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와 배경
빅토르 알렉세예비치 줍코프의 삶은 소비에트 연방 시기부터 러시아 연방의 주요 공직을 거치며 러시아의 정치 및 경제 발전에 깊이 관여해 왔다.
1.1. 출생과 교육
빅토르 줍코프는 1941년 9월 15일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스베르들롭스크주의 아르바트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알렉세이 안드레예비치 줍코프(1914년생)는 1930년 쿠르간주의 마르티노프카 마을에서 반кулак쿨라크러시아어 조치에 따라 추방당했던 이력이 있으며, 1992년에 복권되었다. 어머니는 아나스타샤 알렉산드로브나 줍코바였다. 그에게는 타마라 알렉세예브나 줍코바(1944년생), 알렉산데르 알렉세예비치 줍코프, 니콜라이 알렉세예비치 줍코프 등 형제자매들이 있다. 그는 1965년 레닌그라드 농업 연구소 경제학과를 졸업하며 경제학 학위를 취득했다.
1.2. 초기 경력과 공직 활동
줍코프는 졸업 후 군복무를 시작으로 다양한 공직 활동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1.2.1. 소비에트 시대 활동
1966년 18개월간의 소련군 복무를 마친 줍코프는 1967년부터 1985년까지 레닌그라드주의 콜호스(집단 농장)에서 여러 지도적 직책을 맡아 근무했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는 소련 공산당 레닌그라드주 위원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프리오제르스크 시 집행위원회 위원장, 프리오제르스크 시 공산당 위원회 제1비서, 농업 및 식품 산업 부서장, 그리고 지역 위원회의 농업 부서장 등 다양한 지도적 직책을 역임했다. 또한 1989년부터 1991년까지는 레닌그라드주 집행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지냈으나, 1991년 8월 19일의 소련 8월 쿠데타 이후 소련 공산당의 활동이 중단되면서 공산당 내에서의 공식적인 활동은 종료되었다.
1.2.2. 상트페테르부르크 행정 및 세무 활동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줍코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행정부와 세무 기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1992년 1월부터 1993년 11월까지 그는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끌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실 대외 관계 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재직했다. 1993년 11월 3일부터 1998년 11월 30일까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가 세무 검사 부서의 수장이자 동시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가 세무 검사 부위원장을 겸임했다. 1998년 12월,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내각에서 국가 세무 검사 부서가 러시아 세무부로 재편되면서 줍코프의 직책이 폐지되었으나, 그는 곧바로 세무부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부의 수장으로 재임명되었다. 1999년 7월 23일에는 러시아 북서부 지역을 담당하는 세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었고, 며칠 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레닌그라드주 세무부 지부장 직책을 겸임하게 되었다. 이후 1999년 8월 12일 레닌그라드주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보리스 그리즐로프의 지원을 받았으나, 9월 19일 발레리 세르듀코프에게 패배하여 전체 16명의 후보 중 4위(8.64% 득표율)에 그쳤다.
1.3. 금융 감독 및 반부패 역할
줍코프는 2001년 이후 러시아의 금융 감독 및 반부패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01년 11월 5일, 그는 세무부 직책을 떠나 러시아 재무부 제1차관 겸 재무부 산하 금융 감시 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위원회의 주요 임무는 자금 세탁 방지였다. 2004년 3월 16일 미하일 카시야노프 내각 해산 이후, 금융 감시 위원회는 재무부 산하 연방 금융 모니터링 서비스로 개편되었으나, 줍코프는 미하일 프랏코프의 제1차 및 제2차 내각에서도 2007년 9월 12일까지 해당 직책을 유지하며 금융 범죄 수사 및 자금 세탁 방지 노력에 기여했다.
2. 주요 정치 경력
빅토르 줍코프는 러시아의 정치 환경에서 여러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했다.
2.1. 러시아 연방 총리
2007년 9월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사임한 미하일 프랏코프의 후임으로 빅토르 줍코프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그의 지명은 2007년 9월 14일 국가 두마에서 381표의 찬성으로 승인되어 총리직에 공식 취임했다. 일부 크렘린 전문가들은 줍코프의 총리 임명을 후계 경쟁을 재개하기 위한 '기술적인 총리'로서의 역할이나, 크렘린 내부의 강력한 파벌들을 통제하기 위한 블라디미르 푸틴의 충성스러운 인물 선택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푸틴은 줍코프를 포함해 200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될 수 있는 5명의 인물 중 한 명으로 언급했으며, 줍코프 본인도 200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2007년 12월, 블라디미르 푸틴이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면서 줍코프의 대통령 출마 희망은 사실상 사라졌다. 줍코프 내각은 러시아 헌법에 따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08년 5월 7일 자동으로 해산되었다.

2.2. 러시아 연방 제1부총리
총리직 해산 후, 줍코프는 2008년 5월 12일부터 2012년 5월 21일까지 블라디미르 푸틴 내각에서 러시아 연방 제1부총리로 재직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이고리 슈발로프와 함께 제1부총리직을 수행했다. 이 직책에서 그는 국가의 경제 정책을 총괄하며 광범위한 행정 및 경제 개혁에 참여했다. 줍코프는 러시아 연방 공무원으로서 최고 등급인 '러시아 연방 1급 현역 국가 고문'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2.3. 총리 권한대행
2012년 5월 7일, 당시 총리였던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으로 재취임하면서 총리직이 공석이 되자, 빅토르 줍코프는 차기 총리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취임이 의회에서 승인될 때까지 짧은 기간 동안 총리 권한대행을 수행했다. 이 권한대행 기간은 2012년 5월 8일까지 이어졌다.
3. 이후 경력 및 사업 활동
줍코프는 주요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러시아의 핵심적인 경제 분야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며 활동했다.
3.1. 가스프롬 이사회 의장
2008년 6월 27일, 그는 러시아 최대 규모의 에너지 기업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및 천연가스 회사 중 하나인 가스프롬의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직책은 그가 제1부총리로 재직 중이던 2012년 5월까지 겸임했다. 80대에 접어든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재까지 가스프롬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하며 러시아 에너지 산업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4. 개인 생활
빅토르 줍코프의 개인 생활, 특히 그의 가족 관계는 언론에 공개되어 있다.
4.1. 가족 관계
빅토르 줍코프는 노브고로드주 출신의 조야 미하일로브나와 결혼했다. 조야는 남편과 마찬가지로 레닌그라드 농업 연구소를 졸업했으며, '네페르티티 살롱'이라는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줍코프에게는 외동딸인 율리아 포흘레베니나 (결혼 전 성 줍코바, 1970년생)가 있다. 율리아는 금융경제학 연구소를 졸업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수중 피트니스 클럽 '파루스'의 소유주이다. 율리아는 두 번 결혼했는데, 첫 번째 남편은 니콜라이 겐나디예비치 포흘레베닌이었다. 그는 프리오제르스크 시 공산당 위원회 제1비서였던 겐나디 알렉세예비치 포흘레베닌의 아들로, 빅토르 줍코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율리아 줍코바는 첫 남편과 함께 '세베르 JSC'라는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율리아의 두 번째 남편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업가 아나톨리 세르듀코프로, 그는 훗날 러시아 연방 세무청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으며,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러시아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줍코프에게는 두 명의 외손녀가 있다. 첫째 외손녀는 1993년생 아나스타샤 포흘레베니나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립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레스토랑 경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외손녀인 나탈리아 아나톨리예브나 세르듀코바는 현재 학생이다. 율리아와 그녀의 남편들은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영예와 인정
빅토르 줍코프는 러시아 정부 및 여러 기관으로부터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다양한 훈장과 상을 수상했다.
5.1. 훈장 및 수상
그가 수여받은 주요 훈장 및 상은 다음과 같다.
- 조국 공헌 훈장
- 1등급
- 2등급 (2008년 9월 19일) - 국가 경제 정책에 대한 위대한 개인적 기여와 수년간의 성실한 활동에 대한 공로
- 3등급 (2006년 5월 9일) - 러시아 연방의 경제적 이익 보호에 대한 탁월한 기여와 수년간의 근면한 업무에 대한 공로
- 4등급 (2000년 4월 11일) - 국가에 대한 봉사와 경제 개혁 이행에 대한 주요 기여에 대한 공로
- 의전용 단검
- 노동 적기 훈장 (1981년)
- 명예 휘장 훈장 (1975년)
- 노동 참전 용사 메달 (1986년)
- 러시아 연방 공로 경제학자 (2001년 9월 16일) - 경제 및 금융 분야에서의 공로
- 러시아 연방 정부 공로증 (1998년)
- 레닌그라드 지역 명예 시민 (2009년)
- 모스크바의 성 다니엘 훈장 1등급 (러시아 정교회, 2011년)
- 경제 과학 박사 학위
6. 평가와 논란
빅토르 줍코프는 그의 오랜 공직 경력과 주요 직책 수행으로 인해 다양한 평가를 받아왔으며,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비판과 국제적인 제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6.1. 대중적 인식 및 영향
2006년 정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빅토르 줍코프는 러시아에서 84번째로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이는 그의 공직 활동 전반에 걸쳐 그가 러시아 정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준다.
6.2. 비판 및 제재
빅토르 줍코프는 특정 정치적 결정과 관련하여 비판을 받았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2023년 2월 24일 영국 정부에 의해 제재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의 일환으로, 그가 러시아의 주요 에너지 기업인 가스프롬의 이사회 의장으로서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