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무스타파 다으스탄르(Mustafa Dağıstanlı, 1931년 4월 11일 ~ 2022년 9월 18일)는 튀르키예의 전설적인 레슬링 선수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자유형 레슬링에서 특히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으며, 올림픽과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서 여러 차례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선수 은퇴 후에는 튀르키예 레슬링 연맹에서 활동하며 코치로 봉사했으며, 정의당 소속으로 삼순 지역구의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정치인으로서도 활동했다. 또한 앙카라에서 버스 운수 사업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레슬링 역사에 기여한 공로로 FILA 국제 레슬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튀르키예 레슬링의 위상을 높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2. 생애
2.1. 출생 및 유년기
무스타파 다으스탄르는 1931년 4월 11일 튀르키예 삼순주의 차르샴바 지역에 위치한 쇠위트프나르(Söğütpınar)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키는 1.68 m였고, 체중은 62 kg이었다. 그는 2022년 9월 18일 91세의 나이로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사망했다.
2.2. 레슬링 입문 및 초기 활동
다으스탄르는 어린 시절부터 튀르키예의 전통적인 오일 레슬링에 참여했으며, 18세가 되어서야 올림픽 레슬링에 입문했다. 그는 1950년대 세계 최고의 자유형 레슬링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했지만, 그레코로만 레슬링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아쉽게 탈락했지만, 1953년에는 스웨덴에서 열린 두 차례의 국제 경기에 튀르키예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다. 이 경기에서 그는 밴텀급 부문에서 에드빈 베스테르뷔(Edvin Vesterby)와 괴테 페르손(Göte Persson)을 상대로 포인트 승리를 거두며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3. 레슬링 경력
3.1. 국가대표 및 국제 대회 데뷔
다으스탄르는 1953년 스웨덴에서의 국제 경기 참여를 통해 튀르키예 국가대표로 자리매김했으며, 1954년 도쿄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 밴텀급 자유형 선수로 참가하며 국제 챔피언십에 처음으로 데뷔했다.
3.2. 올림픽에서의 활약
다으스탄르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처음으로 올림픽 명예를 얻었다. 그는 밴텀급에서 5승을 거두며 압도적인 실력으로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페더급으로 출전하여 이 성공을 다시 한번 재현했다. 로마에서 그는 6승을 거두었으며, 일본의 사토 타미지(Tamiji Sato)와의 일곱 번째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그의 금메달 획득을 막지 못했다.

3.3. 세계 선수권 대회 및 기타 주요 대회
다으스탄르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과 1960년 로마 올림픽 사이에 1957년 이스탄불과 1959년 테헤란에서 열린 세계 자유형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서 페더급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1954년 도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밴텀급 자유형에서 3번의 폴승과 2번의 포인트 승리를 거두며 헝가리의 러요시 벤체(Lajos Bencze)와 핀란드의 타우노 야스카리(Tauno Jaskari)를 제치고 세계 타이틀을 획득했다. 1957년 이스탄불 대회에서는 모든 경기를 승리했으며, 1959년 테헤란 대회에서는 파키스탄의 무하마드 아크바르(Muhamad Ahkbar)와 무승부를 기록했다. 1955년과 1958년에는 자유형 세계 선수권 대회가 열리지 않았다.
다으스탄르는 1956년 레슬링 월드컵에서 밴텀급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1958년 레슬링 월드컵에서는 소련의 누리크 무셰기얀(Nurik Muschegijan)에 이어 페더급 2위를 차지하며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주요 국제 대회 기록을 남겼다. 이 대회에서 그는 두 차례 무승부를 기록한 반면, 무셰기얀은 한 차례만 무승부를 기록했다.
또한, 그는 1955년 지중해 게임 그레코로만형 밴텀급(57kg)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60년 불가리아 부르가스에서 열린 발칸 선수권 대회 페더급(62kg)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58년에는 튀르키예 레슬링 대표팀과 함께 서독을 방문하여 클라우스 로스트(Klaus Rost), 에르빈 슈스터(Erwin Schuster), 요한 아르크스타터(Johann Argstatter), 가블린스키(Gawlinski) 등 네 명의 상대를 상대로 어깨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3.4. 경기 기록 및 레슬링 스타일
다으스탄르는 선수 생활 동안 총 393번의 경기에 출전하여 389승 4무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그는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세계 최고의 밴텀급 및 페더급 자유형 레슬링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그가 참가했던 주요 챔피언십과 토너먼트에서 단 한 차례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3.5. 선수 경력 은퇴
다으스탄르는 1960년 로마 올림픽 이후 현역 레슬링 선수 생활을 마쳤다. 그는 선수 생활 동안 뛰어난 경기력을 유지하며 튀르키예 레슬링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4. 레슬링 은퇴 후 활동
4.1. 코치 및 레슬링 연맹 활동
현역 레슬링 선수 은퇴 후 무스타파 다으스탄르는 레슬링 코치로 활동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또한 튀르키예 레슬링 연맹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튀르키예 레슬링계 발전에 기여했다.
4.2. 정치 활동
다으스탄르는 1973년부터 1980년까지 그의 고향인 삼순 지역구의 국회의원으로 정의당 소속으로 활동했다. 그는 선수 시절의 명성을 바탕으로 정치계에 진출하여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다.
4.3. 사업 활동
다으스탄르는 정치 활동과 병행하여 사업가로서도 활동했다. 그는 앙카라에서 자신의 성과 올림픽 오륜을 로고로 사용하는 시외버스 운수 사업을 운영했다.
5. 사망
5.1. 사망 경위 및 장례
무스타파 다으스탄르는 2022년 9월 18일 91세의 나이로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은 9월 20일 앙카라 코자테페 모스크(Kocatepe Mosque)에서 치러진 장례 기도 후에 카르시야카 공동묘지(Karşıyaka Cemetery)에 안장되었다.
6. 평가 및 유산
6.1. 주요 업적 및 긍정적 평가
무스타파 다으스탄르는 튀르키예 레슬링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 2개,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 금메달 3개, 지중해 게임 금메달 1개, 레슬링 월드컵 금메달 1개 등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며 튀르키예의 위상을 높였다. 그의 레슬링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2009년 9월에는 FILA 국제 레슬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탁월한 경기 기록과 국제 무대에서의 압도적인 활약으로 튀르키예 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6.2. 비판 및 논란
무스타파 다으스탄르의 공적인 활동과 관련하여 제기된 비판이나 논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7. 같이 보기
- 레슬링
- 올림픽 레슬링
- 튀르키예의 스포츠
- 자유형 레슬링
- 그레코로만 레슬링
- FILA 국제 레슬링 명예의 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