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로베르 앙리 종케(Robert Henri Jonquet프랑스어; 1925년 5월 3일 ~ 2008년 12월 17일)는 프랑스의 축구 선수로, 주로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랭스에서 보내며 5번의 프랑스 챔피언십 우승을 달성하고, 2번의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출전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1951년 잉글랜드를 상대로 한 뛰어난 활약으로 "하이버리의 영웅"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950년대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서 1954년과 1958년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다.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2. Early life
로베르 앙리 종케는 1925년 5월 3일 프랑스 파리 제14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 시절 샤트네말라브리 등 파리 남부 교외 지역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이후 볼테르 스포츠 사회단(Société Sportive Voltaire프랑스어)에서 뛰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는 랭스의 유소년 팀에서 활약했다.
3. Playing career
로베르 앙리 종케는 1945년부터 1962년까지 프로 선수로 활약하며 주로 수비 포지션을 맡았다. 그는 랭스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고, 말년에는 스트라스부르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또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두 차례의 월드컵에 참가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3.1. Club career
종케는 1945년 랭스에 입단하며 성인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이 시기 팀의 전성기를 이끌며 수많은 국내외 대회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이후 선수 경력의 말년에는 스트라스부르에서 팀의 승격에 기여했다.
3.1.1. Stade de Reims (1945-1960)
종케는 1946-47 시즌에 디비시옹 1에서 랭스 소속으로 첫 경기를 치렀다. 그는 곧바로 팀의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종케는 수비수치고는 상대적으로 작은 키(1.76 m)였지만, 5번 등번호를 달고 전형적인 '파괴자'형 중앙 수비수보다는 우아함과 재능을 겸비한 리베로(libero이탈리아어)로서 경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1948-49 시즌에 첫 프랑스 챔피언십 우승을 경험했고, 1950년에는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추가했다. 1953년에는 두 번째 프랑스 챔피언십과 코파 라티나 우승을 동시에 달성했다. 1955년에는 다시 한번 프랑스 챔피언십과 트로페 데 샹피옹을 우승했으며, 코파 라티나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인 1956년에는 랭스와 함께 새롭게 출범한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 3-4로 아쉽게 패했다.
1950년대 랭스는 도미니크 콜론나, 레몽 코파, 미셸 이달고, 레옹 글로바츠키, 장 뱅상, 쥐스트 퐁텐, 로제 피앙토니, 르네 블리아르 등의 뛰어난 공격진과 로제 마르슈, 아르망 팡베른, 알베르 바토, 미셸 르블롱, 장 웬들링 등의 견고한 수비진을 보유한 유럽 최강 팀 중 하나였다. 종케는 랭스에서 10년 이상 활약하며 유러피언컵과 코파 라티나 결승전에 각각 두 번씩 출전한 유일한 선수였다. 특히 알베르 바토는 1950년까지는 동료 선수로, 1950년부터 1959년까지는 감독으로, 1955년부터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종케의 경력을 여러 방면에서 지원하고 함께했다.
1957-58 시즌에는 프랑스 챔피언십, 쿠프 드 프랑스,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을 포함하여 3관왕을 달성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두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전(1959년, 0-2 패배) 이후 레몽 코파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랭스로 복귀했고, 종케는 1960년에 통산 5번째 프랑스 챔피언십과 3번째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랭스에서 그는 총 502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다.
3.1.2. RC Strasbourg (1960-1962)
1960년, 35세의 나이로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 로베르 종케는 2부 리그 소속의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했다. 그는 이적 첫 해인 1961년 팀의 디비시옹 1 승격을 이끌며 선수로서 마지막 성공을 거두었다. 1962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그는 스트라스부르 소속으로 55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그의 프로 경력 총 출전 기록은 557경기 12골이다.
3.2. International career
종케는 1948년 4월부터 1960년 7월까지 프랑스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58경기에 출전했으며, 이 중 9경기에서는 주장 완장을 찼다. 1948년 4월 4일 이탈리아를 상대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1951년 10월 런던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한 친선 경기에서 뛰어난 개인 활약을 펼쳐 프랑스가 2-2 무승부를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 이 경기 다음 날 신문 기사에서는 그를 "하이버리의 영웅"으로 칭하며 극찬했다. 그는 1955년에는 유럽 연합팀 소속으로 친선 경기에서 잉글랜드를 꺾기도 했다.
종케는 두 차례의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다. 1954년 FIFA 월드컵 스위스 대회에서는 1경기에 출전했고, 1958년 FIFA 월드컵 스웨덴 대회에서는 팀의 주장으로서 5경기에 나섰다. 특히 스웨덴 대회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을 상대하던 중 전반 35분에 바바와의 충돌로 인해 종아리뼈가 골절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당시에는 선수 교체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하프타임에 진통제를 맞고 후반전을 절뚝거리며 왼쪽 측면에서 사실상 무력하게 보냈다. 이 부상으로 인해 그는 3위 결정전(서독에 6-3 승리)에는 결장해야 했다. 그러나 5개월 후, 그는 1958년 9월 18일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에 복귀하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
그는 1960년 7월 6일 유럽 네이션스컵 준결승 체코슬로바키아전이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였다.

4. Managerial career
선수 생활 은퇴 후 로베르 종케는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스트라스부르에서 곧바로 감독으로 전향하여 1961년부터 1964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이후 1964년부터 1967년까지 랭스의 감독을 맡았으며, 1980년부터 1981년까지 다시 랭스 지휘봉을 잡았다. 이 외에도 그는 로미이-쉬르-센 (1967-1974), 에페르네 (1974-1977), 그리고 샬롱-쉬르-마른 (1977-1980) 등 여러 중소 클럽들을 지도했다. 그는 현대 축구에서 돈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실망감을 표하며, 과거 랭스 시절을 그리워했다.

5. Honours
로베르 앙리 종케가 선수로서 획득한 주요 우승 기록은 다음과 같다.
대회 | 우승 | 준우승 |
---|---|---|
디비시옹 1 | 1948-49, 1952-53, 1954-55, 1957-58, 1959-60 (총 5회) | 1946-47, 1953-54 |
쿠프 드 프랑스 | 1949-50, 1957-58 (총 2회) | |
트로페 데 샹피옹 | 1955, 1958, 1960 (총 3회) | |
코파 라티나 | 1953 (총 1회) | 1955 |
유러피언컵 | 1955-56, 1958-59 |
- FIFA 월드컵
- 3위: 1958
6. Death and legacy
로베르 앙리 종케는 2008년 12월 17일, 프랑스 마른주 랭스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를 기리기 위해 친정 구단인 랭스는 그들의 홈 구장인 오귀스트 들론 스타디움의 스탠드 중 한 곳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