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새뮤얼 링컨(Samuel Lincoln, 1622년 8월 24일 ~ 1690년 5월 26일)은 잉글랜드 출신으로, 미국의 수많은 저명한 정치인들의 시조가 된 인물이다. 특히 그의 4대손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3대손인 메인주 주지사 이녹 링컨을 비롯하여, 2대손 레비 링컨 시니어와 3대손 레비 링컨 주니어는 각각 매사추세츠주 미국 하원의원, 주지사, 부지사를 역임했다. 새뮤얼 링컨은 1637년 잉글랜드를 떠나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에 정착했으며, 그의 후손들이 미국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그는 미국 링컨 가문의 가장 저명한 분파의 시조로 여겨진다. 그의 삶은 잉글랜드에서의 궁핍한 초기 생애와 직조공 수련, 신대륙으로의 이주, 그리고 매사추세츠주 힝햄에 정착하여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 활동에 참여한 과정으로 나뉜다.
2. 초기 생애 및 영국 배경
새뮤얼 링컨은 잉글랜드 노퍽주 힝햄에서 태어나 직조공으로 수련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의 가족은 조부의 유산 상속 문제로 인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2.1. 출생 및 가족 배경
새뮤얼 링컨은 1622년 8월 24일 잉글랜드 노퍽주 힝햄에서 에드워드 링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리처드 링컨으로, 부유한 인물이었으나 가족 간의 불화로 인해 초기 자녀들을 유언장에서 제외하면서 새뮤얼의 가족은 궁핍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었다. 새뮤얼의 아버지 에드워드 링컨은 조부 리처드의 유언에서 제외된 후, 힝햄 근처 스완턴 몰리에 있던 집을 떠나 힝햄의 작은 토지로 이주했다. 에드워드 링컨은 1640년 2월 11일 잉글랜드 힝햄에서 사망하여 성 안드레아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2.2. 직조공 수련
가족의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새뮤얼 링컨은 잉글랜드 노리치의 프랜시스 로스(Francis Lawes) 밑에서 직조공 견습생으로 일하며 직업 훈련을 받았다.
3. 미국으로의 이주
1637년, 새뮤얼 링컨은 프랜시스 로스 가족과 함께 신대륙으로 향하는 '존 앤 도로시(John & Dorothy)' 호에 승선하여 잉글랜드를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는 15세로 알려져 있으나, 항해 허가를 받기 위해 나이를 속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새뮤얼의 형인 토머스 링컨은 다른 여러 동명이인 토머스 링컨과 구별하기 위해 초기 기록에서 "직조공 토머스 링컨(Thomas Lincoln the Weaver)"으로 불렸다. 토머스는 새뮤얼보다 앞선 1635년에 매사추세츠주 힝햄에 정착하여 마을로부터 주택 부지를 부여받았다. 토머스는 두 번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었으며, 사망 후 그의 재산 중 상당 부분을 새뮤얼과 그의 조카들에게 남겼다. 새뮤얼은 형이 정착한 매사추세츠만 식민지로 항해했다.

4. 매사추세츠에서의 삶과 가족
새뮤얼 링컨은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힝햄에 정착하여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4.1. 정착 및 결혼
새뮤얼 링컨은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의 힝햄에 정착하여 살았다. 1649년경, 그는 아일랜드 출신의 마사 라이포드(Martha Lyford)와 결혼했다. 마사 라이포드는 존 라이포드 목사의 딸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해진다.

4.2. 자녀 및 후손
새뮤얼과 마사 부부는 11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이 중 세 명은 유아기에 사망했으나 다른 세 명은 80세가 넘도록 장수했다. 1650년 8월 25일에 태어난 그들의 장남 또한 새뮤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민자 새뮤얼 링컨의 넷째 아들은 모르데카이 링컨으로, 그는 대장장이가 되었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 계보학자들은 링컨 가문에서 아브라함, 사무엘, 이사악, 야곱, 모르드개와 같은 성경적 이름이 흔하게 반복 사용된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는데, 이는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의 초기 청교도 정착민들 사이에서 흔한 관행이었다.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링컨 후손들, 특히 이민자 새뮤얼의 아들들도 새뮤얼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새뮤얼의 어머니 브리짓 길먼(Bridget Gilman)은 뉴햄프셔주 엑서터의 길먼 가문 출신으로, 이 가문은 오랫동안 미국 정부와 연관이 있었다. 브리짓의 아버지인 잉글랜드 노퍽주 힝햄의 에드워드 길먼의 아들 에드워드 길먼 주니어는 매사추세츠주 힝햄으로 이주했다가 나중에 입스위치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엑서터로 이주했다. 엑서터에서 그와 그의 가족은 저명한 사업가이자 선출직 공무원이 되었고, 후에는 열렬한 미국 독립 전쟁 애국자가 되었다. 미국 헌법 서명자 중 한 명인 니콜라스 길먼 또한 이 가문의 일원이었다.
5. 가계 및 유산
새뮤얼 링컨은 미국 링컨 가문의 시조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의 후손들은 미국 역사와 정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5.1. 미국 링컨 가문의 시조
새뮤얼 링컨은 1637년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에 도착한 이래, 미국에 정착한 링컨 가문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후손들은 미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으며, 그는 미국 링컨 가문의 가장 저명한 분파의 시조로 여겨진다. 그의 조상이 여러 세대에 걸쳐 알려져 있다는 점과 그의 후손들이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은 그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5.2. 주요 후손과의 관계
새뮤얼 링컨의 후손 중에는 미국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많다. 그의 4대손인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제도를 폐지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할아버지(새뮤얼의 3대손)는 지역 민병대 대장이었고, 버지니아주 로킹햄 지역에서 200|acre}} 정도의 땅을 상속받은 건장한 지주였다. 나중에 에이브러햄 링컨의 할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버지니아주 로킹햄에서 켄터키주 제퍼슨 마을로 이주했다.
또한 새뮤얼의 3대손인 이녹 링컨은 메인주 주지사를 역임했다. 그의 2대손 레비 링컨 시니어와 3대손 레비 링컨 주니어는 모두 매사추세츠주 미국 하원의원, 주지사, 부지사를 지냈다. 이 외에도 새뮤얼, 대니얼, 모르데카이, 메리, 토머스, 마사, 사라, 레베카 등 그의 자녀들로부터 수많은 후손들이 번성하여 미국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했다.
6. 기념
새뮤얼 링컨의 미국 도착 300주년과 그의 후손인 에이브러햄 링컨을 기념하는 여러 사업이 진행되었다.
1937년, 새뮤얼 링컨이 매사추세츠에 도착한 지 3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매사추세츠주 힝햄의 올드십 교회에 기념 명판이 봉헌되었다. 또한 새뮤얼 링컨의 후손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잉글랜드 노퍽주 힝햄의 성 안드레아 교회에는 흉상이 세워졌다. 이 흉상은 1919년 당시 미국 대사 존 W. 데이비스에 의해 제막되었다. 새뮤얼 링컨의 아버지 에드워드 링컨은 잉글랜드 힝햄에 남아 1640년 2월 11일에 사망했으며, 성 안드레아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