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 및 배경
알프레드 예르마니시는 1967년 1월 21일 슬로베니아의 코페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였으며, 그의 신장은 183 cm였다. 지역 유스팀인 FC 코페르의 유소년 시스템에서 축구 선수로서의 기량을 갈고닦았다. 이곳에서 그는 기본적인 기술과 전술을 익히며 프로 선수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을 다졌다.
2. 선수 경력
알프레드 예르마니시는 1986년 고향 팀인 FC 코페르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래, 슬로베니아 리그를 비롯해 일본, 오스트리아, 키프로스 등 다양한 리그에서 활약했다. 뛰어난 미드필더로서 두 번의 슬로베니아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슬로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초기 멤버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1. 클럽 경력
예르마니시는 1986년 FC 코페르에서 성인 팀에 데뷔하여 1989년까지 활약하며 29경기 출전에 1골을 기록했다. 이후 올림피아 류블랴나로 이적하여 1989년부터 1992년까지 66경기 3골을 기록했고, 1991-92 시즌에는 슬로베니아 프르바리가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1992년에는 일본의 요코하마 플뤼게루스로 이적했으나, 아쉽게도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같은 해 다시 코페르로 복귀하여 12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 1993-94 시즌에는 무라 소속으로 18경기 1골을 기록했으며, 1994-95 시즌에는 오스트리아의 명문 라피트 빈에서 18경기 1골을 기록하며 해외 무대에서도 경험을 쌓았다.
1995-96 시즌에는 고리차로 이적하여 30경기 7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1996-97 시즌에는 키프로스의 아포엘 니코시아에서 24경기 2골을 기록하며 또 다른 해외 리그를 경험했다. 이후 다시 슬로베니아로 돌아와 1997-98 시즌에는 프리모리예에서 17경기 3골, 1998-99 시즌에는 코로탄 프레발례에서 39경기 11골을 기록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1999-2000 시즌에는 루다르 벨레네에서 14경기 4골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자신의 친정팀인 FC 코페르로 세 번째 복귀하여 2003년까지 80경기 6골을 기록했으며, 2004년에 코페르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의 총 클럽 경력은 347경기 출전에 41골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된다.
2.2. 국가대표 경력
알프레드 예르마니시는 슬로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초기 멤버로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1992년 6월 3일, 슬로베니아의 첫 공식 A매치인 에스토니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슬로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29번의 국제 A매치에 출전하여 1골을 득점했다.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1998년 4월 체코와의 친선 경기였다. 예르마니시는 슬로베니아 축구의 초기 발전에 기여하며 국가대표팀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일조했다.
3. 감독 경력
선수 생활을 마감한 알프레드 예르마니시는 이후 축구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감독 또는 코치로서 여러 팀을 지도하며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후배들에게 전수했다.
2003년에는 선수 시절 마지막 팀이었던 FC 코페르의 감독을 맡았으며, 2008년에는 보니피카의 지휘봉을 잡았다. 가장 최근에는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이졸라의 감독을 역임하며 지도자로서의 경력을 이어갔다.
4. 통계
4.1. 클럽 통계
| 연도 | 클럽 | 출장 | 득점 |
|---|---|---|---|
| 1986-1989 | 코페르 | 29 | 1 |
| 1989-1992 | 올림피아 류블랴나 | 66 | 3 |
| 1992 | 요코하마 플뤼게루스 | 0 | 0 |
| 1992-1993 | 코페르 | 12 | 2 |
| 1993-1994 | 무라 | 18 | 1 |
| 1994-1995 | 라피트 빈 | 18 | 1 |
| 1995-1996 | 고리차 | 30 | 7 |
| 1996-1997 | 아포엘 | 24 | 2 |
| 1997-1998 | 프리모리예 | 17 | 3 |
| 1998-1999 | 코로탄 프레발례 | 39 | 11 |
| 1999-2000 | 루다르 벨레네 | 14 | 4 |
| 2000-2003 | 코페르 | 80 | 6 |
| 총 합계 | (클럽 합계) | 347 | 41 |
4.2. 국가대표 통계
| 연도 | 출장 | 득점 |
|---|---|---|
| 1992 | 1 | 0 |
| 1993 | 2 | 0 |
| 1994 | 9 | 1 |
| 1995 | 7 | 0 |
| 1996 | 3 | 0 |
| 1997 | 2 | 0 |
| 1998 | 5 | 0 |
| 합계 | 29 | 1 |
5. 평가 및 유산
알프레드 예르마니시는 슬로베니아 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그의 활약은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새로운 국가로서 축구계를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5.1. 주요 업적
예르마니시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두드러진 업적은 슬로베니아 프르바리가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그는 1991-92 시즌 올림피아 류블랴나 소속으로, 1995-96 시즌에는 고리차 소속으로 리그 정상에 오르며 팀의 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그의 뛰어난 실력과 리더십을 방증하는 결과이다. 또한, J리그의 요코하마 플뤼게루스와 오스트리아의 라피트 빈, 키프로스의 아포엘 등 해외 리그에서도 활약하며 슬로베니아 축구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무엇보다 그는 슬로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창립 멤버로서, 1992년 슬로베니아의 첫 공식 A매치에 출전하며 국가대표팀의 역사적인 시작을 함께했다. 29경기에 걸친 국가대표 활약은 그가 슬로베니아 축구의 초기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준다.
5.2. 영향
알프레드 예르마니시의 선수 경력은 슬로베니아 축구계에 다방면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국내 리그에서 지속적으로 우승 경쟁력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을 통해 슬로베니아 선수들이 국제적인 경험을 쌓고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요코하마 플뤼게루스로의 이적은 당시로서 쉽지 않은 도전이었으며, 이는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국가대표팀에서의 역할은 더욱 중요했다. 독립 직후 약체였던 슬로베니아 대표팀에 합류하여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으며, 그의 경험과 투지는 팀에 안정감과 동기 부여를 제공했다. 은퇴 후에도 감독으로서 후배 양성과 팀 지도에 힘쓰며 슬로베니아 축구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는 슬로베니아 축구의 전환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6. 같이 보기
- 미드필더
- 슬로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 NK 올림피아 류블랴나 (1945-2005)
- 요코하마 플뤼게루스
- ND 고리차
- FC 코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