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에드워드 마이클 볼스는 1967년 2월 25일 노리치의 노퍽 노리치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동물학자 마이클 볼스이며, 어머니는 캐롤린 재닛 라이즈버러이다. 그의 남동생 앤드루 볼스는 투자 회사 PIMCO의 글로벌 채권 담당 최고투자책임자(CIO)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였으며 볼스가 어릴 때 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버지는 노퍽 지역 노동당 활동에 적극적이었으며, 전단지를 배포하고 노퍽 교육 진흥 캠페인(CANE)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볼스는 어린 시절을 노퍽의 보버러에서 보냈고, 8세 때 노팅엄셔의 키워스로 이사했다. 그는 크로스데일 드라이브 초등학교에 다녔으며, 이후 사립 남학교인 노팅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서 그는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학교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에서도 활동했다. 오케스트라의 음악 책임자는 노팅엄 성 베드로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켄드릭 파팅턴이었다. 1984년 3월 2일 필립 공이 학교를 방문하여 새로운 과학관을 개관했을 때, 당시 6학년 벤처 스카우트였던 볼스는 야외 활동 복장을 입고 필립 공을 만났다. 당시 학생회장이었던 에드 데이비도 필립 공을 만났는데, 그는 에든버러 공작상 금상을 받은 세 형제 중 한 명이었다. 볼스는 기숙사 반장이었으며, 1985년 영어, 역사, 경제학 과목에서 A레벨을 취득했다.
그는 성공회 신자로 자랐으며, 노팅엄의 플럼트리 성모 마리아 교회에서 종을 치는 활동을 했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 케블 칼리지에서 철학, 정치, 경제학을 전공하여 우등으로 졸업했으며, 존 렌툴에 따르면 데이비드 캐머런보다 앞섰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하버드 대학교 존 F.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케네디 스칼라십 장학생으로 수학했다.
볼스는 1983년 고등학교 재학 중 영국 노동당에 입당했다. 옥스퍼드 대학교 재학 중에는 옥스퍼드 대학교 노동 클럽의 부분적으로 활동적인 회원이었지만, 친구들에 따르면 "최고 수준의 정치 연사들을 초청했기 때문에 회원들만 강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옥스퍼드 대학교 자유민주당 클럽과 옥스퍼드 대학교 보수 협회에도 가입했다고 한다. 볼스는 남성 전용 사교 클럽인 '더 스티머스'의 창립 멤버였으며, 한때 나치 제복을 입은 사진이 신문에 실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 초기 경력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에드 볼스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티칭 펠로우로 재직했다. 1990년에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수석 경제 기자로 입사하여 활동했다.
1994년, 그는 당시 예비 재무장관이었던 고든 브라운의 경제 고문으로 임명되며 정계에 발을 들였다. 1997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집권하고 브라운이 재무장관에 오르자, 볼스는 그의 경제 고문직을 계속 수행했으며, 결국 영국 재무부의 수석 경제 고문으로 승진했다.
2004년 7월, 볼스는 노먼턴 지역구의 노동당 및 협동조합당 예비 국회의원 후보로 선정되면서 재무부 수석 경제 고문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후 정치 싱크탱크인 스미스 연구소의 직책을 맡았다. 이에 대해 재무부와 내각실은 "정상적이고 적절한 절차를 따랐다"고 밝혔다.
3. 정치 경력
3.1. 의회 입성
2005년 영국 총선에서 에드 볼스는 웨스트요크셔주의 노동당 강세 지역구인 노먼턴에 출마하여 10,002표 차이로 당선되며 51.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노먼턴 지역구의 현직 의원이었던 빌 오브라이언 경이 은퇴하면서 공석이 된 자리였다.
이후 영국 선거구 위원회가 노먼턴 선거구를 폐지하는 변경안을 제안하자, 볼스는 지역 신문인 《웨이크필드 익스프레스》와 협력하여 지역구를 지키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자신의 아내 이벳트 쿠퍼와 메리 크리흐, 존 트리켓 등 다른 세 명의 웨이크필드 국회의원들과 함께 선거구 위원회의 제안에 반대하는 고등법원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2007년 3월, 그는 폐지된 노먼턴과 몰리 로스웰 선거구의 일부를 포함하는 새로운 몰리 아웃우드 선거구의 노동당 예비 후보로 선정되었다. 이전의 안정적인 노동당 지역구였던 노먼턴과 달리, 몰리 아웃우드는 경합 지역구였다. 그는 2010년 영국 총선에서 이 새로운 지역구의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3년 2월 5일, 볼스는 영국 내 동성 결혼 합법화를 위한 영국 하원 2차 독회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그는 이스라엘 노동당 친구들의 회원이기도 했다.
3.2. 장관직 수행
2006년 5월 내각 개편에서 에드 볼스는 영국 재무부의 차관급 직책인 재무경제비서에 임명되었다. 재무경제비서 재직 중, 그는 G7 재무장관들의 위임을 받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경제적 측면에 대한 보고서를 존 컨리프와 함께 작성했다.
2007년 6월 27일, 고든 브라운이 총리가 되자 볼스는 영국 아동학교가족장관으로 승진했다. 아동학교가족부에서 볼스는 '아동 계획'을 통해 학교와 아동 정책을 처음으로 통합했으며, 영국의 교육 및 훈련 의무 이수 연령을 18세로 높였다. 2007년에는 재무장관직에 오를 것으로 고려되었으나, 그 역할은 앨리스터 달링에게 돌아갔다.
2008년 10월, 볼스는 14세 학생들을 위한 국가 교육과정 평가 시험(SAT)을 폐지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을 발표했다. 이 결정은 교사, 학부모 단체, 야당 의원들로부터 폭넓은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11세 학생들을 위한 SAT 시험은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되어, 교장 협회장인 믹 브룩스는 이를 놓친 기회라고 평가했다.
2008년 12월, '베이비 P 사망 사건' 이후 볼스는 해링게이 사회복지 서비스 운영에 직접 개입하여, 아동 서비스 국장이었던 샤론 슈스미스를 보상 없이 즉시 해고할 것을 명령했다.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또한 그녀의 해고를 요구했다. 슈스미스는 이전 교육 국장으로서 널리 칭찬받았지만, 사회복지 분야의 배경 지식이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2008년 11월 볼스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긴급 OFSTED 보고서는 아동 보호 조치가 부적절하다고 결론 내렸으나, 슈스미스 측 변호인들은 최종 보고서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슈스미스는 이후 볼스, OFSTED, 해링게이 의회를 상대로 사법 심사를 청구했으며, 일련의 항소가 이어졌다. 보수당 야당은 "장관들이 사법 심사를 통해 법원이 아닌 자신들의 결정에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지지하기 위해" 볼스의 해고 권한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녀의 해고는 "절차상 부당하다"고 판결되어 보상금을 지급받았으며, 아동학교가족부는 영국 대법원에 항소할 허가를 거부당했다. 2013년 10월, 슈스미스가 해링게이 의회와 법정 밖 합의에 동의했으며, 확인되지 않은 보도에 따르면 '최대 60.00 만 GBP'의 금액이 언급되었다. 항소법원 판사 뉴버거 경은 볼스의 슈스미스 해고를 '불법적'이라고 묘사했지만, 볼스는 10월 29일 성명을 통해 "같은 상황에 직면하면 다시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볼스는 2009년 11월 19일 1차 독회를 거친 아동, 학교 및 가족 법안을 후원했다. 이 법안의 일부는 '배드맨 검토'에 대한 대응으로, 잉글랜드에서 자녀를 홈스쿨링하는 부모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여 교육의 질과 아동의 복지를 확인하기 위한 연간 검사를 포함할 예정이었다. 영국 전역의 홈스쿨링 학부모들은 이 제안된 법안을 철회해달라고 국회의원들에게 청원했다. 2010년 5월 총선을 앞두고 홈스쿨링 학부모 등록제와 의무 성교육 수업을 포함한 법안의 여러 부분이 교차 정당 지지를 얻지 못해 폐기되었다.
3.3. 예비 내각 및 주요 당직

2010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패배한 후, 에드 볼스는 해리엇 하먼 임시 당대표 하에서 예비교육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에드 밀리밴드가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된 후, 2010년 10월 8일 밀리밴드는 볼스를 예비내무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2011년 1월 20일까지 이 직책을 수행했으며, 앨런 존슨의 "개인적인 사유"로 인한 사임으로 밀리밴드는 볼스를 노동당의 예비재무장관으로 발표했다. 그는 2015년 총선에서 낙선할 때까지 이 역할을 맡았다.
예비재무장관으로서 볼스는 노동당 정책과 관련하여 밀리밴드와 함께 공동 기자회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밀리밴드와 함께 볼스는 예비재무장관으로서 "일자리와 성장을 위한 5대 계획"을 추진했다. 이 계획은 영국 경제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하며, 더 많은 사회 주택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보너스 세금 재도입, 장기 투자 조기 시행, 부가가치세 17.5% 인하, 주택 개량에 대한 부가가치세 5% 인하 (1년 한정), 1년 간의 국민 보험 면제 도입 등을 포함했다.
2012년 1월, 볼스는 공공 부문 임금 동결을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이는 렌 맥클러스키의 반발을 샀다. 그는 리보 스캔들과 관련하여 조지 오스본과 영국 하원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오스본은 볼스가 스캔들에 연루되었다고 비난했으나, 영국은행 부총재 폴 터커가 바클레이즈에 압력을 가하도록 독려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자 보수당 의원들은 불만을 표했다. 안드레아 리드솜은 오스본이 실수를 저질렀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3.4. 당 대표 경선 참여
고든 브라운이 총리와 영국 노동당 대표직에서 모두 사임한 후, 에드 볼스는 2010년 5월 19일 브라운의 후임자를 선출하는 2010년 노동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것을 발표했다. 볼스는 당대표 경선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33명의 영국 노동당 의원단 의원 추천을 확보한 세 번째 후보였다. 다른 경쟁자로는 전 영국 외무장관 데이비드 밀리밴드, 전 영국 보건사회복지장관 앤디 번햄, 평의원 다이앤 애벗, 그리고 전 영국 에너지기후변화장관 에드 밀리밴드가 있었는데, 에드 밀리밴드가 당선되었다. 볼스는 이 선거에서 3위를 차지했다.
3.5. 2015년 총선 낙선 및 이후
2015년 영국 총선에서 에드 볼스는 보수당의 안드레아 젠킨스에게 불과 0.9% 차이로 자신의 지역구 의석을 잃었다. 노동당 대표실은 투표일 2주 전부터 볼스가 낙선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가디언》의 래리 엘리엇은 이를 이번 선거의 포르티요 순간이라고 묘사했다. 5월 11일, 볼스가 의회를 떠나면서 재배치 및 의회 사무실 폐쇄 비용으로 최대 8.80 만 GBP의 경비를 받을 것이라고 보도되었다.
3.6. 의회 수당 관련 의혹
2007년 9월, 에드 볼스는 그의 아내 이벳트 쿠퍼와 함께 자유민주당 의원 노먼 베이커로부터 "하원 규칙의 정신을 위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들은 런던 북부에 있는 65.50 만 GBP 상당의 주택 비용을 지불하는 데 국회의원 수당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볼스와 쿠퍼는 스토크 뉴잉턴에 4개 침실 주택을 구입하고, 이를 자신들의 두 번째 주택(웨스트요크셔주 캐슬포드에 있는 본가 대신)으로 등록하여, 하원 추가 비용 수당으로 보고된 43.80 만 GBP의 주택 담보 대출에 대해 연간 최대 4.40 만 GBP의 보조금을 받을 자격을 얻었으며, 이 중 2.44 만 GBP를 청구했다. 두 사람 모두 런던에서 풀타임으로 일했으며 자녀들은 런던 지역 학교에 다녔다. 볼스와 쿠퍼는 "온 가족이 의회가 열리는 매주 요크셔 집과 런던 사이를 오갔다. 모두 주중에는 런던에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은 항상 런던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에 다녔다"고 주장했다.
볼스와 쿠퍼는 2년 동안 두 번째 주택 지정을 세 차례 "뒤집었다". 2008년 6월, 그들은 런던에 있는 사실상의 본가에 대해 경비를 청구했다는 의혹으로 의회 표준 위원에게 회부되었다. 그들의 합산 청구액은 2.40 만 GBP로, 단일 의원 수당보다 "약간 많았다". 위원회는 그들이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고 전체 양도소득세를 납부했으므로 무죄라고 판결했다.
4. 정치 활동 및 이념
4.1. 페이비언 협회와 정책 영향력
에드 볼스는 페이비언 협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92년, 그는 영국은행의 독립을 옹호하는 페이비언 소책자를 저술했는데, 이는 1997년 고든 브라운이 재무장관이 되었을 때 채택된 정책이었다. 볼스는 2006년 페이비언 협회의 부회장으로, 2007년에는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부회장으로서 그는 2006년 4월 페이비언 생애 기회 위원회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2006년 11월에는 협회의 '다음 10년' 강연 시리즈를 시작하여 환경에 대한 유럽의 긴밀한 협력을 주장했다.
볼스는 신노동당의 경제 개혁 의제에서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브라운과 함께 토니 블레어 계열 인사들과는 달리, 페이비언주의와 협동조합 운동과 같은 노동당 지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강조하면서도 정책 및 선거 측면에서 현대화된 면모를 보여주려 했다. 2006년 3월 《뉴 스테이츠먼》과의 인터뷰에서 마틴 브라이트는 볼스가 "사회주의자라는 용어의 사용이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이념 전쟁으로 상처받은 블레어와 브라운 같은 나이든 정치인들보다 자신의 세대에게는 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인터뷰에서 볼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동유럽의 경제 시스템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통합된 시장 기반 모델을 채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이제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의 문제입니다. 노동당, 페이비언 협회, 협동조합 운동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는 제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전통입니다."
4.2. 국제 활동
에드 볼스는 2006년, 2014년, 2015년 빌더버그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이스라엘 노동당 친구들의 회원이기도 했다.
5. 정치 은퇴 후 활동
5.1. 학계 및 연구 활동
정계 은퇴 후 에드 볼스는 하버드 대학교 존 F. 케네디 행정대학원의 선임 연구원으로 임명되었고, 킹스 칼리지 런던 정책 연구소의 객원 교수로도 활동했다. 2020년에는 킹스 칼리지 런던의 정치경제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5.2. 방송 및 미디어 출연

2016년, 그는 《더 그레이트 스포츠 릴리프 베이크 오프》에 참가했으며, 같은 해 BBC의 《스트릭틀리 컴 댄싱》 시즌14에 출연했다. 그는 러시아 출신 프로 댄서 카티아 존스와 파트너를 이루어 10주 차까지 생존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마이클 호건은 6주 차 할로윈 스페셜에서의 그의 공연에 대해 "아빠 춤을 추는 정치인은 스튜디오 관객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고, 심사위원들로부터는 웃음을 자아냈으며, 또 다른 댄스 오프를 피할 만큼 충분한 시청자 투표를 받았다"고 평했다. 그의 "강남스타일" 춤은 2017년 영국 아카데미 텔레비전상에서 '반드시 봐야 할 순간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21년 1월과 2월에는 BBC One의 《셀러브리티 베스트 홈 쿡》에서 우승했다. 현재 그는 ITV 아침 프로그램인 《굿 모닝 브리튼》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11월, 그는 영국 TV 쇼 《Would I Lie to You?》에 출연하여 한때 어린이 볼풀에서 기어 다니며 내무부 예산을 협상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2024년 1월 17일, 그는 《굿 모닝 브리튼》의 여행 에티켓 코너에서 실수로 진행자 수잔나 리드의 머리를 발로 차는 사고를 일으켜 화제가 되었다. 그는 즉시 사과했으며, 방송 후에도 여러 차례 사과를 반복했다.
2024년 8월 5일, 볼스는 당시 진행 중이던 영국의 반이민 폭동과 관련하여 자라 술타나 의원을 인터뷰했다. 술타나 의원이 폭동을 "이슬람혐오적"이라고 비난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볼스는 그녀의 말을 반복적으로 끊고 언쟁을 벌였다. 같은 방송에서 볼스는 내무장관인 아내 이벳트 쿠퍼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오프콤은 두 인터뷰 모두와 관련하여 총 8,201건의 민원이 접수되었다고 보고했다.
5.3. 스포츠 행정
2015년 12월, 에드 볼스는 자신이 지지하는 축구 클럽인 노리치 시티 FC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2018년 12월까지 이 직책을 수행했다.
5.4. 대중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에드 볼스는 《스트릭틀리 컴 댄싱》 출연과 "강남스타일" 춤으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의 자서전 《Speaking Out》은 2016년 8월에 출간되었다.
5.5. 다큐멘터리 및 공적 논평
2018년 7월 29일, BBC Two에서 3부작 다큐멘터리 《Travels in Trumpland with Ed Balls》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변화된 상황을 살펴보았다. 한 에피소드에서 볼스는 트럼프와 스포츠의 상관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프로 레슬링 경기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또 다른 3부작 다큐멘터리인 《Travels in Euroland with Ed Balls》는 2020년 1월 23일 BBC Two에서 방영되었으며, 유럽의 반엘리트 정서, 우익 정치의 부상, 그리고 긴축 정책이 유럽 정치에 미친 영향을 탐구했다.
2017년 9월, 볼스는 평론가 이언 데일이 선정한 '좌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74위에 올랐다. 2021년 5월, '평생 학습 주간'을 기념하여 볼스는 성인 교육 기관인 시티 리트에서 교장 마크 맬컴슨과 함께 특별 행사를 주최했다. 볼스는 평생 학습의 중요성과 시티 리트에서의 경험, 그리고 그의 회고록 《Appetite》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기관과 학생들에게 제공한 지원과 영감을 인정받아 시티 리트 평생 연구원 상을 수상했다.
2021년 11월 8일과 15일, 볼스는 BBC Two에서 2부작 다큐멘터리 《Ed Balls: Crisis In Care》를 진행하며 잉글랜드의 사회 복지 서비스 제공자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탐구했다. 2021년 11월 30일에는 BBC 텔레비전 프로그램 《Who Do You Think You Are?》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2023년 9월 14일, 볼스는 조지 오스본과 함께 정치경제학에 초점을 맞춘 정치 팟캐스트 《Political Currency》를 공동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센트리스트 대드"라는 밴드의 멤버로 드럼을 연주하며, 로버트 페스턴이 보컬을, 존 윌슨이 베이스 기타를 맡고 있다.
6. 대중적 이미지와 문화적 영향
2011년 4월 28일, 에드 볼스는 비서의 권유로 자신에 대한 최근 기사를 트위터에서 검색하려다가 실수로 검색어를 잘못된 입력창에 넣어 "Ed Balls"라는 트윗을 보냈다. 이 트윗은 수천 명에게 리트윗되었고, 볼스는 트윗을 삭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트윗은 현재까지도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다. 이 사건은 매년 4월 28일 "에드 볼스 데이"로 기념되며, 팔로워들은 그의 원본 메시지를 리트윗하고 다른 방식으로 이 날을 축하한다.
2015년, 볼스는 노동당 기금 모금을 위한 경매에 자신의 유명한 트윗을 액자에 넣어 서명한 인쇄물을 제출하기도 했다. 2016년 "에드 볼스 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볼스는 해당 트윗이 새겨진 케이크를 만들었다.
원본 트윗이 올라온 지 6년 후인 2017년 "에드 볼스 데이"에는 버진 애틀랜틱과 내셔널 트러스트를 포함한 여러 기관들이 트윗을 올렸다. 특히 내셔널 트러스트의 트윗은 테레사 메이 당시 총리가 부활절 달걀 사냥 홍보물에서 "부활절"이라는 단어를 생략한 것을 비판한 것을 풍자한 것이었다. 사건 발생 10년 후인 2021년에도 "에드 볼스 데이"는 여전히 기념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공휴일처럼 "해피 에드 볼스 데이"를 서로에게 전했다.
7. 개인사

에드 볼스는 노동당 국회의원이자 훗날 내무장관이 된 이벳트 쿠퍼와 1998년 1월 10일 이스트본에서 결혼했다. 쿠퍼는 2010년부터 2024년까지 몰리 아웃우드와 이웃한 지역구인 폰테프랙트, 캐슬포드 및 노팅리의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들에게는 세 자녀가 있다. 2008년 1월, 쿠퍼가 재무부 수석 비서관이 되면서 그들은 영국 내각에서 함께 봉직한 최초의 부부가 되었다.
2010년 9월, 영국 말더듬 협회는 볼스가 협회의 후원자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협회 최고 경영자인 노버트 리크펠트는 볼스가 자신의 말더듬증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것을 칭찬했다.
2013년 6월, 볼스는 2012년 12월에 빨간불을 위반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또한 2013년 4월에 과속을 했고, 2010년 총선 캠페인 중 운전 중에 휴대폰을 사용했음을 인정했다. 2014년 8월 5일, 그는 차량 사고 후 정차하지 않은 혐의로 900 GBP의 벌금과 운전 면허 벌점 5점을 부과받았다. 그는 차량이 접촉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떤 손상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확인을 위해 정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볼스는 2015년 채널 4 텔레비전 영화 《연합》에서 니콜라스 번스에 의해 연기되었다.
8. 저서
- 《Speaking Out》 (2016년 8월): 자서전적 회고록. 이 책에서 그는 2015년 노동당의 4주간 총선 캠페인이 "놀랍도록 기능 부전적"이었고 "우리는 정부로 복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럴 자격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제러미 코빈의 리더십 프로젝트를 "사람들의 삶의 현실과 동떨어진 좌파적 유토피아적 환상"이라고 묘사했다.
- 《Appetite》 (2021년 8월 19일): 가족과 음식에 대한 회고록.
9. 평가 및 영향력
에드 볼스는 영국 노동당의 주요 인물로서 경제 정책과 사회 정책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고든 브라운의 핵심 경제 고문으로서 영국은행 독립을 포함한 신노동당의 경제 개혁 의제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재무경제비서와 아동학교가족장관으로서 그는 교육 및 아동 복지 정책을 통합하고 교육 의무 이수 연령을 높이는 등 중요한 정책 변화를 이끌었다. 특히 14세 학생들을 위한 SAT 시험 폐지 결정은 교사와 학부모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의 정치 경력은 베이비 P 사망 사건과 관련된 샤론 슈스미스 해고 논란, 의회 수당 관련 의혹 등 여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며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예비재무장관으로서 그는 노동당의 "일자리와 성장을 위한 5대 계획"을 통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했다.
정계 은퇴 후, 볼스는 학계와 방송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그의 영향력을 확장했다. 특히 《스트릭틀리 컴 댄싱》을 통해 보여준 인간적인 면모와 유머는 그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실수에서 시작된 '에드 볼스 데이'는 디지털 시대의 독특한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으며 그의 대중적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말더듬증을 공개하며 관련 협회의 후원자로 활동하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다큐멘터리 제작과 팟캐스트 활동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에드 볼스는 경제 전문가로서의 지식과 함께 대중과의 소통 능력을 겸비하여, 영국 정치와 문화 양면에서 독특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10. 관련 항목
- 에드 볼스 문서 유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