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쓰루타 요시유키는 일본의 수영 영웅으로, 그의 생애는 올림픽에서의 빛나는 업적뿐만 아니라 은퇴 후 스포츠 진흥에 대한 헌신으로도 기억된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쓰루타 요시유키는 1903년 10월 1일 일본 가고시마현 가고시마군 이시키촌 (현재 가고시마시 이시키 8초메)에서 쓰루타 하치타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많지 않으나, 1920년경 철도성 가고시마 기관구에 취직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24년경 일본 제국 해군 사세보 진수부 해병단에 입대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영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는 그의 선수 경력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29년경에는 메이지 대학 전문부 법과에 입학하여 학업을 병행했으며, 1932년에 졸업했다.
1.2. 초기 경력
쓰루타 요시유키의 초기 직업 경력은 철도성 근무와 일본 제국 해군 복무로 이루어졌다. 1920년대 초 철도성에서 근무하던 그는 1924년경 해군에 입대하면서 수영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해군 소속으로 1925년 제2회 메이지 신궁 경기 대회에 출전하여 남자 200m 평영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수영 선수로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당시 그의 소속은 사세보 진수부 일등수병이었다. 같은 해 제2회 일본 선수권 수영 대회에서도 200m 평영에서 우승하며 일본 수영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 수영 경력
쓰루타 요시유키는 일본 수영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로, 두 차례의 올림픽 금메달과 여러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당대 최고의 평영 선수로 군림했다.
2.1. 일본 국내 대회 및 기록
쓰루타는 올림픽에서의 성공 외에도 일본 국내 대회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1925년 제2회 메이지 신궁 경기 대회 남자 200m 평영에서 3분 12.8초의 기록으로 우승했으며, 같은 해 제2회 일본 선수권 수영 대회 200m 평영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이후 일본 선수권 수영 대회에서 200m 평영 종목을 1926년, 1927년, 1928년, 1929년, 1930년까지 연속으로 제패하며 총 6회 우승을 기록했다. 또한 100m 평영 종목에서도 1927년, 1928년, 1929년, 1930년, 1931년에 걸쳐 5회 우승을 달성하며 국내 최강자임을 입증했다.
2.2.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된 쓰루타 요시유키는 호치 신문사 소속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남자 200m 평영 예선에서 2분 50.0초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고, 준결승에서는 2분 49.2초로 기록을 단축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8월 8일에 열린 결승전에서 그는 당시 세계 기록 보유자였던 독일의 에리히 라데마허를 꺾고 2분 48.8초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1928년 8월 2일 육상 남자 세단뛰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오다 미키오에 이어 일본인으로는 두 번째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사례였으며, 수영 종목에서는 일본인 최초의 금메달이었다. 흥미로운 일화로, 오다 미키오의 금메달은 동제였으나 쓰루타의 금메달은 규정에 따라 은제로 제작되었다. 또한, 쓰루타는 경기 전 새벽에 선수촌을 몰래 빠져나와 수영장 관리인을 회유하여 본 경기 전에 풀에서 연습을 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2.3. 올림픽 사이 기간 활동 및 기록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일본으로 돌아온 쓰루타는 메이지 대학 법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학업을 이어갔다. 그는 학업 중에도 꾸준히 수영 훈련을 지속했으며, 1929년 7월 27일 교토에서 열린 대회 남자 200m 평영에서 2분 45.0초의 새로운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이 기록은 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공인한 기록으로, 1931년 4월 2일 미국의 스펜스가 2분 44.6초를 기록하기 전까지 총 614일 동안 세계 최고 기록으로 유지되었다.
2.4.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앞두고 쓰루타는 메이지 대학 전문부를 졸업한 뒤 남만주철도에 취직했으며, 남만주철도 소속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하지만 올림픽 참가를 위한 장기 휴가가 회사에서 결근 처리되어 승급 및 보너스가 삭감되는 불이익을 겪기도 했다.
200m 평영 종목에서 그의 동료 선수인 고이케 레이조가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다. 예선에서 쓰루타와 고이케는 나란히 2분 46.2초를 기록하며 동타를 이루었다. 준결승에서는 고이케가 2분 44.9초로 앞서며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으나, 8월 13일에 열린 결승전에서 쓰루타는 2분 45.4초를 기록하며 고이케를 꺾고 다시 한번 금메달을 획득했다. 고이케는 2분 46.4초로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로써 쓰루타 요시유키는 일본인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는 영예를 안았다. 올림픽 수영 평영 종목에서 2연패를 달성한 일본인 선수는 쓰루타와 훗날 기타지마 고스케 두 명뿐이다. 당시 쓰루타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출전은 고이케 레이조를 지원하는 목적이 강했으나, 결과적으로 본인의 빛나는 2연패로 이어졌다.
2.5. 세계 기록
쓰루타 요시유키는 200m 평영 종목에서 두 차례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당대 평영의 역사를 새로 썼다.
-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남자 200m 평영 결승에서 2분 48.8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 1929년 7월 27일 교토에서 열린 대회에서 남자 200m 평영 2분 45.0초의 기록으로 다시 한번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이 기록은 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공인한 기록으로, 1931년 4월 2일 미국의 레너드 스펜스(Leonard Spence)가 2분 44.6초를 기록하기 전까지 614일 동안 세계 최고 기록으로 유지되었다.
3. 선수 은퇴 후 활동
쓰루타 요시유키는 선수 은퇴 후에도 스포츠계를 떠나지 않고 다양한 직업 활동과 스포츠 진흥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수영의 저변 확대와 후진 양성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3.1. 직업 경력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쓰루타는 1934년 나고야시청에 체육 주사로 취직하여 행정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1943년에는 일본 제국 해군에 다시 소집되어 복무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 후인 1948년에는 에히메현의 에히메 신문사에 입사하여 사업부장, 영업차장, 도쿄 지사장, 감사 등을 역임하며 언론 및 경영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3.2. 스포츠 진흥 및 행정
에히메 신문사에 재직하면서 쓰루타는 1948년부터 에히메현 체육협회 이사, 마쓰야마시 수영협회 회장, 일본 수영 연맹 고문, 일본 체육 협회 회빈 등을 겸임하며 일본 스포츠계의 주요 직책을 맡았다. 특히 그는 1949년부터 에히메 신문사 주최로 '제1회 에히메 수영 학교'를 시작하여 1988년까지 40년간 운영했다. 이 수영 학교는 '수영 못하는 아이 없애기' 운동을 통해 수영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했으며, 학교에서 수영을 필수 활동으로 도입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힘썼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일본의 학교 체육에서 수영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4. 개인사
쓰루타 요시유키는 쓰루타 하치타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 외의 결혼이나 가족 관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공개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그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로서의 삶과 은퇴 후 스포츠 진흥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5. 수상 및 영예
쓰루타 요시유키는 선수로서의 뛰어난 업적과 스포츠 진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생전에 다양한 훈장과 상을 수상했으며, 사후에도 영예를 얻었다.
- 1959년: 에히메현 교육문화상 수상.
- 1962년: 자수포장 수훈.
- 1968년: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74년: 훈4등 욱일소수장을 수훈했다.
- 1977년: 에히메현 공로상 수상.
- 1980년: 올림픽 공로자상(Olympic Order)을 수상했다.
- 1986년: 사망 당일 종5위에 추서되었다.
6. 사망
쓰루타 요시유키는 1986년 7월 24일, 향년 82세의 나이로 에히메현 마쓰야마시의 한 병원에서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7. 유산 및 영향
쓰루타 요시유키는 일본 수영계에 깊은 족적을 남겼으며, 그의 업적은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단순한 올림픽 챔피언을 넘어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를 일깨운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7.1. 기념물 및 추모
쓰루타 요시유키의 고향인 가고시마시 이시키 8초메 국도 3호선 변에 위치한 그의 생가 앞에는 쓰루타의 동상과 기념비가 건립되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가 획득한 올림픽 금메달과 표창장은 만년을 보낸 에히메현의 에히메 인물 박물관에 상설 전시되어 있다. 특히 그의 금메달은 40년간 운영했던 수영 교실의 참가자들에게 계속 만지게 하여 도금이 벗겨져 은색 바탕이 보일 정도로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수영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7.2. 관련 작품
쓰루타 요시유키의 생애와 업적은 NHK 대하드라마 《이다텐~도쿄 올림픽 이야기~》(2019년)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서 쓰루타 요시유키 역은 배우 다이토 슌스케가 연기했다.
8. 관련 항목
- 일본의 하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목록
-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일본 선수단
-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일본 선수단
- 수영 평영 200m 세계 기록 추이
-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 헌액자 목록
- [https://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ts/yoshiyuki-tsuruta-1.html Yoshiyuki Tsuruta - Sports-Reference.com]
- [https://ishof.org/yoshiyuki-tsuruta-(jpn).html Yoshiyuki Tsuruta - International Swimming Hall of F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