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초반 및 학력
1.1. 유년기와 학창 시절
김승현은 인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축구 선수를 꿈꾸며 축구를 먼저 접했으나,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접하면서 농구로 종목을 바꿨다. 그는 서울 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학교 농구 프로그램 중 하나인 송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플레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인천산곡북초등학교와 송도중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종교는 불교이다.
1.2. 동국대학교 시절
김승현은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중앙대학교 등 이른바 '빅3' 대학 농구 프로그램 대신 동국대학교에 진학하며 스카우트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동국대학교 재학 시절, 그는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과 패스 기술로 KBL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동국대학교가 대학 농구 대회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플레이는 눈에 띄었다. 그는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2. 프로 선수 경력
김승현은 프로농구 선수로서 대구 동양 오리온스와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활약하며 KBL 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2.1. 대구 동양/오리온스 시절
김승현은 2001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 지명되었다. 드래프트 이전에는 그의 신장이 프로 무대 성공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고, 이는 그의 드래프트 순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보다 먼저 지명된 두 명의 선수는 모두 그보다 덜 성공적인 선수 경력을 보냈다.
그는 2001-02 시즌 동안 곧바로 주전 팀에 합류하여 54경기에 출전했다. 데뷔 시즌부터 리그를 압도하며 평균 12.2 득점과 8.0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 시즌 대구 동양 오리온스는 KBL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종료 후 김승현은 KBL 베스트 5에 선정되었고, KBL 최우수선수(MVP)와 KBL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전례 없는 위업을 달성했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김승현은 외국인 선수 마르커스 힉스와 국내 스타인 전희철, 김병철 등과 함께 오리온스의 공격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선수들의 강점과 화려한 기술을 결합하여 주목받는 팀이 되었다. 그러나 오리온스가 고양으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힉스와 전희철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면서 오리온스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이후 시즌들은 팀의 저조한 리그 성적과 반복되는 허리 부상으로 점철되었지만, 그는 추가로 3시즌 동안 어시스트 부문에서 리그 1위를 기록하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2.2. 계약 분쟁 및 이적
김승현은 2010년-11 시즌 전체를 출전하지 못했는데, 이는 그가 오리온스를 상대로 제기한 논란의 소송 때문이었다. 그는 연봉 인상을 조건으로 재계약을 협상 중이었으나, 구단 경영진의 변화와 KBL의 연봉 상한선 규정 변화가 겹치면서 의견 불일치가 발생했고, 이는 공개적인 논쟁으로 비화되었다. 새로운 경영진은 그가 요구한 금액이 너무 높고 그의 경기력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승현이 물러서지 않자, 구단은 어떤 법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의 계약을 무효화하려 했고, 김승현은 이에 맞서 구단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국내 농구 역사상 선수가 자신의 구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당시 김승현은 소속팀에서 뛸 수도,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도 없게 되면서 KBL은 그를 해당 시즌 선수 등록 명단에서 제외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했다. KBL은 이러한 조치가 실무적인 이유로 이루어졌다고 밝혔으며, 양측이 사적인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이 분쟁은 법정에서 장기적인 싸움을 벌이는 대신, 김승현과 구단 경영진이 모두 중재에 합의하면서 소송을 철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2009년 비시즌 연봉 조정 기간에 1.20 억 KRW 인상을 요청했으나, 활약이 미진했고 번복된 언행으로 인해 2009-10 시즌 18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2.3. 서울 삼성 썬더스 및 은퇴
소송이 마무리된 후, 김승현은 2011-12 시즌을 앞두고 서울 삼성 썬더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삼성에서의 마지막 선수 생활은 부상과 저조한 경기력, 그리고 삼성 썬더스의 부진한 리그 성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국내 농구는 더욱 수비 지향적인 경기로 변화했고,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선수들이 선호되면서 김승현과 같은 유형의 선수들은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그는 2013-14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팀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내린 후의 결정이었다.
3. 선수 스타일 및 특징
김승현은 KBL의 포인트 가드 포지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선수로 평가받는다. 그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과 기술적인 강점은 그를 동세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3.1.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 김승현은 리그에서 가장 작은 선수 중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스피드와 패스 기술로 명성을 떨쳤다. 심지어 현재 KBL 기준으로도 포인트 가드치고는 단신이었다. 국내 포인트 가드들이 주로 '패스 먼저, 득점 나중'이라는 경향이 강했던 시대에, 김승현은 높은 어시스트 평균을 유지하면서도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KBL 초창기 포인트 가드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득점과 어시스트에 기여하는 것 외에도, 자신의 스피드와 작은 신장을 활용하여 상대의 턴오버를 유발하는 데 탁월했다. 이는 그가 4시즌 동안 스틸 부문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2004-05 시즌에는 평균 10.5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역대 단일 시즌 평균 어시스트 최고 기록을 세웠다.
3.2. KBL 포인트 가드 계보에 미친 영향
김승현은 김낙현, 허훈과 같은 젊은 세대의 득점 지향적인 포인트 가드들이 국내 농구계에서 더 잘 받아들여지는 길을 열었다. 그의 등장은 KBL 포인트 가드 포지션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으며, 단순히 경기를 조율하는 것을 넘어 직접 득점에 가담하고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공격적인 포인트 가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의 플레이는 후배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KBL에 보다 역동적이고 다재다능한 포인트 가드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4. 은퇴 후 활동
농구 선수 은퇴 후 김승현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4.1. 해설 경력
김승현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스카이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농구계에 복귀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 KBL 경기를 중계했다. KBL 중계 방송사가 SPOTV로 변경된 이후에도, 그는 2019년부터 SPOTV로 자리를 옮겨 해설위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4.2. 방송 출연
김승현은 선수 은퇴 후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2015년에는 MBC의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의 고정 출연진으로 활약했다. 2016년에는 XTM의 농구 예능 프로그램 REBOUND에 출연했으며, 2017년 2월에는 MBC의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99회에 '지구 한바퀴 땅부자'라는 가명으로 참가하여 노래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5. 개인 생활
김승현은 2018년 5월 배우 한정원과 결혼했다. 그러나 2021년 11월 두 사람은 이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한정원은 언론을 통해 서로 친구로 남기로 했으며, 상호 합의 하에 이혼했음을 밝혔다.
6. 수상 및 영예
김승현은 프로 선수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주요 수상 기록과 영예를 얻었다.
연도 | 수상 내역 | 비고 |
---|---|---|
2002 |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 대구 동양 오리온스 |
2002 | KBL 정규리그 우승 | 대구 동양 오리온스 |
2003 | KBL 정규리그 우승 | 대구 오리온스 |
2002 | KBL 최우수선수(MVP) | |
2002 | KBL 신인상 | |
2002 | KBL 베스트 5 | |
2004 | KBL 베스트 5 | |
2005 | KBL 베스트 5 | |
2006 | KBL 베스트 5 | |
2002 | KBL 어시스트상 | |
2002 | KBL 스틸상 | |
2002 | 부산 아시안 게임 농구 남자 국가대표팀 금메달 | |
2002 | 부산 아시안 게임 농구 남자 부문 MVP |
7. 논란과 비판
7.1. 이면계약 논란
김승현은 선수 경력 중 대구 오리온스와의 계약 문제로 큰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09년 비시즌 연봉 조정 기간에 그는 연봉 1.20 억 KRW 인상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과 번복된 언행으로 인해 2009-10 시즌 18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후에도 구단과의 갈등은 지속되어, 김승현은 2010-11 시즌 전체를 출전하지 못했다. 그는 오리온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는 국내 농구에서 선수가 자신의 팀을 상대로 법정 소송을 제기한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구단 측은 김승현이 요구하는 연봉이 너무 높고 그의 경기력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김승현이 물러서지 않자 계약 무효화를 시도했다. 이에 KBL은 김승현을 해당 시즌 선수 등록 명단에서 제외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했다. KBL은 이러한 조치가 실무적인 이유라고 설명하며, 양측이 사적인 합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김승현은 구단과의 길고 긴 법정 다툼을 피하기 위해 중재에 합의하며 소송을 철회했고, 이후 서울 삼성 썬더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사건은 KBL에 선수의 계약 권리와 구단의 운영 자율성 사이의 복잡한 문제를 제기하며 상당한 파장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