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로버트 여키스는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로버트 여키스는 1876년 5월 26일 펜실베이니아주 브레디스빌(아이빌랜드 근처)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농촌의 고된 삶을 벗어나 의사가 되기를 원했던 그는 삼촌의 재정적 도움으로 1892년부터 1897년까지 어시너스 칼리지에 다녔다. 졸업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생물학 대학원 과정을 밟으라는 제안을 받았고, 필라델피아에서의 의학 훈련 대신 하버드를 선택했다. 하버드에서 여키스는 동물 행동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의학 훈련을 미루고 비교 심리학을 공부했다. 그는 1902년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에서 그는 휴고 뮌스터버그에게서 배웠다.
1.2. 초기 경력
여키스의 초기 경력은 학비로 인한 빚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하버드 졸업 후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비교 심리학 강사이자 조교수로 일했다. 그는 여름마다 래드클리프 칼리지에서 일반 심리학을 가르치며 수입을 보충해야 했다. 또한 보스턴 정신병리학 병원의 심리학 연구 책임자로도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1907년, 여키스는 그의 첫 저서인 춤추는 쥐: 동물 행동 연구(The Dancing Mouse, A Study in Animal Behavior영어)를 출판했다. 이 시기 그의 친구 중에는 미래의 행동주의자 존 B. 왓슨이 있었는데, 그와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협력하기도 했다. 그는 1903년부터 1911년까지 위흐트 클럽의 회원이기도 했다. 그는 1917년까지 하버드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24년부터 1944년까지 예일 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2. 학문 및 전문적 기여
여키스는 심리학, 특히 비교 심리학과 영장류학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지능 검사 개발에도 크게 기여했다.
2.1. 비교 심리학 및 지능 검사
여키스는 인간과 영장류의 지능 연구에 선구자였으며, 무척추동물부터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동물 종을 대상으로 지능, 학습, 지각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며 비교 심리학의 기초를 다졌다.
1917년 그는 미국 심리학 협회(APA) 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영향력 아래 APA는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신병 심리 검사 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그는 육군 알파 및 베타 지능 검사를 개발했다. 이 검사는 최초의 비언어적 집단 검사로, 전쟁 중 100만 명이 넘는 미국 군인들에게 시행되었다.
여키스는 이 검사들이 교육이나 훈련이 아닌 타고난 지능을 측정한다고 주장했지만, 질문 내용 자체를 보면 이러한 주장을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예를 들어 알파 검사 8번의 18번 문항은 "벨벳 조는 ... 광고에 등장한다 (치약)(잡화)(담배)(비누)"와 같았다. 여키스는 이러한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이민자들(특히 남유럽과 동유럽 출신)이 이전 이민자들(북유럽 출신)보다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결과는 검사 점수가 미국 거주 연수와 거의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에 사실상 문화화 정도를 측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키스의 연구는 미국의 외국인 혐오증과 반이민 정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연구는 가혹하고 인종차별적인 이민 제한의 우생학적 동기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그는 하원 이민 및 귀화 위원회의 "전문 우생학 요원"으로 임명되었으며, 그의 작업은 차별적인 국적별 이민 쿼터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칼 브리검의 미국 지능 연구(A Study of American Intelligence영어) 서문에서 여키스는 "어떤 시민도 인종 퇴화의 위협을 무시할 여유가 없다"고 언급하며 우생학을 대중화하는 데 일조했다. 여키스는 에드워드 손다이크와 함께 찰스 베네딕트 대븐포트가 설립한 우생학 기록 사무소의 정신 특성 유전 위원회 위원이자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2. 국립 연구 위원회 활동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여키스는 미국 국립 연구 위원회(NRC)의 유급 임원으로 일하며 NRC 성 문제 연구 위원회를 이끌었다. 이 위원회 활동을 통해 여키스는 록펠러 자선 재단 관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고, 이는 훗날 그의 침팬지 프로젝트를 위한 상당한 자금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2.3. 영장류학 및 영장류 연구
여키스는 침팬지 연구에 오랫동안 매료되어 있었다. 그는 동물원에서 두 마리의 침팬지(수컷 보노보 '침'과 암컷 침팬지 '팬지')를 구입하면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침실에서 키우면서 작은 식탁에서 포크로 식사하는 법을 가르쳤다. 침은 여키스에게 특히 즐거움을 주었으며, 침팬지와 심리학자가 함께 보낸 여름은 1924년 저서 거의 인간(Almost Human영어)에 기록되었다. 1924년 그는 쿠바의 로잘리아 아브레우가 운영하는 대규모 영장류 식민지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브레우는 사육 상태에서 침팬지 번식에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여키스는 해럴드 빙엄, 조세핀 볼 그리고 보노보 침과 동행했다. 안타깝게도 침은 방문 중에 죽었다. 여키스는 아브레우의 조언을 받아 자신의 침팬지를 기르고 관찰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1924년 여키스는 자신이 개척한 분야인 정신생물학 교수로 예일 대학교에 채용되었다. 그는 록펠러 재단의 자금 지원을 받아 뉴헤이븐에 예일 대학교 영장류 생물학 연구소(Yale University Laboratories of Primate Biology)를 설립했으며, 이어서 플로리다주 오렌지 파크에 유인원 번식 및 실험소를 설립했다. 그는 또한 유인원의 생태 조사를 기획하여, 1931년에는 침팬지 조사를 위해 헨리 니센을, 이듬해인 1932년에는 마운틴고릴라 조사를 위해 해럴드 빙엄을 아프리카에 파견하기도 했다. 영장류 언어인 여키시는 여키스 영장류 생물학 연구소에서 개발되었다. 여키스는 1942년 소장직에서 은퇴했으며, 후임으로 칼 래슐리가 임명되었다. 그의 사후 이 연구소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교로 이전되었고, 이후 여키스 국립 영장류 연구 센터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YER-keez"라고 발음된다고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에 밝힌 바 있다.

2.4. 여키스-도슨 법칙
여키스는 존 도슨과 함께 수행 능력과 각성 수준의 관계를 설명하는 여키스-도슨 법칙을 개발했다. 이 법칙은 학습 과제의 난이도와 동기 부여 수준 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적절한 각성 수준은 최적의 수행 능력을 이끌어내지만, 각성 수준이 너무 낮거나 높으면 수행 능력이 저하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3. 제1차 세계 대전 기여
여키스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미국 군인의 심리 검사를 위한 지능 검사 개발 및 시행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3.1. 육군 알파 및 베타 검사
1917년 미국 심리학 협회(APA) 회장이었던 여키스는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을 위한 APA의 여러 프로그램을 주도했다. 그는 신병 심리 검사 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육군 알파 및 베타 지능 검사를 개발했다. 이 검사들은 최초의 비언어적 집단 검사로, 전쟁 중 100만 명이 넘는 미국 군인들에게 시행되었다. 특히 인도네시아어 자료에 따르면 170만 명 이상의 병력에 대해 지능 검사를 수행했다. 이 검사들은 신병들의 지적 능력을 평가하고 적절한 직무에 배치하는 데 사용되었으나, 이후 그 타당성과 사회적 영향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4. 우생학과 사회적 영향
여키스는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그의 연구는 당시의 사회 정책, 특히 이민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활동은 현대에 이르러 강한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4.1. 우생학 지지
여키스는 1910년대와 1920년대에 우생학에 대한 지지를 적극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지능 검사 결과를 사용하여 최근 이민자들(특히 남유럽과 동유럽 출신)이 북유럽 출신 이민자들보다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가혹하고 인종차별적인 이민 제한의 우생학적 근거로 활용되었다. 그는 하원 이민 및 귀화 위원회의 "전문 우생학 요원"으로 임명되어, 차별적인 국적별 이민 쿼터제 제정에 기여했다. 칼 브리검의 저서 미국 지능 연구 서문에서 여키스는 "어떤 시민도 인종 퇴화의 위협을 무시할 여유가 없다"고 언급하며 우생학 사상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는 찰스 베네딕트 대븐포트가 설립한 우생학 기록 사무소의 정신 특성 유전 위원회 위원이자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4.2. 비판 및 논란
여키스의 연구, 특히 지능 검사와 우생학에 대한 그의 주장은 현대 학자들에 의해 심각한 비판을 받는다. 그는 검사들이 교육이나 훈련이 아닌 타고난 지능을 측정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검사 문항의 내용과 실제 결과에 비추어 볼 때 타당성이 부족했다. 그의 검사 결과는 실제로는 미국 거주 연수와 거의 정확히 상관관계를 보였으며, 이는 검사가 타고난 지능이 아닌 문화화 정도를 측정했음을 시사한다.
여키스의 작업은 미국의 외국인 혐오증과 반이민 정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연구는 인종차별적인 이민 제한 정책의 주요 근거로 사용되었다. 현대 학계에서는 그의 작업이 시대에 뒤떨어진 인종주의적 이론에 편향되어 있었다고 광범위하게 간주하고 있다.
5. 유산 및 평가
여키스의 학문적 공헌은 인정받지만, 그의 우생학 지지 이력은 후대에 큰 논란을 남겼으며, 그의 이름을 딴 기관의 명칭 변경으로 이어졌다.
5.1. 영장류 연구 센터 명칭 변경
2022년 4월, 에모리 대학교는 여키스의 과거 우생학 지지 이력에 대한 검토를 거쳐, 명예 명칭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여키스 국립 영장류 연구 센터에서 그의 이름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 6월 1일부터 이 센터는 에모리 국립 영장류 연구 센터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는 그의 학문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우생학에 대한 그의 참여가 남긴 부정적인 유산을 인정한 결과이다.
5.2. 역사적 평가
로버트 여키스는 비교 심리학과 영장류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학문 발전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특히 여키스-도슨 법칙과 영장류 연구소 설립은 그의 중요한 학문적 업적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현대 학자들에 의해 시대에 뒤떨어진 인종주의적 이론에 편향된 것으로 간주된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중 개발한 지능 검사를 통해 인종 및 민족 집단 간의 지능 차이를 주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차별적인 이민 정책을 옹호한 점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큰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의 작업은 미국의 외국인 혐오증과 반이민 정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이름이 붙은 기관의 명칭 변경은 이러한 부정적인 유산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반영한다.
6. 저술
로버트 여키스가 남긴 주요 저서 및 논문은 다음과 같다.
- 1907년, 춤추는 쥐: 동물 행동 연구(The Dancing Mouse, A Study in Animal Behavior영어)
- 1911년, 심리학 개론(Introduction to Psychology영어)
- 1911년, 동물 시각 연구 방법(Methods of Studying Vision in Animals영어) (존 B. 왓슨 공저)
- 1914년, 자아 연구 개요(Outline of a Study of the Self영어)
- 1915년, 정신 능력 측정을 위한 점수 척도(A Point Scale for Measuring Mental Ability영어) (공저)
- 1916년, 원숭이와 유인원의 정신 생활(The mental life of monkeys and apes영어)
- 1920년, 육군 정신 검사(Army Mental Tests영어) (클래런스 S. 요아쿰, 로버트 M. 여키스 공저)
- 1925년, 거의 인간(Almost Human영어)
- 1929년, 위대한 유인원(The Great Apes영어) (에이다 W. 여키스 공저)
- 1943년, 침팬지: 실험실 군집(Chimpanzees; a laboratory colony영어)
7. 관련 항목
- 위대한 유인원 인격
- 여키스-도슨 법칙
- 여키시
- 윌리엄 제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