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안도 유야(安藤 優也안도 유야일본어 Andō Yūya)는 1977년 12월 27일 일본 오이타현 오이타시에서 태어난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 프로 야구 코치이다. 그는 투수로서 한신 타이거스에서 2002년부터 2017년까지 활약하며 팀의 주요 전력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03년 센트럴 리그 우승과 2005년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일본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은퇴 후에는 한신 타이거스의 코치로 전향하여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고 팀의 2023년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는 등 지도자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최고 150 km/h의 직구와 뛰어난 변화구, 그리고 정교한 제구력을 겸비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안도 유야는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며, 학창 시절과 사회인 야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프로 선수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안도 유야는 1977년 12월 27일 오이타현 오이타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후지가오카 소년 야구단'에서 활동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후배로는 훗날 프로 야구 선수가 되는 테페이가 있다.
2.1. 학창 시절
안도 유야는 오이타 현립 오이타오기노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야구 선수로 활동했으나, 현 대회 8강이 최고 성적일 정도로 비교적 무명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동향 출신인 야마나카 마사타케 감독이 이끄는 호세이 대학 야구부에 입단했다. 대학 2학년 때 게이오기주쿠 대학의 다카하시 요시노부에게 당시 대학 선배인 다부치 고이치가 가지고 있던 도쿄 6대학 리그 통산 홈런 기록을 깨는 23번째 홈런을 허용했다. 이 시기에 오른쪽 어깨 부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대학 통산 7승 4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2.2. 사회인 야구 경력
대학 졸업 후 안도 유야는 본래 고향의 오이타 은행에 취직하여 연식 야구로 전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대학 동급생의 권유와 "23번째 홈런을 맞은 투수라는 말을 계속 듣기는 싫다"는 생각에 오이타 은행의 내정(입사 예정)을 사퇴하고 토요타 자동차에 입사하여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프로 입단 시 받은 계약금 전액을 오이타 은행에 예금하며 "은혜 갚기"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토요타 자동차 시절 안도 유야는 최고 150 km/h의 강속구를 던지는 본격파 우완 투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제71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와 제72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2년 연속 출전했으며, 2001년에는 IBAF 월드컵 일본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2승 0패,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하며 11이닝 동안 5안타만 허용하고 14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다. 같은 해 가을 2001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대학 후배이자 배터리를 이뤘던 아사이 료와 함께 자유 획득 범위로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다. 그의 등번호는 16번으로 결정되었다. 입단 첫해 코치로 부임한 다부치 고이치는 안도에게 신기록 홈런을 맞은 이야기를 농담 삼아 건넸다고 한다.
3. 프로 선수 경력
안도 유야는 한신 타이거스에서 16년간 활약하며 선발과 중간 계투를 오가며 팀의 주요 전력으로 활약했다.
3.1. 프로 입단 및 데뷔
2001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한신 타이거스에 자유 획득 범위로 입단하며 등번호 16번을 받았다. 2002년 4월 7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등판 및 첫 선발 등판을 기록했고, 2회말 이와무라 아키노리를 상대로 첫 탈삼진을 잡아냈다. 같은 해 4월 14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프로 데뷔 첫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이후 부진으로 인해 2002년 시즌은 3승 5패로 마무리했다.
3.2. 선수 경력의 주요 시기
안도 유야는 프로 데뷔 이후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긴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 2003년: 중간 계투 전향 및 우승 기여
중간 계투로 전향하여 같은 해 한신으로 이적한 이라부 히데키의 조언을 받아 1군에 정착했다. 51경기에 등판하여 1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시즌 중반부터 마무리 투수로 정착한 제프 윌리엄스와 함께 '승리 공식'을 구축, 팀의 18년 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시즌 종료 후 추정 연봉 4100.00 만 JPY로 계약을 갱신했다.
- 2004년: 올림픽 출전과 안정감 하락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야구 일본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시즌 도중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러나 시즌 전체적으로는 전년도만큼의 안정감을 보여주지 못하며 통산 평균자책점이 3.58로 상승했다.
- 2005년: 선발 투수 재전향 및 최고 승률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의 의향과 본인의 희망에 따라 선발 투수로 재전향했다. 투구 폼을 2단 모션에서 1단으로 변경한 후 11승을 거두고 규정 투구 이닝에도 도달했다. 리그 최고 승률인 0.688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다시 한번 기여했다.
- 2006년: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및 첫 완봉승
선발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초반 급성 편도선염으로 잠시 등록 말소되었고, 이후 구보타 도모유키의 이탈로 인한 투수진 재편으로 잠시 중간 계투로 전환되었다. 여름부터 다시 선발 로테이션에 복귀하여 9월 3일 요코하마전에서 프로 첫 완봉승을 달성하는 등 2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추정 연봉 9800.00 만 JPY로 계약을 갱신했다.
- 2007년: 부상과 부진
춘계 스프링 캠프에서 오른쪽 다리를 다쳐 시즌 시작이 늦어졌고, 이후 오른쪽 어깨에도 이상을 느껴 '오른쪽 어깨 견봉하 활액낭염' 진단을 받아 오랫동안 2군에서 재활했다. 8월 28일 중간 계투로 시즌 첫 등판했고, 이후 선발로도 복귀했으나 시즌 막판 3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시즌 종료 후 추정 연봉 7800.00 만 JPY로 계약을 갱신했다.
- 2008년: 개인 최다승 및 1억 엔 돌파
춘계 캠프부터 빠르게 몸을 만들고 시범 경기에서도 호조를 유지하여 3월 28일 요코하마전에서 개인 첫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5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 해 득점 지원율 5.79는 양대 리그 최고 기록이었고 타선 지원도 풍부했다. 시즌 내내 선발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팀 내 최다이자 개인 신기록인 13승을 올렸다. 10월 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동률 선두 결정전(도쿄 돔)에 선발 등판했으나 4이닝 2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시즌 종료 후 추정 연봉 1.20 억 JPY로 계약을 갱신하며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연봉 1억 엔을 돌파했다.
- 2009년: 2년 연속 개막전 선발 및 부진
2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고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4월 29일 요코하마전에서 개인 최다인 1이닝 6실점을 허용하는 등 시즌 내내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호투를 해도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하는 불운도 겹쳐 9월 1일 선발 승리 이후 승리 없이 8승 12패로 시즌을 마쳤다. 9월 말부터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전권을 놓고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벌인 6경기 중 3경기에 선발 등판했으나 모두 패전(안도 본인이 책임 투수가 된 것은 2경기)하며 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실패에 영향을 미쳤다.
- 2010년: 최악의 시즌
오프 시즌 동안 감량에 힘쓰며 심기일전했으나, 3월 20일 시범 경기에서 1이닝 7안타 6실점을 허용하며 불안감을 남긴 채 3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다. 3월 26일 개막전에서도 불안한 투구를 보였고, 이후 등판에서도 구위력 저하가 두드러져 4경기 연속 승리 없이 4월 26일 2군으로 강등되었다. 시즌 중반 1군에 복귀하여 선발과 중간 계투 모든 형태로 등판했지만 7월 8일 야쿠르트전에서 개인 최다 기록을 경신하는 1이닝 7실점을 허용하는 등 투구 내용이 나아지지 않아 8월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시즌 막판에는 오른쪽 어깨 부상까지 겹치며 투구 이닝을 크게 웃도는 피안타를 허용, 평균자책점 7.27, WHIP 1.77로 프로 데뷔 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2년 연속 연봉 삭감을 통보받아 추정 연봉 7700.00 만 JPY로 계약을 갱신했다.
- 2011년: 첫 무승 시즌
오른쪽 어깨 부상 영향으로 시범 경기와 정규 시즌 모두 2군에서 시작했다. 웨스턴 리그에서의 호투가 인정되어 6월 12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 선발로 1군에 복귀했으나, 2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3실점하며 교체되었다. 결국 이 경기가 시즌 유일한 1군 등판이었고,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승리 없이 시즌을 마쳤다. 시즌 종료 후 추정 연봉 5800.00 만 JPY로 계약을 갱신했다.
- 2012년: 선발 복귀와 부활의 조짐
중간 계투에서 선발로 전향하는 고바야시 히로유키와 선발 6선발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시범 경기에서 호조를 보이며 선발 6선발로 낙점되었고, 4월 5일 야쿠르트전에서 7이닝 무실점 호투로 2010년 8월 19일 이후 595일 만의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1군 공식전 전체적으로는 13경기 등판에 3승 7패, 평균자책점 4.05에 그쳤다.
- 2013년: 중간 계투 재전향 및 핵심 불펜
다시 중간 계투로 전향했다. 6월 2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교류전에서 9년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 개막 이후 12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58경기에 등판하여 23 홀드를 올리며 핵심 불펜으로 활약했다. 시즌 종료 후 추정 연봉 7500.00 만 JPY로 계약을 갱신했다。
- 2014년: 2년 연속 50경기 이상 등판 및 포스트시즌 첫 승
한때 선발 재전향도 거론되었으나 시즌에는 중간 계투로 기용되었다. 전년도만큼의 안정감은 없었지만 정규 시즌에서 2년 연속 50경기 이상 1군 공식전에 등판했다. 평균자책점은 3.80이었으나 6승 2패를 기록했고, 2년 연속 23 홀드를 올렸다. 팀이 시즌 2위로 진출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포스트시즌 첫 승리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추정 연봉 8500.00 만 JPY로 계약을 갱신했다.
- 2015년: 어깨 부상과 연봉 삭감
개막 직후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잠시 전력에서 이탈했으나, 1군 공식전에서 3년 연속 5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 시즌 전반기에 역전 홈런을 허용하며 2패를 기록하는 등 부진한 영향으로 통산 성적은 5승 4패 15 홀드에 그쳤다. 그러나 통산 평균자책점은 3.02로 전년보다 약 1점 가까이 개선되었다. 시즌 종료 후 본인과 대부분의 예상을 뒤엎고 구단으로부터 연봉 삭감을 통보받아 추정 연봉 8200.00 만 JPY로 계약을 갱신했다.
- 2016년: 안정적인 활약
개막을 2군에서 맞았으나 4월 10일 1군에 등록되었다. 1군 공식전 전체적으로 4년 연속 50경기 등판을 달성했으며, 0승 1패 11 홀드를 기록했으나 평균자책점을 2.53까지 개선했다.
- 2017년: 현역 은퇴
2015년까지 함께 구원진을 이끌었던 후쿠하라 시노부의 은퇴(2군 육성 코치 전향)로 팀의 현역 최고령 투수(야수를 포함하면 후쿠도메 고스케와 동갑내기 최고령 선수)로 시즌을 맞이했다. 그러나 전년도 2군 생활에 전념했던 구와바라 겐타로가 시범 경기부터 구원으로 호투를 이어간 영향 등으로 공식전을 2군에서 시작했다. 2군 웨스턴 리그 공식전에서는 7월 하순까지 23경기 등판(총 투구 이닝 22이닝)에서 평균자책점 0.41을 기록하는 등 셋업맨으로서 호투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투수들을 중용하는 팀 사정상 1군 승격 기회가 없었다. 체력 저하를 느낀 그는 8월경부터 이번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9월 5일 등판이 결과적으로 은퇴 발표 전 마지막 등판이 되었으며, 1이닝을 던지며 이시카와 슌에게 3점 적시 3루타를 맞는 등 4실점했다. 이후 9월 12일 구단에 은퇴 의사를 전달했고, 14일 구단을 통해 은퇴를 발표했다. 이튿날인 15일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는 "매일 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은퇴를 결정하면서 어깨의 짐을 내려놓았다",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고시엔에서 1군 첫 승리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이 직장이 된 것은 꿈만 같았고, (팬들의) 성원이 힘이 되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소감을 밝혔다.
한신 구단은 2017년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인 고시엔 구장에서의 주니치전을 안도의 '은퇴 경기'로 10월 10일에 개최했다. 안도는 이 경기의 8회초에 현역 마지막 마운드에 올랐으나, 처음 상대한 이시카와 슌에게 1군 공식전 첫 홈런을 허용했다. 다음 타자인 대타 노모토 게이에게도 강렬한 땅볼을 맞았지만, 경기 전 현역 은퇴를 선언한 3루수 아라이 료타의 다이빙 캐치(기록은 3루수 땅볼)로 이 해 유일한 1군 공식전 등판을 마쳤다. 경기 종료 후 열린 은퇴 세리머니에서는 "대단한 능력도 없고 대단한 선수도 아니었지만, 한신에서 능력을 모두 쏟아부었다. 현역 생활에 거의 후회는 없다"고 회고하면서도, "일본 시리즈에 3번 출전했지만, 한 번도 일본 제일을 달성하지 못한 것만이 아쉽다"고 고백했다. 이어서 4일 후(10월 14일)부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임할 한신 선수들을 염두에 두고, "'일본 제일'이라는 명예와 목표를 지금 여기에 있는 팀 동료들과 나루오하마에서 1군을 목표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후배들에게 맡기고 유니폼을 벗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은 후, 아라이 료타와 함께 고시엔 구장 내를 한 바퀴 돌며 한신 한 길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10월 26일부로 NPB로부터 임의 은퇴 선수로 공시되었다.
3.3. 올림픽 출전
안도 유야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야구 일본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았다.
3.4. 선수로서의 특징
안도 유야는 최고 150 km/h의 강속구와 날카로운 변화구에 정평이 나 있는 투수였다. 그의 변화구는 슬라이더, 슈트, 포크, 커브 등을 구사했다. 특히 뛰어난 제구력이 그의 강점이었으며, 동료였던 나카타니 히토시는 "안도 선수의 우타자 바깥쪽 낮은 코스 제구력은 팀 내에서도 단연 최고였다"고 평가했다. 많은 동료들이 "이상적"이라고 동경할 만큼 아름답고 이치에 맞는 투구 폼의 소유자였다. 동료였던 후지카와 규지와 후지타 타이요는 "안도 선수는 천천히 다리를 들어 올리고 확실히 체중 이동을 하며, 팔 스윙은 그다지 빠르지 않은데도 구속이 나온다. 그런 투구 자세로 그 정도 공이 오면 타자들은 치기 어렵다"고 극찬했다.
4. 코치 경력
안도 유야는 현역 은퇴 후 곧바로 코치로 전향하여 한신 타이거스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7년 10월 23일, 그는 아라이 료타와 함께 2018년부터 한신 타이거스의 2군 육성 코치를 맡는다고 발표되었다. 그의 등번호는 86번으로 결정되었으며, 후쿠하라 시노부가 2군 투수 코치로 이동함에 따라 육성 코치로서 젊은 투수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0년까지 2군 육성 코치로 활동했으며, 2021년부터 2022년까지는 2군 투수 코치를 역임하며 무라카미 쇼키 등의 젊은 투수들을 육성하는 데 기여했다. 2023년부터는 1군 투수 코치로 승격되었고, 와다 유타카가 2군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함에 따라 등번호는 88번으로 변경되었다. 2023년 시즌에는 중반부터 9인 불펜 체제를 구축한 것이 주효했으며, 안도 코치는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연투한 투수, 많은 공을 던진 투수, 컨디션이 좋지 않은 투수들을 쉬게 하면서 기용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은 당초 방침이 아니었던 원포인트 릴리프 기용도 도입했고, 유아사 아쓰키의 이탈이나 하마치 마스미의 부진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지만, 선발 후보였던 기리시키 다쿠마가 중간 계투로 두각을 나타내는 등 기쁜 예상 밖의 성과도 있었다. 이 해 팀의 평균자책점은 12개 구단 중 최고인 2.66을 기록하며 팀의 센트럴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2025년부터는 1군 투수 치프 코치로 직책이 변경되었다.
5. 개인사 및 기타
안도 유야의 애칭은 '안짱'이다. 그는 한신 입단 후 동료였던 가네모토 도모아키가 기획한 '가네모토 상'(선발 투수는 10승 이상 달성 시 고급 손목시계 증정, 미달성 시 벌칙)의 단골이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목표 달성에 실패하여 2년 연속으로 삭발을 했다. 2007년 영화 《푸른 하늘의 룰렛》에 팀 동료 후쿠하라 시노부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5.1. 등장곡
- 2004년: Do As Infinity의 "모험자들"
- 2005년: 조스 스톤의 "You Had Me"
- 2006년 ~ 2017년: 슈퍼밴드의 "힘내자!!"
- 이 곡은 한신 타이거스의 캠프지 중 하나인 고치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슈퍼밴드가 안도 유야를 위해 특별히 작곡한 곡이다.
6. 수상 기록 및 업적
안도 유야는 선수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수상 기록과 업적을 남겼다.
- 타이틀
- 최고 승률: 1회 (2005년)
- 당시 NPB 연맹 표창은 없었으나, 센트럴 리그에서는 1972년까지와 2013년 이후에 표창되었다.
- 최고 승률: 1회 (2005년)
- 표창
- 월간 MVP: 1회 (2006년 9월)
- JA 전농 Go・Go 상: 1회 (구원상: 2003년 7월)
- 국제 대회
-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2004년)
- 개인 통산 기록
- 첫 등판·첫 선발: 2002년 4월 7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3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 첫 탈삼진: 2002년 4월 7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3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2회말 이와무라 아키노리로부터 헛스윙 삼진
- 첫 승리·첫 선발 승리: 2002년 4월 14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6차전 (한신 고시엔 구장), 8이닝 무실점
- 첫 세이브: 2003년 5월 3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7차전 (한신 고시엔 구장), 8회초 2사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과 1/3이닝 무실점
- 첫 완투 승리: 2005년 7월 28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2차전 (도쿄 돔), 9이닝 1실점
- 첫 홀드: 2006년 7월 6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2차전 (한신 고시엔 구장), 7회초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
- 첫 완봉 승리: 2006년 9월 3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0차전 (요코하마 스타디움)
- 첫 안타: 2002년 5월 3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7차전 (한신 고시엔 구장), 5회말 이시카와 마사노리로부터 좌전 안타
- 첫 타점: 2005년 9월 3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9차전 (삿포로 돔), 6회초 가도쿠라 겐으로부터 투수 앞 적시 내야 안타
- 1000 투구 이닝: 2014년 5월 13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7차전 (도라야키 드라마틱 파크 요나고 시민 구장), 9회말 히로세 준을 투수 앞 땅볼로 잡아내며 달성 (역대 339번째)
- 등번호
- 16 (2002년 ~ 2017년)
- 86 (2018년 ~ 2022년)
- 88 (2023년 ~ )
7. 통산 성적
안도 유야의 일본 프로 야구 통산 투구 및 수비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소속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볼넷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회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2002 | 한신 | 17 | 8 | 0 | 0 | 0 | 3 | 5 | 0 | -- | .375 | 253 | 59.2 | 51 | 7 | 22 | 0 | 3 | 40 | 5 | 1 | 31 | 25 | 3.77 | 1.22 |
2003 | 51 | 0 | 0 | 0 | 0 | 5 | 2 | 5 | -- | .714 | 245 | 61.0 | 44 | 2 | 19 | 2 | 1 | 60 | 1 | 0 | 11 | 11 | 1.62 | 1.03 | |
2004 | 57 | 0 | 0 | 0 | 0 | 5 | 8 | 5 | -- | .385 | 254 | 60.1 | 53 | 10 | 20 | 0 | 3 | 72 | 1 | 0 | 25 | 24 | 3.58 | 1.21 | |
2005 | 24 | 23 | 3 | 0 | 2 | 11 | 5 | 0 | 0 | 0.688 | 592 | 146.0 | 142 | 15 | 25 | 0 | 7 | 119 | 2 | 0 | 56 | 55 | 3.39 | 1.14 | |
2006 | 31 | 20 | 2 | 1 | 0 | 10 | 3 | 0 | 3 | .769 | 546 | 129.0 | 139 | 7 | 31 | 1 | 4 | 103 | 5 | 1 | 52 | 48 | 3.35 | 1.32 | |
2007 | 8 | 6 | 0 | 0 | 0 | 2 | 3 | 0 | 1 | .400 | 141 | 33.0 | 30 | 4 | 14 | 2 | 1 | 17 | 1 | 0 | 17 | 16 | 4.36 | 1.33 | |
2008 | 25 | 25 | 2 | 0 | 1 | 13 | 9 | 0 | 0 | .591 | 656 | 154.2 | 158 | 8 | 41 | 2 | 8 | 111 | 2 | 1 | 57 | 55 | 3.20 | 1.29 | |
2009 | 28 | 28 | 2 | 0 | 0 | 8 | 12 | 0 | 0 | .400 | 714 | 164.0 | 180 | 18 | 51 | 6 | 6 | 97 | 5 | 1 | 80 | 71 | 3.90 | 1.41 | |
2010 | 19 | 9 | 0 | 0 | 0 | 2 | 3 | 0 | 0 | .400 | 246 | 52.0 | 78 | 9 | 14 | 1 | 0 | 31 | 4 | 1 | 45 | 42 | 7.27 | 1.77 | |
2011 | 1 | 1 | 0 | 0 | 0 | 0 | 0 | 0 | 0 | ---- | 12 | 1.2 | 5 | 0 | 2 | 0 | 0 | 1 | 0 | 1 | 3 | 3 | 16.20 | 4.20 | |
2012 | 13 | 13 | 0 | 0 | 0 | 3 | 7 | 0 | 0 | .300 | 310 | 73.1 | 78 | 6 | 15 | 0 | 1 | 42 | 2 | 1 | 36 | 33 | 4.05 | 1.27 | |
2013 | 58 | 0 | 0 | 0 | 0 | 4 | 2 | 1 | 23 | .667 | 219 | 51.1 | 53 | 1 | 18 | 5 | 3 | 32 | 0 | 0 | 14 | 13 | 2.28 | 1.44 | |
2014 | 53 | 0 | 0 | 0 | 0 | 6 | 2 | 0 | 23 | .750 | 206 | 47.1 | 53 | 2 | 16 | 2 | 0 | 41 | 2 | 0 | 21 | 20 | 3.80 | 1.46 | |
2015 | 50 | 0 | 0 | 0 | 0 | 5 | 4 | 0 | 15 | .556 | 184 | 44.2 | 43 | 4 | 11 | 2 | 2 | 32 | 1 | 0 | 17 | 15 | 3.02 | 1.21 | |
2016 | 50 | 0 | 0 | 0 | 0 | 0 | 1 | 0 | 11 | .000 | 164 | 42.2 | 29 | 4 | 12 | 0 | 0 | 24 | 0 | 0 | 13 | 12 | 2.53 | 0.96 | |
2017 | 1 | 0 | 0 | 0 | 0 | 0 | 0 | 0 | 0 | ---- | 2 | 0.1 | 1 | 1 | 0 | 0 | 0 | 0 | 0 | 0 | 1 | 1 | 27.00 | 3.00 | |
통산: 16년 | 486 | 133 | 9 | 1 | 3 | 77 | 66 | 11 | 76 | .538 | 4744 | 1121.0 | 1137 | 98 | 311 | 23 | 39 | 822 | 31 | 7 | 479 | 444 | 3.56 | 1.29 |
연도 | 소속 | 투수 | |||||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2002 | 한신 | 17 | 1 | 13 | 0 | 0 | 1.000 |
2003 | 51 | 5 | 9 | 0 | 1 | 1.000 | |
2004 | 57 | 0 | 9 | 0 | 0 | 1.000 | |
2005 | 24 | 4 | 17 | 0 | 1 | 1.000 | |
2006 | 31 | 3 | 20 | 1 | 1 | .958 | |
2007 | 8 | 5 | 9 | 0 | 0 | 1.000 | |
2008 | 25 | 7 | 14 | 2 | 0 | .913 | |
2009 | 28 | 3 | 23 | 1 | 1 | .963 | |
2010 | 19 | 2 | 16 | 0 | 0 | 1.000 | |
2011 | 1 | 0 | 0 | 0 | 0 | .000 | |
2012 | 13 | 3 | 10 | 0 | 0 | 1.000 | |
2013 | 58 | 1 | 16 | 0 | 3 | 1.000 | |
2014 | 53 | 2 | 12 | 0 | 0 | 1.000 | |
2015 | 50 | 4 | 8 | 0 | 1 | 1.000 | |
2016 | 50 | 2 | 7 | 0 | 0 | 1.000 | |
2017 | 1 | 0 | 0 | 0 | 0 | .000 | |
통산 | 486 | 42 | 183 | 4 | 8 | .983 |
8. 평가 및 유산
안도 유야는 한신 타이거스에서 16년간 활약하며 팀의 중요한 시기에 기여한 선수이자 코치로 평가받는다. 그는 선발과 중간 계투를 오가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고, 특히 2003년과 2005년 팀의 센트럴 리그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비록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선수는 아니었다고 스스로 평가했지만, 한신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팬들의 성원 속에서 꿈같은 현역 생활을 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선수로서 그는 최고 150 km/h의 직구와 다양한 변화구, 그리고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그의 아름답고 이치에 맞는 투구 폼은 동료 선수들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은퇴 후 코치로 전향해서는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는 데 힘썼고, 2023년에는 1군 투수 코치로서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입증했다. 그는 선수 시절 이루지 못한 일본 제일의 꿈을 코치로서 달성하며 팀에 대한 깊은 애정과 헌신을 보여주었다. 안도 유야는 한신 타이거스 역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중요한 인물로 남아있다.
9. 외부 링크
- [https://www.baseball-reference.com/register/player.fcgi?id=andoh-001yuy 베이스볼 레퍼런스]
- [https://sp.baseball.findfriends.jp/player/19770001/ 주간 베이스볼 온라인 선수 정보]
- [http://blog.yuya-andoh.com/ 안도 유야 공식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