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다이앤 마리 디즈니 밀러(Diane Marie Disney-Miller영어, 1933년 12월 18일 ~ 2013년 11월 19일)는 월트 디즈니와 그의 아내 릴리언 바운즈 디즈니의 외동딸이자 유일한 친자녀이다. 그녀는 자선가이자 예술 후원자로서 평생 동안 클래식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아버지의 유산을 보존하고 그의 삶과 업적을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 헌신했으며,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을 공동 설립하고 월트 디즈니 가족 재단의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다. 또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건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예술 및 교육 분야에 크게 기여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다이앤 마리 디즈니 밀러는 월트 디즈니의 딸로서, 그의 유산을 보존하고 문화 예술 분야에 기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1. 어린 시절 및 교육
다이앤 마리 디즈니는 1933년 12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로스 펠리스 초등학교에 다녔으며,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이매큘레이트 하트 고등학교 (로스앤젤레스)를 졸업했다. 이후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2.2. 결혼 및 자녀
20세가 되던 해, 다이앤은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간의 미식축구 경기 후 주선된 소개팅에서 21세의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학생이자 USC 트로잔스 미식축구팀 선수였던 로널드 W. 밀러를 만났다. 두 사람은 1954년 5월 9일 샌타바버라의 작은 성공회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는 슬하에 일곱 자녀를 두었다. 자녀들의 이름과 출생 연도는 크리스토퍼(1954년생), 조안나(1956년생), 타마라(1958년생), 제니퍼(밀러-고프; 1960년생), 월터(1962년생), 로널드(1964년생), 패트릭(1966년생)이다. 로널드 밀러는 군 복무와 프로 미식축구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월트 디즈니의 권유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 입사하여 영화 감독 및 제작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이후 현재의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올랐다.
3. 주요 활동 및 업적
다이앤 디즈니 밀러는 생애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활동을 펼치며 큰 업적을 남겼다.
3.1. 저술 및 출판물
밀러는 1956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피트 마틴과 공동 집필한 "나의 아빠, 월트 디즈니"라는 제목의 8부작 기고문을 연재했다. 이듬해인 1957년에는 월트 디즈니 이야기라는 책을 출판하며 아버지의 삶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 기여했다. 1984년 남편이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의 임원직에서 물러난 후, 그녀는 회사와의 관계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2005년 인터뷰에서 밀러는 자신과 남편 론이 부모님으로부터 매우 보호받고 사랑받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회상했다.
3.2. 자선 활동 및 예술 지원

밀러는 예술의 후원자이자 평생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으며 관대한 자선가였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건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8년 그녀의 어머니 릴리언 디즈니는 로스앤젤레스 시내 콘서트홀에 5000.00 만 USD를 기부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밀러는 평생 동안 이 프로젝트를 지지했다. 70개 이상의 건축 설계 사무소가 수석 감독인 프랭크 게리에게 제안서를 제출했다. 1996년에는 프로젝트가 거의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밀러는 부실한 관리와 디자인에 대한 의견 불일치,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공무원들의 취소 시도에도 불구하고 게리를 설득하여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도록 했다.
원래 1997년까지 1000.00 만 USD 규모의 가치를 가질 것으로 예상되었던 이 프로젝트에 대해 다이앤은 월트 디즈니 가족 재단이 약 2500.00 만 USD를 기부하여 게리가 계속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결국 콘서트홀은 2003년에 총 2.47 억 USD의 비용으로 개관했다. 비록 릴리언 디즈니는 1997년에 사망하여 콘서트홀에서 콘서트를 보지 못했지만, 밀러는 계속해서 콘서트홀을 지원했다.
3.3. 실버라도 포도원
남편이 디즈니 회사에 합류한 후, 밀러는 어머니 릴리언과 함께 나파 밸리로 여행하여 여러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이 여행은 밀러에게 포도원 사업을 시작하고 와이너리까지 확장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자녀들이 성장하고 남편 론이 1984년에 회사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떠난 후, 그들은 나파에 유명한 실버라도 포도원 와이너리를 개발했으며, 이곳은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1976년, 가족은 스태그스 립 지구의 실버라도 트레일을 따라 넓은 부지를 매입했다. 그들은 카베르네 소비뇽과 샤르도네를 심었고, 1981년에 와인 생산을 시작했다. 그들은 와이너리를 확장하여 자체 재배한 포도만을 사용하게 했으며, 다이앤은 단순히 사업이 아닌 가정적이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3.4.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 설립 및 운영
일곱 자녀를 양육하는 데 초기 생애를 바친 후, 밀러는 아버지의 삶과 업적을 기록하기 위한 적극적인 옹호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전기와 부정확한 소문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의 이름이 실제 인물에 대한 언급보다는 기업의 정체성으로 더 많이 인식되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2001년, 월트 디즈니 가족 재단은 월트 디즈니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신화 뒤의 남자를 공개했는데, 이 영화에는 그의 동료, 친구, 가족과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2009년, 밀러는 영화 제작자인 아들 월터 엘리아스 디즈니 밀러와 함께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을 공동 설립했다. 사망 당시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에 위치한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인 월트 디즈니 가족 재단의 이사회 의장이었다. 이 박물관은 창의성과 혁신을 증진하고 영감을 주며, 월트 디즈니의 삶을 기념하고 연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3.5. 다이앤 디즈니 밀러 평생 공로상
2015년, 박물관의 설립자를 기리기 위해 다이앤 디즈니 밀러 평생 공로상이 제정되었다. 이 상은 예술, 교육, 지역 사회 참여 또는 기술 발전 분야에서 뛰어난 공헌을 한 인물을 인정하기 위한 상이다.
| 연도 | 수상자 |
|---|---|
| 2015 | 리처드 셔먼 |
| 2016 | 마티 스클라 |
| 2017 | 존 라세터 |
4. 유산 및 보존 노력
다이앤 디즈니 밀러는 아버지 월트 디즈니의 개인적인 삶과 업적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에 깊이 헌신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둘러싼 잘못된 정보와 소문에 대해 우려했으며, 그의 이름이 단순히 기업의 상징을 넘어 실제 인물의 정체성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노력은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의 설립과 다큐멘터리 신화 뒤의 남자 제작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이는 월트 디즈니의 진정한 모습을 후대에 전달하려는 그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유산으로 남아있다.
5. 사망
밀러는 2013년 9월 낙상 후 발생한 합병증으로 인해 2013년 11월 19일 캘리포니아주 나파에서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는 80번째 생일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녀는 글렌데일 포레스트 론 메모리얼 파크에 안장되었는데, 이곳에는 그녀의 아버지의 유해도 함께 안치되어 있다. 그녀는 사망 당시 일곱 명의 자녀와 열세 명의 손주, 그리고 증손주를 남겼다.
그녀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영화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는 그녀에게 헌정되었으며, 이 영화는 그녀가 사망한 직후 극장에서 개봉했다. 또한 그녀는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이 개봉되기 8일 전에 사망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론과 다이앤 디즈니 밀러에게 특별한 감사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6. 관련 항목
- 월트 디즈니
- 릴리언 바운즈 디즈니
- 로널드 W. 밀러
-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
-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 실버라도 포도원
- 와이너리 및 포도원을 소유한 유명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