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네덤 오누오하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잉글랜드 맨체스터에서 성장했으며,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며 엄격한 가정 교육 속에서 자랐다.
1.1. 출생 및 성장 과정
오누오하는 1986년 11월 12일 나이지리아 델타주 와리에서 태어났지만, 잉글랜드 맨체스터에서 성장했다. 그는 엄격한 나이지리아식 양육을 받았으며, 그의 부모님은 학업을 최우선으로 여겨 학업에 충실하지 않으면 축구나 육상 경기를 금지했다.
1.2. 학업 및 초기 운동 경력
오누오하는 마일스 플래팅의 넬슨 스트리트 초등학교를 다녔고, 이후 올덤의 헐미 그래머 스쿨에서 GCSE에서 8개의 'A'와 2개의 'B'를 받았다. 이어서 맨체스터의 자베리안 칼리지에서 수학, 경영학, IT 과목에서 3개의 'A'를 받으며 학업을 마쳤다.
그는 어린 시절 뛰어난 단거리 육상 선수였는데, 14세이던 2001년 잉글랜드 학교 육상 협회 주니어 100미터 대회 결승에서 11.09초를 기록하며 크레이그 피커링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또한, 영국 전역에서 매년 열리는 스포츠 홀 행사에서 15세 이하 남자 세단뛰기 공동 국가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며, 이 기록은 국제 멀리뛰기 선수 조너선 무어와 함께 보유하고 있다.
어린 시절 맨체스터 시티를 응원했으며, 1999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질링엄과의 1999 풋볼 리그 2부 플레이오프 결승전을 관람하기도 했다. 축구 외적으로는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서 회계학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공부했으나, "인생에서 가장 지루한 한 해"였다고 언급했다. 2014년 4월, 아내 루시 오누오하와의 사이에 딸 아마이아를 얻으며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었다.
2. 선수 경력
오누오하는 맨체스터 시티 유스 아카데미에서 성장하여 1군 무대에 데뷔한 후, 선덜랜드 임대와 퀸스 파크 레인저스, 레알 솔트레이크를 거치며 프로 선수 경력을 쌓았다.
2.1. 맨체스터 시티 FC
오누오하는 1996년 10세의 나이에 맨체스터 시티 유스 아카데미에 입단하여 연령별 팀을 거쳤고, 2003-04 시즌에는 구단 리저브팀에서 정기적으로 활약했다.
2.1.1. 유스 경력 및 데뷔
2004-05 프리시즌에 베리와의 친선 경기에서 처음으로 맨체스터 시티 1군 경기에 참여했다. 2004년 10월 27일, 17세의 나이로 아스널과의 리그컵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으며 풀타임을 소화했다. 2004년 11월 1일 홈에서 열린 노리치 시티와의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출전하며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했다.

오누오하의 본래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였지만, 당시 케빈 키건 감독은 그의 패스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를 오른쪽 수비수로 기용했다. 2004년 11월 20일 포츠머스와의 경기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프리미어리그 첫 선발 출전을 기록했고, 키건 감독은 그의 활약을 칭찬했다. 1월 중순에 햄스트링 부상으로 두 달간 결장한 후, 2005년 3월 19일 토트넘 홋스퍼와의 경기에서 복귀했다. 이후 4월 20일부터 4월 30일 사이에 세 차례 무실점 경기에 기여했다. 2004-05 시즌 종료 시점까지 모든 대회를 통틀어 18경기에 출전했으며, 구단의 올해의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2.1.2. 프리미어리그 시절 및 부상
2005-06 시즌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작부터 결장했다. 8월 23일 선덜랜드와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며 시즌 첫 경기를 치렀다. 9월 초 1군에서 제외된 후 돈캐스터 로버스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경력 첫 레드카드를 받았으나, 이는 추후 철회되었다. 이후 1군 주전 자리를 위해 경쟁했으나, 사타구니 부상으로 두 달간 결장했다. 부상 중 BBC 노스 웨스트 올해의 스포츠인상 신인 부문을 수상했다. 12월 12일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부상에서 복귀했으며, 이후 6경기 연속 출전했다. 리버풀 이적설이 있었으나 구단에 남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나 무릎 인대 부상으로 2005-06 시즌 잔여 경기에 결장하게 되었다. 이 시즌에 그는 총 12경기에 출전했다.
2006-07 시즌 초에도 무릎 인대 부상으로 결장했다. 2006년 11월 18일 풀럼과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며 시즌 첫 경기를 치렀다. 이후 6경기에 출전했으나 다시 무릎 부상을 입었다. 2007년 3월 31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복귀했으며, 시즌 잔여 경기에서 1군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시즌에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19경기에 출전했으며, 구단과 4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2007-08 시즌 개막전인 8월 11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지오반니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좋은 시작을 보였다. 리그컵 2라운드 브리스톨 시티와의 경기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내내 구단 수비진에서 경쟁하며 활약했다. 두 달간 1군에서 이탈한 후 12월 22일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서 복귀했다. 2008년 3월 16일 홈에서 열린 토트넘 홋스퍼와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 데뷔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4월 5일 첼시와의 경기에서 어깨 탈구 부상을 입어 수술 후 2007-08 시즌 잔여 경기에 결장하게 되었다. 이 시즌에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21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2008-09 시즌에는 EB/스트레이무르와의 UEFA컵 예선 1차전에서 선발 출전하며 UEFA컵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국제 경기 도중 무릎 부상을 입어 시즌 초 결장했다. 10월 20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미카 리처즈와 교체되어 58분에 출전하며 부상에서 복귀했다. 이후 두 달간 교체 명단에 주로 포함되었다. 그러나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FA컵 3-0 패배 이후 시즌 종료까지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리처드 던과 효과적인 중앙 수비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2월 19일 코펜하겐과의 UEFA컵 라운드 1차전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두 달 후인 4월 19일 웨스트 브롬위치 앨비언과의 경기에서 시즌 두 번째 골을 기록했고, 5월 2일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는 팀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3월과 5월 두 차례 맨체스터 시티 토마스 쿡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2008-09 시즌에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30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이후 2009년 7월 29일 맨체스터 시티와 5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2008-09 시즌 동안 구단의 새 소유주에 대해 "인수 소식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축구계에서 가장 부유한 구단으로 불리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당시에는 매우 큰 선언이었다"고 언급했다.
2009-10 시즌에는 부상과 주전 경쟁으로 인해 1군에서 제외되었다. 2009년 11월 21일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하며 시즌 첫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사타구니 부상으로 12월 내내 결장했다. 2010년 1월 24일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와의 FA컵 4라운드에서 복귀했다. 세 달 후인 4월 11일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카를로스 테베스의 골을 어시스트하고 직접 솔로 플레이로 득점하며 팀의 5-1 승리에 기여했다. 시즌 잔여 경기에서는 구단 수비진의 경쟁으로 인해 주로 교체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9-10 시즌에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17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시즌 후 그는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의 구단 내 의사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2.1.3. 계약 및 이적
오누오하는 2005년 4월 25일, 맨체스터 시티와 3년 계약을 맺으며 미래를 약속했다. 이후 2007년 6월 25일에는 다시 4년 계약을 연장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 7월 29일에는 맨체스터 시티와 5년이라는 장기 계약을 체결하며 구단에 대한 충성심을 보였다.
그러나 선덜랜드 임대에서 복귀한 후, 2011-12 시즌을 앞두고 여러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이 그에게 입찰하며 이적설이 제기되었다. 구단으로부터 새로운 팀을 찾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그는 잔류하여 1군 주전 경쟁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만치니 감독은 "그는 홈그로운 선수이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할 것이지만, 자주 뛰기 어려울 것임을 알고 있다"고 언급하며 그의 출전 기회가 제한적일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리그컵 3라운드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시즌 첫 경기를 치렀다. 2012년 1월, 퀸스 파크 레인저스가 그에게 제안을 했고, 맨체스터 시티와 QPR 간의 이적 합의가 1월 19일에 이루어졌다. 이 시즌에 그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총 3경기에 출전했다. 지역 신문인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는 그를 "진정한 프로"라고 칭찬하며 그의 헌신을 높이 평가했다.
2.2. 선덜랜드 AFC (임대)
2010년 8월 12일, 오누오하는 당시 프리미어리그 소속이던 선덜랜드로 한 시즌간 임대 이적한다고 발표되었다. 입단 당시 스티브 브루스 감독은 오누오하에 대해 "젊고, 열정적이며, 잘하고 싶어 하고, 매주 뛰고 싶어 하는 선수다. 빠르고, 크고, 강하며, 강력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현대 축구에서는 수비수도 공격수만큼 빠르며, 오누오하는 포백 전체를 소화할 수 있다는 추가적인 매력이 있다. 그가 이곳에 오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칭찬했다.
그는 8월 14일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열린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선덜랜드 데뷔전을 치렀다. 입단 후 오누오하는 빠르게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며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그는 빠르게 팀에 영향을 미치며 여러 경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9월 25일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대런 벤트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11월 14일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첼시와의 경기에서는 세 명의 첼시 수비수를 제치고 환상적인 드리블 후 선덜랜드 데뷔골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에 기여했다.
오누오하는 시즌 전반기에 1군에서 활약했지만, 12월 말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세 경기에 결장했다. 2011년 1월 16일 지역 라이벌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복귀했다. 그러나 곧 종아리 부상을 입어 수개월간 결장했다. 4월 9일 웨스트 브롬위치 앨비언과의 경기에서 부상에서 복귀했으며, 시즌 잔여 기간 동안 다시 1군 주전 자리를 되찾아 팀이 10위로 강등을 피하는 데 기여했다. 2010-11 시즌에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32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시즌 후 선덜랜드는 브루스 감독이 그를 영구 영입하고 싶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영구 영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3. 퀸스 파크 레인저스 FC
오누오하는 2012년 1월 26일, 프리미어리그 소속 퀸스 파크 레인저스(QPR)와 4년 반 계약을 체결하며, 맨체스터 시티에서 함께했던 전 감독 마크 휴즈와 재회했다.
2.3.1. 이적 및 초기 활약
2012년 2월 2일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퀸스 파크 레인저스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시즌 잔여 기간 동안 오른쪽 수비수 또는 중앙 수비수 포지션에서 빠르게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퀸스 파크 레인저스는 강등권에 있었고, 다음 시즌 프리미어리그 잔류를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강등 싸움 중이던 4월 29일, 지역 라이벌 첼시와의 경기에서 지브릴 시세의 늦은 만회골을 어시스트했지만, 팀은 1-6으로 크게 패했다.
시즌 최종전(5월 13일)을 앞두고, QPR은 프리미어리그 잔류를 확정하기 위해 그의 전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최소 무승부를 기록하거나 볼턴 원더러스가 승리하지 못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누오하는 이 경기에서 자신의 전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하고 퀸스 파크 레인저스가 프리미어리그에 잔류하는 것을 동시에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그는 풀타임을 소화했으며, 맨체스터 시티는 퀸스 파크 레인저스를 3-2로 이겼지만, 볼턴이 스토크 시티를 이기지 못하면서 QPR은 프리미어리그에 잔류하게 되었다. 이는 오누오하의 예측과 일치하는 결과였다. 2011-12 시즌 동안 오누오하는 QPR에서 14경기에 출전했다.
2.3.2. 주장 임명 및 주요 시즌

2012-13 시즌 초, 오누오하는 오른쪽 수비수 또는 중앙 수비수 포지션에서 주전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시즌 동안 어머니의 암 투병으로 인한 특별 휴가와 자신의 부상으로 인해 1군에서 이탈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2년 12월 15일 지역 라이벌 풀럼과의 경기에서 복귀했으며, QPR이 2-1로 승리하며 시즌 첫 리그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다. 이후 1월 한 달간 첼시, 토트넘 홋스퍼, 웨스트 브롬위치 앨비언,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네 차례 무실점 경기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3년 4월 28일 레딩과의 0-0 무승부 이후 퀸스 파크 레인저스는 결국 챔피언십으로 강등되었다. 2012-13 시즌 종료 시점까지 모든 대회를 통틀어 26경기에 출전했으며, 그는 해리 레드냅 감독 체제에서 자신의 1군 자리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2013-14 시즌 개막전인 2013년 8월 3일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경기에서 구단 데뷔골을 기록했다. 이후 중앙 수비수 포지션에서 빠르게 주전 자리를 되찾았다. 8월부터 9월 중순까지 네 차례 무실점 경기에 기여했다. 그러나 9월 18일 브라이턴 앤 호브 앨비언과의 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두 달간 결장했다. 11월 9일 레딩과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하며 부상에서 복귀했지만, 다시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다. 3주 후인 12월 14일 블랙풀과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하며 복귀했다. 복귀 후 두 달간 리처드 던과 클린트 힐이 중앙 수비수로 선호되면서 1군을 오갔지만, 2013-14 시즌 잔여 경기에서는 영구적으로 선발 라인업에 복귀했다. 2014년 4월 12일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경기에서 부상 복귀골을 기록하며 팀의 5-2 승리에 기여했다.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서는 위건 애슬레틱과의 두 경기 모두 출전하여 합계 2-1 승리를 거두었다. 2014년 5월 24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더비 카운티와의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퀸스 파크 레인저스의 승격에 기여했다. 2013-14 시즌에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31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2014-15 시즌 초, 여름 이적 시장에서 영입된 새로운 선수들로 인해 1군에서 제외되고 주로 교체 명단에 포함되었다. 8월 24일 토트넘 홋스퍼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하며 시즌 첫 경기를 치렀다. 2014년 10월 5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하며 팀의 0-2 패배에 일조했다. 이후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몇 주간 결장했다. 11월 22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부상에서 복귀했다. 시즌 내내 1군을 오갔다. 12월 26일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올리비에 지루에게 박치기를 당했지만 경기를 계속 소화했다. 2월에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한 달간 결장했다. 3월 4일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부상에서 복귀했지만, 경기 도중 팀 동료 스티븐 콜커와 충돌하여 하프타임에 교체되었고, 팀은 1-2로 패했다. 5월 2일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두 번째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이어진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0-6으로 대패하며 두 번째로 챔피언십으로 강등되었다. 2014-15 시즌에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25경기에 출전했다.
2015-16 시즌을 앞두고 프리미어리그 구단들과 이적설이 있었으나 잔류했다. 여름에 팀을 떠난 조이 바턴의 뒤를 이어 구단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샬턴 애슬레틱과의 시즌 개막전에서 주장으로서 첫 경기를 치렀다. 리그컵 1라운드 요빌 타운과의 경기에서 QPR 소속으로 100번째 출전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에 기여했다. 2015년 9월 2일, 2018년까지 구단과 계약을 연장했다. 9월 16일 블랙번 로버스전에서 시즌 두 번째 골을 기록했고, 12월 3일 레딩전에서도 득점하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며 오른쪽 수비수와 중앙 수비수 포지션을 번갈아 소화했고, 주장으로서의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10월에는 리더십에 대한 비판을 받았으나 크리스 램지 감독의 신임을 얻었다. 11월 28일부터 12월 12일 사이에 세 차례 무실점 경기에 기여했다. 오누오하는 퀸스 파크 레인저스를 챔피언십 12위로 이끌며 시즌을 마감했다. 2015-16 시즌에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48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2016-17 시즌에도 주장직과 주전 자리를 유지하며 오른쪽 수비수와 중앙 수비수 포지션을 번갈아 소화했다. 시즌 개막전인 8월 7일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고 세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3-1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8월 20일 프레스턴 노스 엔드와의 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하며 팀의 0-2 패배에 일조했다. 다음 경기인 위건 애슬레틱전에서는 시즌 두 번째 골을 기록하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12월 27일 브라이턴 앤 호브 앨비언과의 경기에서 프로페셔널 파울로 퇴장당했다. 한 경기 출장 정지 후 2017년 1월 2일 입스위치 타운과의 경기에서 복귀했으며, 파벨 브조렉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프리미어리그 강등권에 있던 선덜랜드의 관심을 받았으나 잔류했다. 시즌 동안 "발 기술 부족"과 리더십에 대한 비판을 받았지만, 3월 18일 로더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시즌 세 번째 골을 기록하며 팀의 5-1 승리에 기여하며 비판을 불식시켰다. 시즌 초에는 승격을 목표로 했으나, 팀은 리그 18위로 마감했다. 조엘 린치는 오누오하와 그랜트 홀이 2016-17 시즌 동안 수비 개선에 기여했다고 칭찬했다. 이 시즌에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47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그는 PFA 커뮤니티 챔피언 어워드를 수상했다.
2017-18 시즌에도 주장직과 1군 주전 자리를 유지하며 시즌 대부분을 중앙 수비수로 활약했다. 2017년 9월 9일 입스위치 타운과의 경기에서 QPR 소속으로 200번째 출전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이어진 밀월과의 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하프타임에 교체되었고, 세 달간 결장하게 되었다. 부상 중 구단은 그와 새 계약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12월 9일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부상에서 복귀했으며, 이후 1군 주전과 주장직을 되찾았다. 2018년 4월 7일 헐 시티와의 경기에서 마르쿠스 헨릭센에게 프로페셔널 파울을 범해 경기 막판 퇴장당했으며, 세 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17-18 시즌 동안 17경기를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팀이 리그 16위로 시즌을 마치는 데 기여했다. 2017-18 시즌에 36경기에 출전한 후, 2018년 4월 27일 6년 반 동안의 QPR 생활을 마치고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그는 팀 동료들이 투표한 레이 존스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4. 레알 솔트레이크
오누오하는 2018년 9월 14일,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MLS)의 레알 솔트레이크에 입단했다. 그는 이 이적에 대해 "조금 다른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2.4.1. MLS 이적 및 선수 생활
2018년 9월 30일 스포팅 캔자스시티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하며 레알 솔트레이크 데뷔전을 치렀다. 이어진 10월 18일 뉴잉글랜드 레볼루션과의 경기에서 다미르 크라일라흐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4-1 승리에 기여했다. 그는 2018 MLS컵 플레이오프 3경기에 출전했지만, 팀은 스포팅 캔자스시티에 합계 3-5로 패하며 탈락했다. 2018 시즌에 그는 총 5경기에 출전했다.
2019 시즌에는 중앙 수비수 포지션에서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4월 29일 LA 갤럭시와의 경기에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누오하는 이브라히모비치가 경기 중 자신을 다치게 하겠다고 위협했으며, 그를 "오만하고", "무례하며", "완전한 폭력배"라고 비난했다. 7월 4일 콜럼버스 크루와의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으로 73분에 교체 아웃되었고, 이로 인해 한 달간 결장했다. 8월 10일 스포팅 캔자스시티와의 경기에서 후반 76분 교체 출전하며 부상에서 복귀했다. 한 경기 결장 후 9월 26일 LA 갤럭시와의 경기에서 레알 솔트레이크 데뷔골을 기록했지만, 팀은 1-2로 패했다. 오누오하는 팀이 2019 MLS컵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지만, 10월 24일 시애틀 사운더스 FC에 0-2로 패하며 탈락했다. 2019 시즌에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30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2.4.2. 은퇴
오누오하는 2020 시즌을 끝으로 프로 축구 선수 생활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오누오하는 잉글랜드와 나이지리아 양국에서 뛸 자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주로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3.1.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
오누오하는 7세에 영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태어난 나라인 나이지리아와 잉글랜드 양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뛸 자격이 있었다. 그는 이전에 잉글랜드 U-20 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2005년 10월 12일 데뷔한 이래로 잉글랜드 U-21 대표팀의 주전 선수였다.
3.1.1. 데뷔 및 주요 대회 참가
그는 2007년 네덜란드 UEFA U-21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스쿼드에 포함되었다. 오누오하는 체코 U-21과의 경기에서 무실점에 기여하며 (0-0 무승부) 대회를 잘 시작했다.
3.1.2. 인종 차별 사건 및 U-21 유럽 선수권
대회 도중 오누오하는 세르비아 팬들로부터 인종 차별적 욕설을 들었지만, 도발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여 찬사를 받았다. 경기 후 그는 자신이 겪은 인종 차별을 "끔찍했다"고 묘사했다. 그는 스티븐 테일러와 함께 중앙 수비수로 주전으로 활약했다.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전에서는 부상으로 절뚝이며 경기장을 떠났고, 이미 허용된 세 장의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한 잉글랜드는 10명으로 경기를 치렀다.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서 12-13으로 패배했다.
세 달 후인 2007년 9월 7일, 오누오하는 몬테네그로 U-21과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U-21 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3-0 승리). 그는 폴란드 U-21과의 0-0 무승부 경기에서 처음으로 잉글랜드 U-21 대표팀의 주장 완장을 찼다. 2009년 여름, 그는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으며, 이 대회가 그의 U-21 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오누오하는 2009년 6월 18일 스페인 U-21과의 경기에서 중앙 수비수로 출전하여 잉글랜드 U-21이 무실점을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 (2-0 승리). 그는 2009년 U-21 유럽 선수권 대회 준결승 스웨덴전에서 득점했으며, 승부차기 끝에 5-4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결승전 독일 U-21과의 경기에서는 4-0으로 패배한 잉글랜드 수비수로 선발 출전했다.
3.2. 나이지리아 및 잉글랜드 국가대표 선택
2007년 3월, 오누오하는 나이지리아로부터 국제 경기 소집을 받았지만, 잉글랜드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뛰는 것을 선호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그는 2008년 베르티 포크츠 나이지리아 감독이 200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출전을 제안했을 때, 당시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 교체로 인해 한 달간 국제 경기 차출로 팀 내 입지를 잃고 싶지 않아 기회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2022년, 그는 이 선택을 후회한다고 말했으며, 결국 성인 국가대표 경기를 뛰지 못했다.
2010년 2010 FIFA 월드컵에 나이지리아 대표로 소집되었다면 뛰었을 것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2009년 11월, 그는 "잉글랜드에서 뛰고 싶지만, 나이지리아 경기를 볼 때도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지금은 이렇게 큰 결정을 내릴 때가 아니므로, 당분간은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2016년에는 나이지리아 대표팀 소집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다고 언급했다.
4. 선수 경력 외 활동
오누오하는 축구 선수 은퇴 이후에도 다양한 미디어 활동과 사회 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4.1. 미디어 활동 및 앰버서더
그는 전 프로 축구 선수로서 ESPN의 축구 해설가(pundit)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2021년 10월에는 그의 전 소속팀인 맨체스터 시티의 커뮤니티 조직인 '시티 인 더 커뮤니티'의 이사회에 합류하며 커뮤니티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4.2. 자서전 및 팟캐스트
2021년 11월, 오누오하는 휴 페리스와 공동 집필한 자신의 자서전 Kicking Back의 출간을 발표했다. 이 책은 2022년 5월 바이백 퍼블리싱에서 출간되었다. 또한, 2019년 8월부터는 Kickback with Nedum이라는 제목의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자신의 경험과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5. 개인사
오누오하의 개인적인 삶은 가족, 특히 어머니의 영향과 투병 과정이 그의 경력과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5.1. 가족 및 어머니의 영향
오누오하의 어머니 안토니아 오누오하 박사는 그의 에이전트였다. 2011년 9월, 어머니의 암 투병 중 발생한 이메일 교환 사건으로 인해 당시 맨체스터 시티의 CEO였던 개리 쿡이 사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듬해 11월, 그의 어머니는 암으로 사망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오누오하는 그녀에게 헌사를 바치며 "어머니는 항상 제가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셨고, 어머니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계속 그렇게 노력할 것입니다. 제 남은 경력은 어머니의 추억에 바쳐집니다. 저는 계속해서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만들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매우 특별한 분이셨고, 아프실 때도 제가 축구를 그만두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2014년 4월, 그는 아내 루시 오누오하와의 사이에 딸 아마이아를 얻으며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었다.
6. 수상 및 업적
네덤 오누오하는 선수 경력 동안 소속팀과 개인적으로 여러 중요한 수상과 업적을 달성했다.
6.1. 팀 수상
- 퀸스 파크 레인저스
- 풋볼 리그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2014년 우승
- 잉글랜드 U-21
- UEFA 유럽 U-21 선수권 대회: 2009년 준우승
6.2. 개인 수상
-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영플레이어: 2004-05
- BBC 노스 웨스트 올해의 스포츠인상 신인 부문: 2005
- 맨체스터 시티 토마스 쿡 이달의 선수: 2009년 3월, 5월
- PFA 커뮤니티 챔피언 어워드: 2016-17
- 레이 존스 올해의 선수상 (팀 동료 투표): 2017-18
7.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FA컵 | 리그컵 | 기타 | 총합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맨체스터 시티 | 2004-05 | 프리미어리그 | 17 | 0 | 0 | 0 | 1 | 0 | - | 18 | 0 | |
2005-06 | 프리미어리그 | 10 | 0 | 1 | 0 | 1 | 0 | - | 12 | 0 | ||
2006-07 | 프리미어리그 | 18 | 0 | 1 | 0 | 0 | 0 | - | 19 | 0 | ||
2007-08 | 프리미어리그 | 16 | 1 | 2 | 0 | 3 | 0 | - | 21 | 1 | ||
2008-09 | 프리미어리그 | 23 | 1 | 0 | 0 | 0 | 0 | 7 | 1 | 30 | 2 | |
2009-10 | 프리미어리그 | 10 | 1 | 2 | 1 | 1 | 0 | - | 13 | 2 | ||
2011-12 | 프리미어리그 | 1 | 0 | 0 | 0 | 2 | 0 | 0 | 0 | 3 | 0 | |
총합 | 95 | 3 | 6 | 1 | 8 | 0 | 7 | 1 | 116 | 5 | ||
선덜랜드 (임대) | 2010-11 | 프리미어리그 | 31 | 1 | 0 | 0 | 1 | 0 | - | 32 | 1 | |
퀸스 파크 레인저스 | 2011-12 | 프리미어리그 | 16 | 0 | 0 | 0 | - | - | 16 | 0 | ||
2012-13 | 프리미어리그 | 23 | 0 | 2 | 0 | 1 | 0 | - | 26 | 0 | ||
2013-14 | 챔피언십 | 26 | 2 | 1 | 0 | 1 | 0 | 3 | 0 | 31 | 2 | |
2014-15 | 프리미어리그 | 23 | 0 | 1 | 0 | 1 | 0 | - | 25 | 0 | ||
2015-16 | 챔피언십 | 46 | 2 | 1 | 0 | 1 | 1 | - | 48 | 3 | ||
2016-17 | 챔피언십 | 44 | 3 | 1 | 0 | 2 | 0 | - | 47 | 3 | ||
2017-18 | 챔피언십 | 29 | 0 | 1 | 0 | 1 | 0 | - | 31 | 0 | ||
총합 | 207 | 7 | 7 | 0 | 7 | 1 | 3 | 0 | 224 | 8 | ||
레알 솔트레이크 | 2018 | MLS | 2 | 0 | 3 | 0 | - | - | 5 | 0 | ||
2019 | MLS | 27 | 1 | 3 | 0 | 1 | 0 | - | 31 | 1 | ||
2020 | MLS | 15 | 0 | 2 | 0 | - | - | 17 | 0 | |||
총합 | 44 | 1 | 8 | 0 | 1 | 0 | - | 53 | 1 | |||
커리어 총합 | 377 | 12 | 21 | 1 | 17 | 1 | 10 | 1 | 427 |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