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틀라스(Ἄτλας아틀라스고대 그리스어 (1453년 이전))는 티탄족의 일원으로, 티타노마키아 전쟁에서 패배한 후 제우스로부터 영원히 하늘을 어깨에 짊어지는 형벌을 받은 신이다. 그의 이름은 "지탱하는 자", "견디는 자", 또는 "저항하는 자"를 의미하는 고대 인도유럽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형벌은 그에게 주어진 막중한 무게와 책임의 은유적인 상징이 되었다. 그는 헤라클레스와 페르세우스라는 두 위대한 영웅의 신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틀라스는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세상의 서쪽 끝에 서 있었다고 전해지며, 후대에는 아틀라스 산맥과 동일시되기도 했고, 마우레타니아의 초대 왕으로도 불리며 철학, 수학, 천문학에 능했다고 한다.
2. 어원
'아틀라스'라는 이름의 어원은 불확실하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아틀라스의 이름을 그리스어 동사 'τλῆναι'(견디다, 참다)와 결합하여 'durus'("강인한, 끈기 있는")라는 형용사로 번역했는데, 이는 그가 이 이름이 '견디는 자'를 의미한다고 보았음을 시사한다. 이와 함께 스트라본은 이 산맥의 현지 북아프리카 이름이 '두리스'라고 언급하여 어원적 연관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아틀라스 산맥이 베르베르족이 거주하는 지역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이 이름이 베르베르어의 'ádrār'("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언어학자 로베르트 스. 프. 베이케스는 고대 티탄이 인도유럽어족 이름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며, 대신 어미가 보통 '-ant'로 끝나는 선그리스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제안했다.
3. 가족
아틀라스의 가족 관계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그의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수많은 자녀들이 다양한 신화적 배경을 형성한다.
3.1. 부모와 형제자매
아틀라스는 티탄 이아페토스와 오케아노스의 딸인 클리메네 또는 아시아의 아들이다. 일부 기록에서는 히기누스가 아이테르와 가이아의 아들이라고 언급하며 그의 원시적인 본질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는 프로메테우스, 에피메테우스, 그리고 메노이티오스의 형제이다. 일본어 자료에서는 그가 헤스페로스의 형제이기도 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3.2. 자녀
아틀라스는 여러 여신과의 사이에서 많은 자녀들을 두었으며, 대부분 딸들이었다. 그의 자녀들은 각기 다른 신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 헤스페리스와의 사이에서:
- 헤스페리데스: 황금 사과를 지키는 요정들로, 아틀라스의 가장 잘 알려진 딸들 중 하나이다. 영어와 한국어 자료에 따르면 헤스페리스의 딸들은 7명이라고도 한다.
존 싱어 사전트의 아틀라스와 헤스페리데스 (1922년 ~ 1925년). - 플레이오네 또는 아이트라와의 사이에서:
- 히야데스: 비를 내리는 요정들로, 자매들이다. 히기누스는 플레이오네와의 사이에서 아들인 히야스도 두었다고 언급한다.
- 플레이아데스: 7명의 자매 요정들로, 아르테미스를 섬기기도 했다. 마이아, 타위게테, 스테로페, 메로페, 켈라이노, 알키오네, 엘렉트라 등의 이름이 전해진다. 일본어 자료에 따르면 아르카디아 지방의 퀼레네 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 정확히 명시되지 않은 여신과의 사이에서:
- 칼립소: 오기기아 섬에 살았던 님프. 일부 신화에서는 오케아노스의 아내인 테티스의 딸이라고도 전해진다.
- 디오네
- 마에라
4. 신화
아틀라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몇 가지 핵심적인 사건과 영웅들과의 만남을 통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4.1. 티타노마키아와 형벌
티타노마키아는 티탄족과 올림포스 신들 간의 전쟁을 일컫는다. 아틀라스는 그의 형제인 메노이티오스와 함께 티탄족 편에 서서 올림포스 신들에 대항하여 싸웠다. 티탄족이 패배하자, 메노이티오스를 포함한 많은 티탄족은 타르타로스에 감금되었지만, 제우스는 아틀라스에게 더욱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그는 지구의 서쪽 끝에 서서 영원히 하늘을 어깨에 떠받치도록 선고받았다. 이로 인해 아틀라스는 "고통을 견디는 아틀라스"를 뜻하는 '아틀라스 텔라몬'으로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 흔히 아틀라스가 지구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고전 미술에서는 그가 천구를 떠받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혼동은 16세기에 지리적 지도 모음집을 '아틀라스'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더욱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4.2. 영웅들과의 만남
아틀라스는 그리스 신화의 두 위대한 영웅,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와의 유명한 만남을 통해 신화 속 그의 존재를 더욱 확고히 한다.
4.2.1. 페르세우스
그리스 시인 폴레이도스는 기원전 398년경 아틀라스가 양치기였을 때 페르세우스에 의해 돌로 변했다고 기록했다. 이후 오비디우스는 이 사건을 더 자세히 설명하며, 아틀라스가 양치기가 아닌 왕이라고 묘사했다. 오비디우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페르세우스가 아틀라스의 왕국에 도착하여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밝히며 피난처를 요청했다. 그러나 아틀라스는 제우스의 아들이 자신의 황금 사과를 훔쳐갈 것이라는 예언을 두려워하여 페르세우스에게 환대를 거부했다. 이에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사용하여 아틀라스를 돌로 만들었으며, 아틀라스는 단순히 돌이 되는 것을 넘어 산맥 전체로 변하여, 그의 머리는 봉우리가 되고 어깨는 산등성이가 되며 머리카락은 숲이 되었다고 한다. 이 산맥이 바로 아틀라스 산맥이다. 사실 황금 사과를 훔쳐갈 것이라는 예언은 페르세우스가 아닌, 제우스의 또 다른 아들이자 페르세우스의 증손자인 헤라클레스에 관한 것이었다.

4.2.2. 헤라클레스

영웅 헤라클레스의 헤라클레스의 12과업 중 하나는 아틀라스의 딸들인 헤스페리데스가 가꾸고 용 라돈이 지키는 헤라의 정원에서 황금 사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를 찾아가, 아틀라스가 딸들에게서 사과를 가져오는 동안 자신이 대신 하늘을 떠받치겠다고 제안했다.
아틀라스는 사과를 가지고 돌아온 후, 헤라클레스를 영원히 하늘을 짊어지게 할 속셈으로 자신이 직접 사과를 가져다주겠다고 제안했다. 왜냐하면 일단 이 짐을 짊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대신하지 않는 한 영원히 짊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가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눈치채고, 아틀라스의 제안에 동의하는 척하며 잠시 동안 하늘을 다시 들어 올려 자신의 어깨에 망토를 덧대 편하게 받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틀라스가 사과를 내려놓고 다시 하늘을 어깨에 짊어지자, 헤라클레스는 사과를 가지고 도망쳤다.
일부 전승에서는 헤라클레스가 아틀라스를 해방시키기 위해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세워 하늘을 땅으로부터 분리했다고도 전해지며, 이는 프로메테우스를 해방시킨 것과 유사하다.
4.3. 아틀라스라는 이름의 다른 인물들
신화와 전설 속에는 티탄 아틀라스 외에도 '아틀라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인물들이 존재한다.
4.3.1. 아틀란티스의 왕
플라톤의 저서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에 따르면,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의 첫 번째 왕 또한 아틀라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 아틀라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필멸의 여인 클레이토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에우세비우스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의 기록에는 아틀란티스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아틀라스의 아버지는 우라노스였고 어머니는 가이아였다고 한다. 그의 할아버지는 비블로스에 살았던 "페니키아의 왕" 엘리움이었고, 그는 누이인 바실리아에 의해 양육되었다.
4.3.2. 마우레타니아의 왕
아틀라스는 고대 북서 아프리카의 마우레타니아 (오늘날의 모로코 및 서부 알제리에 해당)의 전설적인 왕이기도 했다. 그는 철학, 수학, 천문학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16세기,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는 처음으로 지도 모음집에 '아틀라스'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이 마우레타니아의 왕 아틀라스를 기리기 위함이었다.
아틀라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북서 아프리카 지역과 연관되기 시작했다. 그는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이래로 세상의 극서쪽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황금 사과를 지키는 헤스페리데스나 고르곤들과 연관 지어졌다. 디오도로스와 팔라이파투스는 고르곤들이 에티오피아 해의 고르가데스 섬에 살았다고 언급하며, 이 섬들은 페니키아 탐험으로 인해 카보베르데에 해당할 수 있다는 현대적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후 로마 제국 시대에는 아틀라스의 거처를 아틀라스 산맥과 연결 짓는 관습이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페르세우스가 아틀라스를 산맥으로 변하게 한 후 에티오피아 상공을 날았고, 메두사의 피가 리비아의 뱀들을 낳았다고 한다.
4.3.3. 에트루리아 신화에서
기원전 5세기의 에트루리아 청동 유물 두 점에 '아릴'(Aril)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헤르클레 (에트루리아의 헤라클레스)와의 만남을 묘사한다. 이 유물들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이 에트루리아 신화로 유입된 드문 사례이지만, '아릴'이라는 이름 자체는 어원적으로 독립적이라고 분석된다.
5. 문화적 영향
아틀라스 신화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문화적 영향과 상징적인 의미를 미쳤다.
5.1. 지도학에서
'아틀라스'라는 용어가 지도 모음집을 지칭하게 된 것은 16세기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의 영향이 크다. 메르카토르는 1585년부터 1595년 사이에 출판된 자신의 지도집에 '아틀라스, 또는 세계의 구조와 형태에 대한 우주론적 명상'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는 학자이자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였던 마우레타니아의 왕 아틀라스를 기리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이 마우레타니아 왕 아틀라스의 초상화가 표지에 실렸으나, 1636년 판부터 신화 속 티탄 아틀라스가 천구를 짊어진 모습이 표지에 등장하게 되면서 '아틀라스'라는 용어가 지도학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5.2. 현대적 해석 및 참조
아틀라스 신화는 현대에 들어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비유적이거나 직접적인 참조로 사용되고 있다.
- 심리학**: 심리학에서는 '아틀라스 성격'이라는 용어로 어린 시절 과도한 책임을 짊어졌던 사람의 성격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 문학**: 아인 랜드의 정치 디스토피아 소설 『아틀라스 숄더드』(1957년)는 아틀라스가 전 세계를 짊어지고 있다는 대중적 오해를 인용하여, 자본가와 지식인 계층이 현대 세계를 지탱하는 '현대판 아틀라스'라고 비유한다.
- 우주 기술**: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미국이 개발한 최초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중 하나에 '아틀라스'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1960년대에는 인공위성 및 머큐리 계획의 유인 위성 발사 로켓으로 전용되었다.
- 산업**: 폭스바겐 및 닛산 자동차의 일부 차종명으로도 '아틀라스'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 음악**: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의 유작 가곡집 『백조의 노래』 중 여덟 번째 곡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에 붙인 가곡 "아틀라스"(Der Atlas)가 있다.
- 생물학**: 커다란 뿔이 특징인 아틀라스장수풍뎅이는 아틀라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5.3. 미술 및 조각 작품
아틀라스는 다양한 예술 작품 속에서 힘과 인내, 그리고 책임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그의 신화적 형상을 재해석하여 인류 문명에 미친 그의 문화적 영향을 보여준다.


특히 아틀라스는 건축물이나 장식물의 일부로서 짐을 짊어진 형상으로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의 상징성을 더욱 강조한다.

또한 유럽 각지의 궁전이나 공공 건물에도 아틀라스 조각상이 자주 활용되어 왔다.


6. 계보
아틀라스의 복잡한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그는 이아페토스와 클리메네 또는 아시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프로메테우스, 에피메테우스, 메노이티오스와는 형제이다. 히기누스는 그가 아이테르와 가이아의 아들이라고도 언급한다.
그는 여러 여신과의 사이에서 다양한 자녀를 두었다.
어머니 | 자녀 | 비고 |
---|---|---|
헤스페리스 | 헤스페리데스 | 황금 사과를 지키는 7명의 요정들 |
플레이오네 (또는 아이트라) | 히야데스 | 비를 내리는 요정들. 아들 히야스도 포함. |
플레이오네 (또는 아이트라) | 플레이아데스 | 7명의 자매 요정 (마이아, 타위게테, 스테로페, 메로페, 켈라이노, 알키오네, 엘렉트라) |
불명 | 칼립소 | 오기기아 섬의 님프 |
불명 | 디오네 | |
불명 | 마에라 |
7. 같이 보기
- 아틀라스 (건축)
- 바하무트
- 파르네세 아틀라스
- 우펠루리
- 세계축
- 헤라클레스의 기둥
- 아틀라스장수풍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