이틀을 획득했다. 힐먼은 이러한 구단의 결정에 강한 불만을 품었고, 시즌 종료 후 로ッテ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4.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로ッテ 퇴단 후 1996년 11월 13일, 힐먼은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그는 연봉 2.50 억 JPY의 2년 계약을 맺으며, 센트럴 리그 2연패와 일본 시리즈 우승 탈환의 핵심 선수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적 직후 왼쪽 어깨 부상을 당해 1997년에는 단 2경기(6이닝) 등판에 그쳤다. 이 2경기는 본인의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반강제적으로 등판시킨 것이었다고 알려졌다. 그는 이 해 어깨 수술을 받았고, 이듬해 1998년 스프링 캠프에서 몇 차례 좋은 투구를 선보였지만, "어깨에 위화감(違和感이와칸일본어)이 있다"는 이유로 다시 이탈했다. "어깨에 잭나이프가 박혀 있다", "어깨에 고니시키가 올라탄 것 같다"는 등의 변명을 하며 등판 거부를 반복해 "미스터 위화감"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2군(이스턴 리그)으로 내려간 후에는 연습도 대충 마치고 점심때 집에 가는 경우가 많아 "히루만(昼マン낮맨일본어)"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결국 1998년에는 단 한 번도 등판하지 못했고, 시즌 도중인 5월 30일에 해고되었다. 당시 구단주였던 와타나베 쓰네오는 "돈을 줄 테니 나가라"며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힐먼은 2시즌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2경기 등판, 6이닝 투구로 5.00 억 JPY를 수령했지만, 언론에는 자신을 케빈 미첼이나 마이크 그린웰과 같은 문제적인 외국인 선수들과 동일시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자이언츠 퇴단 결정 후에는 "거인에 복귀하는 것이 꿈이다", "어깨가 나으면 거인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일본을 떠났다.
그러나 자이언츠에서 해고된 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1998년 7월에 제임스 앤드류스 박사에 의해 관절경 수술을 받았고, 왼쪽 어깨 회전근개의 완전 파열이라는 정확한 진단이 내려졌다. 이 부상은 일본의 의사들과 트레이너들이 놓쳤던 것이었다. 결국 이 어깨 부상이 그의 투수 생명을 끝낸 원인이 되었다. 워렌 크로마티의 저서 『잘 가라 사무라이 야구』에 따르면 당시 요미우리의 팀 닥터들은 오진이 잦았다고 한다. 크로마티 자신도 팀 닥터가 "이상 없음"으로 진단한 후 개인적으로 다른 의사에게 진찰받았을 때 오진이 발각되었고, 구단으로부터 이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힐먼의 '위화감'이 단순한 핑계가 아니라 실제 심각한 부상이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작용했다.
5. 선수 은퇴 이후 경력
존 에릭 힐먼은 2000년 4월 19일에 공식적으로 야구 선수에서 은퇴했다. 그의 마지막 프로 경기는 2000년에 휴스턴 애스트로스 산하 AA급 팀인 라운드록 익스프레스에서 한 경기를 등판한 것이었다. 은퇴 후에는 야구 관련 활동을 이어갔으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FSN 로키 마운틴의 콜로라도 로키스 경기 중계 방송에서 분석가로 활동하며 팬들에게 야구에 대한 통찰을 제공했다.
6. 수상 및 영예
존 에릭 힐먼은 선수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주요 개인 수상 및 영예를 얻었다.
- 베스트 나인: 1회 (1996년)
- IBM 플레이어 오브 더 이어: 1회 (1996년)
- 올스타 게임 출장: 1회 (1996년)
- NPB 기록:
- 1996년 단일 시즌 최다 사구 허용: 15개 (리그 최고 기록)
6.1. 연도별 투수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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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등번호
- 53 (1992년 ~ 1994년)
- 42 (1995년 ~ 1998년)
7. 유산 및 평가
존 에릭 힐먼은 그의 선수 경력 전반에 걸쳐 특히 인상적인 신체적 특징인 키(208 cm)로 주목받았다. 그는 한때 랜디 존슨과 함께 메이저리그 최장신 선수 중 한 명이었고, NPB에서도 루크 판 밀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제이슨 터먼과 함께 가장 큰 키의 외국인 선수였다. 이러한 신체적 조건은 그의 투구 스타일, 즉 빠른 공보다는 변화구와 제구력에 의존하는 투구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NPB에서의 경력은 극명하게 나뉜다. 지바 롯데 마린즈 시절에는 바비 발렌타인 감독 아래에서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며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 후에는 어깨 부상으로 인해 거의 등판하지 못했으며, 그의 '위화감' 발언과 관련한 '미스터 위화감' 논란은 일본 야구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부정적인 유산으로 남았다. 그러나 이후 미국에서 받은 진단이 실제 심각한 회전근개 파열이었음이 밝혀지면서, 그의 불평이 단순한 핑계가 아니라 실제 부상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팀 의료진의 오진 문제와 선수 관리의 미흡함을 드러내는 사례로 평가되기도 한다. 힐먼의 선수 경력은 성공적인 시기와 부상으로 인한 좌절이 교차하는 복잡한 양상을 보였으며, 특히 부상 진단과 관련한 논란은 그의 선수 생활 전반에 걸쳐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