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과 아마추어 경력
스테픈 마버리는 뉴욕 브루클린의 코니 아일랜드에서 성장하며 일찍이 농구에 두각을 나타냈다.
1.1. 어린 시절과 성장 배경
스테픈 재비어 마버리는 1977년 2월 20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브루클린구 코니 아일랜드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스타버리(Starbury영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마버리는 초등학교인 PS 329에 다녔다.
1.2. 고등학교 및 대학 경력
마버리는 십대 시절 뉴욕시의 농구 명문인 에이브러햄 링컨 고등학교에서 농구 스타로 활약했다. 그는 고등학교 4학년 때 경기당 평균 27.4득점, 8.3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하며 뉴욕주 미스터 바스켓볼로 선정되었다. 당시 그는 마크 잭슨과 케니 앤더슨과 같은 NBA 스타들의 뒤를 이을 뉴욕시의 차세대 포인트 가드로 기대를 모았다. 그는 다시 프레이의 책 『마지막 슛(The Last Shot영어)』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고, AAU팀인 뉴욕 가우초스에서 뛰었다.
1995년 마버리는 케빈 가넷, 폴 피어스, 셰리프 압두르-라힘, 안트완 제이미슨과 함께 맥도널드 올아메리칸에 선정되었다. 그는 그해 전국 5대 유망주 중 한 명으로 꼽혔으며, 조지아 공과대학교 옐로 재키츠 감독 보비 크레민스의 스카우트 대상이 되었고, 최종적으로 조지아 공과대학교에 입학했다.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마버리는 트래비스 베스트가 떠나며 공석이 된 주전 포인트 가드 자리를 맡았다. 그는 훗날 NBA 선수로 뛰게 될 맷 하프링과 드루 배리와 함께 팀을 24승 12패의 기록으로 이끌었으며, NCAA 토너먼트 지역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신시내티에 70대 87로 패했다. 이 시즌 동안 마버리는 경기당 평균 18.9득점과 4.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AP로부터 올-아메리칸 서드 팀에 선정되었고, 여러 컨퍼런스 명예를 얻었다. 시즌을 마친 후 그는 1996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할 자격을 선언했다.
2. 프로 선수 경력
마버리는 NBA에서 13시즌을 뛰며 다섯 팀을 거쳤고, 이후 중국 CBA로 진출하여 전설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1. NBA 경력
마버리는 1996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되었으나, 곧바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트레이드되었다. NBA에서 그는 폭발적인 득점력과 화려한 어시스트 능력을 선보였지만, 코트 안팎에서의 논란과 팀워크 부족으로 인한 비판에 직면했다.
2.1.1.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1996-1999)
1996년 NBA 드래프트에서 밀워키 벅스가 전체 4순위로 스테픈 마버리를 지명했고, 뒤이어 5순위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가 지명한 레이 앨런 및 미래의 1라운드 지명권과 맞교환되어 팀버울브스에 합류했다. 데뷔 시즌 마버리는 경기당 평균 15.8득점, 7.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1997년 올-루키 팀에 선정되었다. 그는 2년차 선수인 케빈 가넷과 함께 팀버울브스를 1997년과 1998년 NBA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특히 1997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휴스턴 로케츠와의 1차전에서는 28득점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 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1998~1999년 NBA 시즌 중 에이전트 데이비드 팔크는 마버리의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마버리는 가족과 친구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고 밝혔지만, 다른 보도에서는 그가 더 많은 광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시장으로 가고 싶어 했으며, 케빈 가넷의 새로운 고액 계약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결국 마버리는 빌 컬리, 크리스 카와 함께 뉴저지 네츠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밀워키 벅스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뉴저지 네츠 간의 삼각 트레이드로, 팀버울브스는 테렐 브랜든, 브라이언 에번스를, 벅스는 샘 카셀, 크리스 개틀링을 얻었다.
2.1.2. 뉴저지 네츠 (1999-2001)
뉴저지 네츠로 이적한 마버리는 올스타급 선수로 성장했다. 그는 2000년 올-NBA 서드 팀에 선정되었고, 2001년 NBA 올스타전에는 리저브 선수로 발탁되어 클러치 3점 슛 두 개를 성공시키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2001년 2월 13일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연장전 경기에서는 개인 통산 최다인 50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개인적인 활약에도 불구하고, 네츠는 마버리가 팀에 머무는 동안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2.1.3. 피닉스 선스 (2001-2004)
2001년 비시즌에 마버리는 조니 뉴먼, 수마일라 사마케와 함께 피닉스 선스로 트레이드되었고, 그 대가로 제이슨 키드와 크리스 더들리가 네츠로 이적했다. 2002년 11월 30일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경기에서 마버리는 4쿼터에만 26득점을 포함하여 시즌 최다인 43득점을 기록하며 선스의 94대 87 승리를 이끌었다. 선스 소속으로 그는 2003년 두 번째 올스타 팀과 올-NBA 서드 팀에 선정되었다. 올해의 신인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올스타 숀 매리언과 함께 팀을 2003년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으나, 1라운드에서 스퍼스에 의해 탈락했다.
2.1.4. 뉴욕 닉스 (2004-2009)

2004년 1월 5일, 마버리는 페니 하더웨이, 체자리 트리반스키와 함께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되었으며, 그 대가로 하워드 에이슬리, 찰리 워드, 안토니오 맥다이스, 마체이 람페, 밀로시 부야니치의 드래프트 권리, 2004년 1라운드 지명권, 그리고 추가 미래 1라운드 지명권이 오고 갔다. 뉴욕에서 자랐고 평생 닉스의 팬이었던 마버리에게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의미 있는 이적이었다.
마버리는 2004년 하계 올림픽에 미국 대표팀으로 참가했으나, NBA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 팀 중 처음으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동메달에 그쳤다. 그는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31득점을 기록하며 미국 올림픽 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으나, 이 기록은 2012년 카멜로 앤서니에 의해 경신되었다.
2005-06 시즌 동안 마버리는 래리 브라운 감독과 불화를 겪었다. 닉스의 저조한 성적과 마버리의 공개적인 감독과의 갈등은 그의 인기를 급격히 하락시켰고, 『데일리 뉴스(New York Daily News영어)』의 프랭크 이솔라와 마이클 오키프는 마버리가 "뉴욕에서 가장 혐오받는 운동선수"라고 평했다. 이 갈등은 래리 브라운이 2005-06 시즌 말 해고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아이제아 토머스가 감독직을 이어받은 2006-07 시즌에는 닉스가 전년도 23승을 넘어 33승을 기록하며 다소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2007년 9월, 마버리는 닉스와 아이제아 토머스를 상대로 제기된 성희롱 소송 재판에서 증언했다. 이 재판에서 마버리는 2005년 한 스트립 클럽 밖에서 팀 인턴과 자신의 차에서 "함께 있었다"고 인정했다.
2007-08 시즌 시작과 함께 닉스는 다시 부진했고, 마버리는 이번에는 토머스 감독과 공개적인 불화를 겪었다. 마버리가 토머스 감독이 자신을 주전에서 제외할 계획임을 알게 되자 팀을 이탈한 것이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팀 전용기 안에서 마버리와 토머스가 실제로 몸싸움을 벌였고, 마버리가 주전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토머스를 협박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사건과 마버리가 한 경기를 결장한 후 11월 중순 팀에 복귀한 후, 닉스 팬들은 홈 경기에서 "아이제아 해고(fire Isiah)"를 연호하며 닉스 선수들, 특히 마버리에게 끊임없이 야유를 보냈다. 이러한 기능 장애와 드라마는 닉스의 8연패로 이어졌고, 여러 신문은 토머스의 직위가 위태롭다고 보도했다. 또한 닉스가 마버리를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하려 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의 계약에 2년과 약 4200.00 만 USD의 잔액이 남아있어 트레이드는 어려웠다. 2008년 2월 시즌 아웃을 야기한 발목 수술은 팀에서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했으나, 마버리가 스스로 수술을 강행했다. 이후 아이제아 토머스 감독은 마버리가 닉스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경기를 뛰었을 수도 있다고 암시했다. 그러나 2008년 4월, 토머스 감독이 먼저 해고되었고, 도니 월시가 구단주로, 마이크 댄토니가 감독으로 부임했다.
댄토니가 감독을 맡은 후 닉스는 크리스 듀혼을 영입하며 마버리의 뉴욕에서의 미래에 대한 추측을 낳았다. 마버리는 훈련 캠프에 참가하여 듀혼과 주전 포인트 가드 자리를 놓고 경쟁했으나 듀혼이 이겼다. 댄토니 감독이 마버리에게 원한다면 경기에서 약 35분간 뛸 기회가 있다고 말했을 때, 마버리는 자신과 닉스가 각자의 길을 갔다고 느끼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2월 1일, 마버리는 닉스의 훈련이나 경기 참석이 금지되었다.
2.1.5. 보스턴 셀틱스 (2009)
2009년 2월 24일, 많은 추측 끝에 뉴욕 닉스와 마버리는 계약 해지에 합의했다. 이틀 후 그는 웨이버에서 통과되어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다. 2008년 말부터 많은 NBA 분석가들은 마버리가 보스턴 셀틱스에 합류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2009년 2월 27일 마버리는 셀틱스와 계약했다. 데뷔전인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경기에서 그는 13분 동안 6개의 슛 중 4개를 성공시키며 8득점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마버리는 등번호 8번을 선택했는데, 3번은 데니스 존슨을 기리기 위해 영구 결번된 상태였다.
셀틱스는 마버리에게 2009-10 시즌 베테랑 최소 연봉으로 1년 계약을 제안했으나,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자신의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농구에서 1년간 휴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2. CBA 경력
NBA를 떠난 마버리는 중국 CBA에서 선수 경력을 이어갔고, 그곳에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하며 전설적인 선수로 추앙받았다.
2.2.1. CBA 초기 팀들 (2010-2011)
2010년 1월, 마버리는 CBA 소속의 산시 종위 브레이브 드래곤스와 계약했다고 발표되었다. 첫 경기에서 마버리는 시차 적응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8분 출전하여 15득점, 4리바운드, 8어시스트, 4스틸을 기록했다. 그는 15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22.9득점, 9.5어시스트, 2.6스틸을 기록했지만, 산시는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마버리는 이후 CBA 올스타전에 참가하여 북부 팀을 위해 30득점,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다. 2010년 7월, 마버리는 브레이브 드래곤스에 잔류하기 위해 3년 계약에 합의했으나, 2010년 12월 팀을 떠났다.
2010년 12월, 마버리는 포산 드라리온스에 합류했다. 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마버리는 2011년 CBA 올스타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의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2.2. 베이징 덕스 시대 (2011-2017)
2011-12 시즌 동안 스테픈 마버리가 이끄는 베이징 덕스는 시즌을 13승 0패로 시작했다. 이전 두 시즌처럼 마버리는 2012년 CBA 올스타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전과는 달리 그의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산시 시리즈에서 경기당 평균 45득점을 기록한 마버리는 베이징 덕스를 7회 우승팀인 광둥 서던 타이거스와의 팀 역사상 첫 CBA 파이널로 이끌었다. 그리고 마버리는 베이징 덕스를 2011-12 시즌 CBA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끌었다. 팀의 우승 이후 2012년 5월, 베이징 마스터카드 센터 (2008년 올림픽 농구 경기장) 잔디밭에 마버리 동상이 세워졌다. 데니스 로드맨이 제막식에서 연설했다.
2012-13 CBA 시즌 베이징 덕스의 두 번째 경기에서 마버리는 지린 노스이스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1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덕스 입단 이후 단일 경기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후 랴오닝과의 원정 경기에서 32득점을 기록했으며, 베이징은 이 경기에서 4점 차로 승리했다. 그는 이 시즌에 CBA 외국인 MVP로 선정되었다.
2014년 3월 30일, 마버리는 베이징 덕스와 함께 두 번째 CBA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 3월 22일, 그는 팀과 함께 세 번째 CBA 챔피언십 우승을 달성했으며, 자신의 첫 공식 CBA 파이널 MVP 상을 수상했다.
2017년 2월 25일, 마버리는 2017-18 CBA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7년 4월 24일, 베이징 덕스는 공식적으로 마버리와 결별했다.
2.2.3. 베이징 플라이 드래곤스와 선수 은퇴 (2017-2018)
2017년 7월 19일, 마버리는 자신의 마지막 시즌을 베이징 플라이 드래곤스에서 뛸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이후 플라이 드래곤스에서의 시즌이 끝난 후 NBA 팀에서 경력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2월 11일, 마버리는 장쑤 드래곤스와의 경기에서 20득점을 기록하며 104대 92 승리를 이끌었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농구 선수로서의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3.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후 마버리는 CBA에서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2019년 6월 24일, 마버리는 CBA 소속의 베이징 로열 파이터스의 헤드 코치로 임명되었다. 그는 팀의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
2020년 3월 8일, 마버리는 애덤 실버 NBA 커미셔너에게 "사람들이 죽으면 경기는 재미가 없을 것"이라며 2019-20 시즌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실버에게 특히 "어렵지만 쉬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은 첫 NBA 선수가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이고 실버가 시즌을 중단하기 3일 전에 이루어졌다.
4. 개인 생활과 기타 활동
마버리의 개인적인 삶은 농구 경력만큼이나 다채롭고 때로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가족과 자선 활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사업가이자 중국 사회의 독특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4.1. 가족 관계
마버리의 아버지 돈은 2007년 12월 2일 뉴욕 닉스와 피닉스 선스의 경기 도중 사망했다. 마버리의 형 자크 마버리는 베네수엘라에서 프로 농구 선수로 뛰었다. 또한 마버리는 전 프로 농구 선수 서배스천 텔페어와 프로비던스 칼리지의 스타이자 전 NBA 선수인 자멜 토머스의 사촌이다. 자멜 토머스는 자신의 책에서 마버리의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시절 이기적인 행동이 자신이 팀버울브스와 계약하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스테픈 마버리는 2002년 9월 14일 라타샤와 결혼했으며, 2023년에 이혼했다. 그들은 세 자녀, 자비에라, 스테픈 2세, 스테파니를 두었다.
4.2. 법적 문제 및 논란
마버리는 제한 속도를 40 km/h 초과하여 운전하다 적발되어 음주운전 혐의로 10일간 수감되었다. 체포 당시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애리조나의 법적 한도의 두 배 이상이었다. 2007년 마버리는 2005년 한 스트립 클럽 단체 외출 후 인턴과 불륜 관계를 가졌다고 연방 법원에서 인정했다.
4.3. 자선 활동 및 사회 공헌
마버리는 활발한 자선 활동과 사회 공헌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2001년, 그는 펩시 후원금 중 25.00 만 USD를 9·11 테러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기부했다. 2005년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50.00 만 USD에서 100.00 만 USD 사이의 금액을 기부했다. 2007년에는 뉴욕시에 총 400.00 만 USD를 기부했는데, 이는 NYPD, FDNY, EMT, 그리고 뉴욕시 교사 기금에 각각 100.00 만 USD씩 분배된 금액이었다.
2014년, 마버리는 베이징 지역 사회에 대한 헌신과 자선 활동으로 인해 베이징 10대 모범 시민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베이징 시 정부가 이 영예를 제정한 이래 최초의 외국인 수상자가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범유행 기간 동안 마버리는 중국 공급업체와 협력하여 뉴욕시의 최초 대응자와 병원 직원들을 돕기 위해 수백만 장의 마스크를 원가로 판매했다.
4.4. 사업 및 패션 벤처
2006년, 마버리는 스티브 앤 배리스와 제휴하여 자신의 별명을 딴 "스타버리(Starbury영어)" 신발 및 의류 라인을 홍보했다. 그가 홍보한 신발은 개당 14.98 USD에 판매되었는데, 이는 다른 대부분의 신발 라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아이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유행하는 농구화를 구할 수 있도록 하여, 값비싼 신발이 절도 대상이 되는 문제를 피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마버리는 신발을 홍보하는 대가를 받지 않고, 판매량에 따라 보상을 받았다. 이후 스티브 앤 배리스는 파산하여 모든 매장을 폐쇄했다.
스티브 앤 배리스가 문을 닫은 직후, 마버리는 아마존닷컴과의 제휴를 통해 스타버리닷컴(Starbury.com영어)을 열어 자신의 신발과 확장된 제품 라인을 판매했다. 스타버리 측은 또한 중국에 수십 개의 매장과 유통망을 열 계획을 발표했다. 2017년 5월, 마버리는 빅 볼러 브랜드가 중국 스포츠 의류 회사와 협력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에 관심을 표명했다.
4.5. 중국에서의 삶과 영향
마버리는 중국에서 독특한 삶을 살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5년, 그는 중국 "그린 카드", 즉 외국인 영주 거류 신분증(외국인 영주 거류 신분증外国人永久居留身份证중국어 (한자))을 신청하여 취득했다. 그는 중국에서 그린 카드를 받은 다섯 번째 미국 농구 선수가 되었다. 또한 그는 중국에서 팀 동료들과 어린 선수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면서 "마 정치위원(마정위马政위중국어 (한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7년 10월 20일, 마버리는 차이나 아레나 풋볼 리그의 베이징 라이온스 구단주가 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되었다.
5. 평가와 대중적 이미지
스테픈 마버리의 농구 경력과 개인적인 행보는 극명하게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다. 뛰어난 개인 기량에도 불구하고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중국에서의 성공과 사회 공헌 활동은 높이 평가받는다.
5.1. 경력 업적 및 수상
마버리의 주요 경력 성과와 수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 2회 NBA 올스타 (2001, 2003)
- 2회 올-NBA 서드 팀 (2000, 2003)
- NBA 올-루키 퍼스트 팀 (1997)
- 3회 CBA 챔피언 (2012, 2014, 2015)
- CBA 파이널 MVP (2015)
- 6회 CBA 올스타 (2010-2015)
- CBA 올스타 게임 MVP (2010)
- 올-아메리칸 서드 팀 - AP, NABC (1996)
- 올 ACC 퍼스트 팀 (1996)
- ACC 신인왕 (1996)
- 2회 패레이드지 올-아메리칸 퍼스트 팀 (1994, 1995)
- 맥도널드 올아메리칸 (1995)
- 뉴욕주 미스터 바스켓볼 (1995)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농구 동메달
5.2. 비판적 평가 및 논쟁
마버리는 2005-06 시즌까지 10년의 경력 동안 경기당 평균 20.2득점, 8.1어시스트, 2회의 올스타 선정 등 개인적으로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지만,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의 플레이오프 경험은 4회 출전, 총 18경기에 불과하며,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그에 대한 비판은 주로 "수비를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다", "자신이 슛을 너무 많이 시도한다", "팀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농구, 특히 포인트 가드라는 포지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2004-05 시즌 도중 "나는 NBA 최고의 포인트 가드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당시 팀은 승률 5할에 근접했지만, 이후 연패를 거듭하며 최종적으로 33승 49패로 승률 0.402를 기록했다.
또한 마버리가 떠난 후 뉴저지 네츠와 피닉스 선스 두 팀 모두 성적이 향상되었다는 점도 비판의 근거가 되었다. 네츠는 마버리와의 트레이드로 영입한 제이슨 키드를 중심으로 2년 연속 NBA 파이널에 진출했고, 선스는 2004-05 시즌 전 스티브 내시를 영입하며 구단 신기록인 62승을 달성했다.
최근 몇 년간 그는 자신이 제작한 신발 "스타버리 원(Starbury One영어)"의 홍보와 미래의 TV 진행자 전환을 위한 준비 때문에 비시즌 컨디션 조절이 미흡했고, 개인 성적도 부진했다. 그는 또한 "농구는 나의 취미일 뿐이다. 인생 그 자체가 아니다", "(취미인 농구에서는 승자라고 할 수 없을지 몰라도) 나는 인생의 승자다. (농구 외에) 여러 가지를 할 기회를 누려왔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TV 인터뷰에서 지리멸렬한 행동을 보인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길버트 아레나스에게 "금세기 최고의 인터뷰"라고 조롱당하기도 했다. 2009년 여름, 소속팀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7월 24일 24시간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은퇴 선언을 하거나 바셀린을 마시는 등의 기행을 반복하며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당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주변의 생각만큼 인간성이 나쁘지는 않다는 평가도 있다. 2005-06 시즌 전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에는 열성적인 기부 활동을 펼쳤고, 기자회견에서는 피해 아동들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했다. 또한 "스타버리 원"은 경제적인 이유로 신발을 살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한 켤레에 15 USD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되었는데, 이 생각에 벤 월러스가 동감하여 앤드원에서 이적하기도 했다. 2006-07 시즌 중 팀 동료 자말 크로포드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될 것이라는 소식을 직접 전했을 때, 그는 눈물을 흘리며 "처음에는 나를 놀리는 줄 알았다. 어린 선수가 다치는 것은 정말 볼 수 없다"고 언급했다.
5.3. 대중 문화 및 미디어에서의 영향
마버리는 미드웨이 게임즈의 비디오 게임 『NBA 볼러스』의 표지 모델이었다. 그는 『더 스포팅 뉴스』의 "스포츠계의 좋은 사람들" 목록에 세 차례 선정되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 『히 갓 게임』에서 가상의 브루클린 고등학교 스타 지저스 셧틀스워스 (레이 앨런 역)는 스테픈 마버리를 코니 아일랜드에서 NBA로 진출한 위대한 뉴욕시 전설 중 한 명으로 언급한다. 영화에 나오는 고등학교인 에이브러햄 링컨 고등학교는 마버리가 실제로 다녔던 고등학교이다.
1999년, 마버리는 조지아 공과대학교 동문 포인트 가드인 케니 앤더슨과 함께 빅 펀의 싱글 "왓챠 고나 두(Whatcha Gonna Do영어)" 뮤직 비디오에 출연했다. 이 비디오에서 마버리와 앤더슨은 테러 스쿼드 멤버인 팻 조와 쿠반 링크를 상대로 2대 2 경기를 펼쳤다.
2007년, 마버리는 마셜 딘 작가와 함께 첫 어린이 책 『어린 스타버리의 모험: 연습이 완벽을 만든다(The Adventures of Young Starbury: Practice Makes Perfect영어)』를 공동 집필했다. 이 책은 라이언 나카이가 삽화를 그렸다.
2008년 3월, 레슬링 선수 몬텔 본테비우스 포터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마버리를 모델로 레슬링 페르소나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몬텔 본테비우스 포터는 자신이 클럽 바운서로 일할 때 마버리와 마주친 적이 있다고 말했다.
2009년 7월, 마버리는 24시간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에 참여하여 팬들의 질문에 답하고, 공개적으로 울음을 터뜨리며, 목 아픔을 달래기 위해 바셀린을 먹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당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2014년, 마버리는 자신의 삶을 우화적으로 다룬 뮤지컬 『나는 마버리다(I Am Marbury영어)』에 출연했다. 2017년에는 제시카 정과 함께 자신의 자서전 영화 『나의 또 다른 집』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차이나 무비 채널 미디어 어워드에서 최우수 신인 배우상을 수상했다. 마버리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코니 아일랜드의 한 아이(A Kid from Coney Island영어)』는 2019년에 개봉되었다.
6. 경력 통계
마버리의 NBA 및 CBA 정규 시즌과 플레이오프 경기 통계는 다음과 같다.
6.1. NBA 경력 통계
6.1.1. 정규 시즌
시즌 | 팀 | 출장 경기 | 선발 출장 | 경기당 분 | 야투율 | 3점슛 성공률 | 자유투 성공률 | 경기당 리바운드 | 경기당 어시스트 | 경기당 스틸 | 경기당 블록 | 경기당 턴오버 | 경기당 득점 |
---|---|---|---|---|---|---|---|---|---|---|---|---|---|
1996-97 | 미네소타 | 67 | 64 | 34.7 | .408 | .354 | .727 | 2.7 | 7.8 | 1.0 | 0.3 | 3.13 | 15.8 |
1997-98 | 미네소타 | 82 | 81 | 38.0 | .415 | .313 | .731 | 2.8 | 8.6 | 1.3 | 0.1 | 3.12 | 17.7 |
1998-99 | 미네소타 | 18 | 18 | 36.7 | .408 | .205 | .724 | 3.4 | 9.3 | 1.6 | 0.3 | 3.06 | 17.7 |
1998-99 | 뉴저지 | 31 | 31 | 39.8 | .439 | .367 | .832 | 2.6 | 8.7 | 1.0 | 0.1 | 3.52 | 23.4 |
1999-00 | 뉴저지 | 74 | 74 | 38.9 | .432 | .283 | .813 | 3.2 | 8.4 | 1.5 | 0.2 | 3.65 | 22.2 |
2000-01 | 뉴저지 | 67 | 67 | 38.2 | .441 | .328 | .790 | 3.1 | 7.6 | 1.2 | 0.1 | 2.94 | 23.9 |
2001-02 | 피닉스 | 82 | 80 | 38.9 | .442 | .286 | .781 | 3.2 | 8.1 | 0.9 | 0.2 | 3.46 | 20.4 |
2002-03 | 피닉스 | 81 | 81 | 40.0 | .439 | .301 | .803 | 3.2 | 8.1 | 1.3 | 0.2 | 3.25 | 22.3 |
2003-04 | 피닉스 | 34 | 34 | 41.6 | .432 | .314 | .795 | 3.4 | 8.3 | 1.9 | 0.2 | 2.85 | 20.8 |
2003-04 | 뉴욕 | 47 | 47 | 39.1 | .431 | .321 | .833 | 3.1 | 9.3 | 1.4 | 0.1 | 3.23 | 19.8 |
2004-05 | 뉴욕 | 82 | 82 | 40.0 | .462 | .354 | .834 | 3.0 | 8.1 | 1.5 | 0.1 | 2.84 | 21.7 |
2005-06 | 뉴욕 | 60 | 60 | 36.6 | .451 | .317 | .755 | 2.9 | 6.4 | 1.1 | 0.1 | 2.62 | 16.3 |
2006-07 | 뉴욕 | 74 | 74 | 37.1 | .415 | .357 | .769 | 2.9 | 5.4 | 1.0 | 0.1 | 2.42 | 16.4 |
2007-08 | 뉴욕 | 24 | 19 | 33.5 | .419 | 0.378 | .716 | 2.5 | 4.7 | 0.9 | 0.1 | 2.00 | 13.9 |
2008-09 | 보스턴 | 23 | 4 | 18.0 | .342 | .240 | .462 | 1.2 | 3.3 | 0.4 | 0.1 | 1.6 | 3.8 |
커리어 | 846 | 816 | 37.7 | .433 | .325 | .784 | 3.0 | 7.6 | 1.2 | 0.1 | 3.0 | 19.3 | |
올스타 | 2 | 0 | 16.5 | .500 | .400 | .500 | 0.5 | 5.0 | 0.0 | 0.0 | - | 8.0 |
6.1.2. 플레이오프
시즌 | 팀 | 출장 경기 | 선발 출장 | 경기당 분 | 야투율 | 3점슛 성공률 | 자유투 성공률 | 경기당 리바운드 | 경기당 어시스트 | 경기당 스틸 | 경기당 블록 | 경기당 턴오버 | 경기당 득점 |
---|---|---|---|---|---|---|---|---|---|---|---|---|---|
1997 | 미네소타 | 3 | 3 | 39.0 | 0.400 | 0.300 | .600 | 4.0 | 7.7 | 0.7 | 0.0 | 3.00 | 21.3 |
1998 | 미네소타 | 5 | 5 | 41.8 | .306 | .280 | .783 | 3.2 | 7.6 | 2.4 | 0.0 | 3.60 | 13.8 |
2003 | 피닉스 | 6 | 6 | 45.3 | .375 | .227 | .758 | 4.0 | 5.7 | 1.2 | 0.0 | 3.83 | 22.0 |
2004 | 뉴욕 | 4 | 4 | 43.5 | .373 | 0.300 | .680 | 4.3 | 6.5 | 1.8 | 0.0 | 3.50 | 21.3 |
2009 | 보스턴 | 14 | 0 | 11.9 | .303 | .250 | 1.000 | 0.9 | 1.8 | 0.1 | 0.0 | 0.7 | 3.7 |
커리어 | 32 | 18 | 29.3 | .355 | .273 | .750 | 2.6 | 4.6 | 0.9 | 0.0 | 2.3 | 12.6 |
6.2. CBA 경력 통계
6.2.1. 정규 시즌
시즌 | 팀 | 출장 경기 | 선발 출장 | 경기당 분 | 야투율 | 3점슛 성공률 | 자유투 성공률 | 경기당 리바운드 | 경기당 어시스트 | 경기당 스틸 | 경기당 블록 | 경기당 득점 |
---|---|---|---|---|---|---|---|---|---|---|---|---|
2009-10 | 산시 | 15 | 15 | 34.1 | .487 | .366 | .806 | 5.9 | 9.5 | 2.6 | 0.1 | 22.9 |
2010-11 | 포산 | 32 | 32 | 36.4 | .545 | 0.508 | 0.816 | 4.5 | 5.7 | 1.6 | 0.0 | 25.2 |
2011-12 | 베이징 | 31 | 31 | 35.3 | .470 | .283 | .701 | 5.5 | 6.5 | 2.2 | 0.0 | 25.0 |
2012-13 | 베이징 | 30 | 30 | 35.0 | .539 | .386 | .766 | 4.6 | 5.3 | 2.2 | 0.1 | 29.5 |
2013-14 | 베이징 | 12 | 12 | 29.4 | .519 | .477 | .780 | 4.7 | 5.3 | 1.0 | 0.0 | 16.9 |
2014-15 | 베이징 | 38 | 36 | 31.8 | 0.555 | .406 | .764 | 3.2 | 5.7 | 1.2 | 0.1 | 16.3 |
2015-16 | 베이징 | 36 | 36 | 31.9 | .483 | .366 | .788 | 3.8 | 5.7 | 2.0 | 0.0 | 18.4 |
2016-17 | 베이징 | 36 | 36 | 34.4 | .487 | .341 | .748 | 3.2 | 5.5 | 1.7 | 0.1 | 21.4 |
2017-18 | 베이징 | 36 | 36 | 34.1 | .464 | .281 | .663 | 3.0 | 4.7 | 1.6 | 0.2 | 14.9 |
6.2.2. 플레이오프
시즌 | 팀 | 출장 경기 | 선발 출장 | 경기당 분 | 야투율 | 3점슛 성공률 | 자유투 성공률 | 경기당 리바운드 | 경기당 어시스트 | 경기당 스틸 | 경기당 블록 | 경기당 득점 |
---|---|---|---|---|---|---|---|---|---|---|---|---|
2011-12 | 베이징 | 14 | 13 | 33.6 | .571 | 0.432 | .822 | 4.3 | 5.6 | 3.4 | 0.1 | 33.8 |
2012-13 | 베이징 | 6 | 6 | 35.8 | .393 | .265 | 0.848 | 3.2 | 8.2 | 2.3 | 0.2 | 22.0 |
2013-14 | 베이징 | 15 | 15 | 37.2 | .451 | .283 | .745 | 4.8 | 4.1 | 2.5 | 0.0 | 25.7 |
2014-15 | 베이징 | 13 | 13 | 38.8 | 0.575 | .375 | .750 | 4.2 | 6.6 | 2.1 | 0.1 | 24.6 |
2015-16 | 베이징 | 4 | 4 | 37.8 | .484 | .481 | .815 | 4.8 | 4.3 | 1.3 | 0.0 | 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