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배경
다비트 리게르트의 생애와 배경은 그의 가족사와 어린 시절, 그리고 역도 선수로서의 초기 경력에 걸쳐 있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다비트 리게르트는 1947년 3월 12일 소련 카자흐 SSR 콕체타프 주의 나고르노예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일계 러시아인인 아버지 아담 아다모비치 리게르트와 어머니 옐리자베타 루돌포프나 호른의 아들이다. 그의 할아버지 아담 리게르트는 차르의 장교였던 루돌프 호른 남작의 영지에서 일했으며, 호른 남작의 딸 리스베트는 아담 리게르트의 아들 아담과 결혼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그의 아버지는 다른 독일계 러시아인들과 함께 우랄 산맥으로 강제 노동자로 끌려갔고, 어머니와 자녀들은 카자흐스탄 북부로 이주하게 되었다. 다비트 리게르트와 그의 여덟 형제자매는 캅카스 근처의 쿠반 지역에서 성장했다.
리게르트는 어린 시절 처음에는 복싱 훈련을 받았으나, 1960년 올림픽에서 유리 블라소프가 우승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아 역도로 전향하게 되었다. 그는 172cm의 키를 가졌다.
1.2. 초기 경력
1966년부터 독자적으로 역도를 훈련하기 시작했으며, 전 소련 역도 챔피언 아르카디 보로비요프의 훈련 방식을 따랐다. 소련군 복무 후, 리게르트는 스포츠 마스터 칭호를 획득했다. 제대 후에는 아르마비르에 거주하며 훈련했다. 1969년 그는 유명한 소련 역도 코치 루돌프 플류크펠더를 만나 그의 초청으로 샤흐티로 이주했다. 샤흐티에서 리게르트는 플류크펠더의 지도 아래 트루트 자원 스포츠 사회(Trud Voluntary Sports Society)에서 훈련을 시작했으며, 이 시기에 탄광 노동자로도 일했다. 훈련 시작 불과 11개월 후인 1970년, 리게르트는 소련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국제 무대에 데뷔했으며, 그 해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71년 RSFSR 선수권 대회에서 그는 첫 세계 기록을 수립했다.
2. 선수 경력
리게르트의 선수 경력은 그의 훈련 방식, 초기 성과, 그리고 주요 국제 대회에서의 빛나는 기록들을 포함한다.
2.1. 훈련 및 초기 성과
1968년 소련군 복무 중 소련 스포츠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선수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1971년 RSFSR 선수권 대회에서 첫 세계 기록을 세웠으며, 이후 바실리 알렉세예프만이 그의 기록을 넘어설 정도로 총 65개의 세계 기록을 수립하는 경이로운 기록 행진을 시작했다.
2.2. 주요 대회 기록
리게르트는 올림픽 외에도 수많은 세계 및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대회 | 연도 | 체급 | 메달 |
---|---|---|---|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 | |||
1970년 콜럼버스 | -82.5kg | 동메달 | |
1971년 리마 | -90kg | 금메달 | |
1973년 아바나 | -90kg | 금메달 | |
1974년 마닐라 | -90kg | 금메달 | |
1975년 모스크바 | -90kg | 금메달 | |
1978년 게티즈버그 | -100kg | 금메달 | |
유럽 역도 선수권 대회 | |||
1971년 소피아 | -90kg | 금메달 | |
1972년 콘스탄차 | -90kg | 금메달 | |
1973년 마드리드 | -90kg | 금메달 | |
1974년 베로나 | -90kg | 금메달 | |
1976년 동베를린 | -90kg | 금메달 | |
1978년 하비르조프 | -90kg | 금메달 | |
1979년 바르나 | -100kg | 금메달 | |
1980년 베오그라드 | -100kg | 금메달 |
2.3. 올림픽 참가
리게르트는 세 차례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다.
- 1972년 하계 올림픽 (뮌헨): 이 대회에서 그는 실망스러운 성과를 보였다.
- 1976년 하계 올림픽 (몬트리올): 1972년의 실패 이후, 리게르트는 1973년에 8개의 세계 기록을 세우고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며 재기했다. 이러한 기세를 이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정점에 올랐다. 그는 1973년부터 1976년 사이에 모든 세계 및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1980년 하계 올림픽 (모스크바): 선수 경력의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이 대회에서 리게르트는 다시 한번 실망스러운 결과를 기록했다. 그는 100kg 미만 체급에서 90kg 미만 체급으로 체중을 감량했는데, 급격한 체중 감량의 결과로 다리 근육이 파열되어 결국 0점을 기록했다.
3. 은퇴 후 활동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후, 다비트 리게르트는 로스토프로 이주했고 나중에 타간로크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코치로 활동하며 모스크바 체육 문화 연구소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또한 올림픽 역도 대회를 위한 역도용 중량 원판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리게르트는 타간로크에 약 100개의 스포츠 시설을 건설하는 데 기여했으며, 타간로크에 역도 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러시아 역도 국가대표팀을 훈련시키는 데 참여했다.
스포츠 외적으로도 그는 사회 활동을 이어갔다. 2004년에는 타간로크 시의회(두마)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2009년 3월에는 통합 러시아당 소속으로 타간로크 두마 의원으로 재선되었다. 그는 타간로크, 그로즈니, 초르노모르스크의 명예 시민이기도 하다.
4. 개인사
다비트 리게르트는 전 창던지기 선수였던 나데즈다와 결혼했다. 그들은 빅토르, 블라디슬라프, 데니스 세 아들을 두었으며, 세 아들 모두 경쟁적인 역도 선수가 되었다. 리게르트는 11세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여 애연가로 알려져 있다.
5. 수상 및 명예
다비트 리게르트는 선수 경력과 업적에 대해 다음과 같은 공식적인 인정과 명예를 얻었다.
- 노동적기훈장 (1976년): 소련의 주요 민간 훈장 중 하나로, 그의 뛰어난 스포츠 업적을 기려 수여되었다.
- 국제 역도 연맹 명예의 전당 헌액 (1999년): 전 세계 역도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 역도 연맹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6. 평가
다비트 리게르트는 역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널리 평가받는다. 65개에 달하는 세계 기록 수립은 그의 압도적인 기량과 꾸준함을 증명하며, 올림픽 금메달과 수많은 세계 및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은 그의 지배적인 위치를 확고히 했다. 그의 경력은 1972년과 1980년 올림픽에서의 아쉬운 결과도 포함하지만, 이는 그의 전반적인 위대한 업적을 가리지 못한다. 특히 1973년부터 1976년까지 이어진 그의 전성기는 역도계에 길이 남을 기록으로 기억되고 있다.
7. 관련 항목
- 선택된 유대인 역도 선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