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배경
신일룡은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기업가로, 그의 출생부터 어린 시절, 가족 관계, 그리고 본명 및 예명의 유래에 이르는 전반적인 배경은 그의 활동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1.1. 어린 시절과 가족
신일룡은 본명 조수현으로 1948년 10월 17일에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창녕 조씨이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태어나 1941년 경성부로 이주한 실향민이었다. 신일룡이라는 예명은 그가 데뷔할 당시 소속사였던 신필름에서 '신필름의 한 마리 용이 되라'는 의미를 담아 지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막내 남동생은 가수 겸 뮤지컬 배우이자 기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정현이다. 신일룡은 채희종과 결혼하여 슬하에 딸 조여진(1979년생)과 아들 조인준(1990년생)을 두었다.
2. 경력
신일룡은 배우로서의 뛰어난 활약과 함께 기업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그의 경력은 크게 영화 및 연극 배우 활동과 기업 경영으로 나뉜다.
2.1. 배우 경력
신일룡은 1969년 연극배우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1970년에는 영화 《이조괴담》을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했으며, 이 작품에서는 본명인 조수현으로 출연했다. 그는 주로 액션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한국의 이소룡'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뛰어난 액션 실력은 1970년대 한국 영화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2.2. 기업가 경력
영화배우 활동 외에도 신일룡은 기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CFC Korea의 CEO 사장을 역임하며 사업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3. 작품
신일룡은 다수의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그리고 광고에 출연하며 폭넓은 활동을 이어갔다.
3.1. 영화
- 1970년 《이조괴담》 (본명 조수현으로 출연)
- 1971년 《전쟁과 인간》
- 1971년 《평양폭격대》
- 1972년 《청춘교사》
- 1972년 《섬개구리 만세》
- 1972년 《정과 정 사이에》
- 1972년 《총각선생》
- 1972년 《인왕산 호랑이》
- 1973년 《특공외인부대》
- 1973년 《일요일의 손님들》
- 1973년 《서울의 연인》
- 1973년 《가버린 사랑》
- 1973년 《석양에 떠나라》
- 1973년 《축배》
- 1973년 《애인교실》
- 1973년 《삼일천하》
- 1973년 《호랑이장군》
- 1973년 《똘똘이 해상특공대》
- 1973년 《여로(속)》
- 1973년 《생사의 탈출》
- 1973년 《비원》
- 1973년 《청춘25시》
- 1973년 《특별수사본부 배태옥사건》
- 1973년 《육군사관학교》
- 1973년 《황소타고 시집왔네》
- 1973년 《동풍》
- 1973년 《그 얼굴에 햇살을》
- 1974년 《증언》
- 1974년 《죽어서 말하는 여인》
- 1974년 《깊은 사이》
- 1974년 《신설》
- 1974년 《맹물로 가는 자동차》
- 1974년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 1974년 《달래》
- 1974년 《행운》
- 1974년 《잊을수는 없겠지》
- 1974년 《토요일밤에》
- 1976년 《아라비아의 열풍》
- 1976년 《심판자》 (한국-홍콩 합작)
- 1977년 《신당산대형》 (한국-홍콩 합작)
- 1980년 《불새》
- 1981년 《경의선》
- 1982년 《애인》
- 1982년 《아벤고 공수군단》
- 1983년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 1983년 《일송정 푸른 솔은》
- 1983년 《적도의 꽃》
- 1984년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 1984년 《애마부인2》
- 1984년 《외박》
- 1984년 《밤이 무너질 때》
- 1984년 《낮과 밤》
- 1985년 《미스 김》
- 1986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 1986년 《황진이》
3.2. TV
- 1973년 TBC 대하드라마 《북간도》
- 1989년 KBS 월화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3.3. 광고
- 1984년~1990년 아모레퍼시픽 (쾌남루트, 쾌남골드, 고려왕드링크, 미스쾌남)
4. 수상
신일룡은 그의 연기 경력 동안 여러 중요한 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 1973년 제10회 청룡영화상 신인연기상 (영화 《섬개구리 만세》)
- 1976년 제15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영화 《아라비아의 열풍》)
5. 사망
신일룡은 2022년 5월 26일 오전에 간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한국식 나이)였으며, 국제 나이로는 73세였다. 그의 사망 소식은 많은 이들의 애도를 받았다.
6. 영향 및 평가
신일룡은 1970년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대표 액션 배우로서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한국의 이소룡'이라는 별명은 그의 액션 연기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단순한 액션 스타를 넘어 다양한 작품에서 폭넓은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의 활동은 한국 액션 영화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후대 배우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우이자 기업가로서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인 그의 삶은 한국 대중문화사에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