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는 그리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신학 교육을 받으며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그리스에서의 초기 종교 활동을 통해 사목 경험을 쌓았고, 이후 한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소티리오스 트람바스는 1929년 7월 17일 그리스 아르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르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51년 아테네 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신학을 수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반년간의 군 복무를 수행했으며, 2년 동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설교와 교리교육 교사로 근무하며 초기 교육 경험을 쌓았다.
1.2. 그리스에서의 초기 종교 활동
1956년 6월 26일, 소티리오스는 레스보스섬에 위치한 레모노스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사가 되었다. 입회 3일 후에는 보제로 서품되었고, 메팀니스 대교구에서 설교자로 봉사했다. 1960년 6월 12일에는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수도사제로 승품되었다. 1963년에는 다시 그리스군으로 돌아가 에브로스 지역에서 군종사제로 사목했다. 1965년부터 1968년까지 그리스군의 군종사제로 활동했으며, 1968년에는 아테네 대주교의 차관이자 아테네 주교좌 성당의 주임 사제로 봉직했다. 1969년부터 1974년까지는 아테네 대교구의 총무(선임 대수도사제)를 맡아 활동하며, 가족 지원 센터와 기타 공공 복지 기관을 설립하고 조직하는 데 기여했다.
2. 주요 활동 및 업적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는 한국과 아시아 지역에서 정교회를 전파하고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은 한국 정교회의 성장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1. 한국 및 아시아에서의 선교 활동
1975년 11월, 소티리오스는 대한민국으로 건너가 선교 활동을 맡겠다고 자원했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의 승인을 받아 서울 아현동의 성 니콜라스 주교좌 대성당 주임 사제로 부임했다. 당시 한국 정교회는 서울에만 활동 거점이 있었으나, 그의 부임 이후 부산, 인천, 전주 등지에 정교회 성당이 건립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또한 가평군에 구세주 변모 수도원을 세웠고, 일산에는 임시 경당을 마련했다. 1982년에는 한국 최초의 정교회 신학원인 성 니콜라스 신학원을 설립하여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정교회 성직자 양성에 힘썼다. 1986년에는 정교회 동방 선교회 의장으로 임명되어 그리스 교회 문헌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주도했다. 1996년에는 선교 활동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여 교회의 내실을 다졌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선교 활동을 확장하여, 1995년 10월 24일에는 필리핀의 생신녀 복음 대성당 기초 성별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2.2. 주교 및 수도 대주교로서의 활동
1991년, 소티리오스는 뉴질랜드 정교회 관구의 보좌 주교이자 한국 총대주교 대리(엑사르흐)로 선출되었으며, 질론의 주교라는 명의를 받았다. 1993년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 시노드에 의해 공식적으로 질론의 주교로 서품되었다. 1995년에는 한국 주재 총대주교 대리로 임명되었다.
2004년 4월 20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 시노드의 결의에 따라 한국 정교회는 교구에서 수도 대교구로 승격되었고, 소티리오스가 초대 수도 대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같은 해 6월 20일에 정식으로 착좌했다. 2005년에는 뉴질랜드 관구의 이오시프 대주교가 이임한 후 2개월 동안 뉴질랜드 수도 대주교 대행을 맡기도 했다. 2006년 10월에는 그해 8월에 성별된 평양의 지성삼자 성당을 방문하여 강연을 진행했다.
2008년 5월 28일, 건강상의 이유로 한국 수도 대주교직에서 자진 사임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 시노드는 그의 사임을 수락하고 그를 피시디아의 명의 수도 대주교로 임명했다. 그는 피시디아로 부임하지 않고 가평 구세주 변모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냈다.
3. 저술 및 저작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는 한국 정교회 신자들을 위한 교리교육과 영적 지도를 위해 여러 저서를 남겼다.
- 《위대한 선교사 성 사도 바울로》(2011년 9월 20일)
- 《영적 아버지에게서 듣다》(2013년 8월 6일) - 2006년부터 2012년까지 교회보 《정교회 주보》에 게재된 내용을 중심으로 엮은 교리문답집이다.
4. 개인적인 삶과 인정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는 한국에서의 선교 활동을 통해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았다. 2000년에는 서울특별시 명예 시민으로 선정되어 그의 공헌을 기렸다.
5. 사망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는 2022년 6월 10일 서울에서 93세를 일기로 안식했다.
6. 영향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는 한국 정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헌신적인 선교 활동은 한국 정교회가 서울을 넘어 전국 각지에 교회를 설립하고, 성 니콜라스 신학원을 통해 자체적인 성직자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정교회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노력으로 한국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 산하의 독립적인 수도 대교구로 승격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는 한국 정교회의 기틀을 다지고 성장을 이끈 선구자이자 영적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7. 관련 항목
- 한국 정교회
-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
- 아테네 대학교
- 피시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