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어준선(魚浚善, Auh June-sun어준선영어, 魚浚善어준선일본어)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1937년 5월 5일 충청북도 보은군 탄부면에서 태어나 2022년 8월 4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본관은 함종 어씨이며, 호는 해담(海談)이다. 그는 안국약품의 회장직을 역임하며 제약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제15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국가 경제 및 사회 정책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IMF 외환 위기 당시 기업의 해외 헐값 매각을 막기 위한 자산 재평가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의약분업 시행 연기를 결정하는 등 국가적 난관 극복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대한약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서 향남제약공업단지 조성과 KGMP 시설 도입에 기여하며 한국 제약 산업의 현대화를 이끌었다. 언론 자유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바탕으로 1975년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건 당시 정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광고의 정당성을 주장한 일화는 그의 강직한 면모를 보여준다.
2. 생애 및 배경
어준선은 충청북도 보은군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그의 학업과 초기 경력은 이후 기업인 및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2.1. 출생 및 유년 시절
어준선은 1937년 5월 5일 충청북도 보은군 탄부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함종 어씨이며, 해담(海談)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그는 조선 말기의 정치인 어윤중과는 먼 친척 관계이지만, 같은 성씨와 가까운 출신 지역 덕분에 두 가족은 친척처럼 지냈다. 어준선의 할아버지는 어윤중의 외아들인 어영선의 가정교사를 지냈으며, 어준선 본인도 중앙대학교 재학 시절 어윤중의 손자인 어강의 서울특별시 흑석동 자택에서 하숙 생활을 했다.
q=충청북도 보은군|position=right
2.2. 학력
어준선은 탄부초등학교와 보은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전고등학교를 거쳐 중앙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14기를 수료하며 경영 전문성을 더욱 강화했다. 그의 학력은 이후 제약 산업과 정치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3. 기업 활동
어준선은 안국약품의 회장으로서 경영 활동을 이끌었으며, 대한약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서 한국 제약 산업 전반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3.1. 안국약품 경영
어준선은 서울약품의 파견 관리 이사 및 영업 상무 이사를 거쳐, 1969년 안국약품을 약 1.00 억 KRW에 인수하며 대표이사 회장직에 취임했다. 그는 안국약품의 경영을 맡은 이후 지속적으로 신약 개발에 주력했다. 특히 2006년 출시된 고혈압 치료제와 관련하여 화이자의 노바스크 특허 침해 소송에서 2년간의 심리 끝에 안국약품이 승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10년대에는 의약품 개발을 넘어 바이오 분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3.2. 제약 산업 기여
안국약품 경영 외에도 어준선은 한국 제약 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대한약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서 화성시에 향남제약공업단지를 조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입주 기업들이 KGMP (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 기준) 시설을 도입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한국 제약 산업의 품질 및 생산 시스템을 선진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 외에도 한국제약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산업 전반에 걸쳐 전문성과 경험을 나누었다.
4. 정치 활동
어준선은 제15대 국회의원으로서 국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4.1. 국회의원 활동
어준선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제15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국회에서는 재정경제위원회 위원과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며 국가 경제 및 보건 정책 수립에 참여했다. 또한 제2기 노사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노사 관계 안정화와 사회적 합의 도출에 기여했다. IMF 외환 위기 당시에는 경제청문회특별위원회 간사위원과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기업구조조정 및 실업대책위원회 간사위원을 맡아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한 논의와 정책 마련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4.2. 정당 활동
어준선은 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당내에서 충북도당 위원장을 역임하며 지역 정치 기반을 다졌다. 그는 제13대 총선부터 제16대 총선까지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영동군 선거구에서 꾸준히 출마했으나,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것이 유일한 국회의원 당선 기록이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는 자유민주연합의 공천을 박준병에게 양보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하며 정계에서 은퇴하고 기업 경영에 전념했다.
4.3. 주요 입법 및 정책 활동
국회의원 재임 기간 동안 어준선은 국가 경제 및 사회 정책에 영향을 미친 여러 중요한 활동을 수행했다. 특히 IMF 외환 위기가 한창이던 시기에 한국 기업들이 헐값에 해외로 매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산 재평가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통과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의약분업 제도의 시행으로 인한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 제도 시행을 1년 연기하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활동들은 당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경제 안정과 사회적 혼란 방지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5. 선거 기록
어준선의 역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선거 | 대수 | 구분 | 지역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결과 | 비고 |
|---|---|---|---|---|---|---|---|---|---|---|
| 1988년 | 총선 | 13대 | 국회의원 | 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 | 신민주공화당 | 45,934표 | 37.99% | 2위 | 낙선 | |
| 1992년 | 총선 | 14대 | 국회의원 | 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 | 통일국민당 | 33,614표 | 32.21% | 2위 | 낙선 | |
| 1996년 | 총선 | 15대 | 국회의원 | 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 | 자유민주연합 | 33,117표 | 35.27% | 1위 | 당선 | 초선 |
| 2000년 | 총선 | 16대 | 국회의원 | 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 | 무소속 | 16,419표 | 18.14% | 4위 | 낙선 |
6. 개인 활동 및 일화
어준선은 기업 및 정치 활동 외에도 다양한 개인 활동과 사회 공헌에 힘썼으며, 그의 소신을 엿볼 수 있는 여러 일화들이 전해진다.
6.1. 사회 공헌 및 장학 사업
어준선은 고향인 충청북도 보은군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보은군 학생들을 위한 장학 사업을 꾸준히 펼쳐 지역 인재 양성에 힘썼다.
6.2. 언론과의 관계 및 소신
어준선은 언론 자유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75년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는 중앙정보부에 불려가서도 안국약품 광고의 정당성을 굽히지 않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정부의 압력을 받기도 했으나, 그의 이러한 행동은 언론의 자유와 기업의 정당한 활동을 지키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7. 사망
어준선은 2022년 8월 4일 이른 아침, 지병으로 인해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졌다.
8. 평가 및 영향
어준선은 기업인과 정치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다양한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나, 그의 활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나 논란은 특별히 알려진 바 없다.
8.1. 긍정적 평가
어준선은 안국약품을 인수하여 신약 개발에 꾸준히 투자하고 바이오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등 제약 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특히 고혈압 치료제 관련 화이자와의 특허 소송에서 승소하며 국내 제약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대한약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서 향남제약공업단지 조성과 KGMP 시설 도입을 주도하여 한국 제약 산업의 현대화와 국제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정치인으로서는 IMF 외환 위기 당시 자산 재평가법 개정안 발의와 의약분업 시행 연기 결정 등을 통해 국가 경제 위기 극복과 사회적 혼란 최소화에 기여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 1975년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건 당시 정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언론 자유에 대한 소신을 지킨 일화는 그의 강직한 성품과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8.2. 비판 및 논란
어준선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 현재까지 공개적으로 제기된 구체적인 비판이나 논란은 확인되지 않는다.
8.3. 후대에 미친 영향
어준선의 경영 철학은 안국약품이 지속적으로 신약 개발에 투자하고 기술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그의 제약 산업에 대한 기여는 한국 의약품 생산 및 품질 관리의 선진화를 이끌어 후대 제약 기업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또한 IMF 외환 위기 극복 과정에서의 정치적 활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기업과 정치의 역할에 대한 시사점을 남겼으며, 고향 학생들을 위한 장학 사업은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