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권근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격변기에 활동하며 학문적 깊이와 정치적 역량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1.1. 출생 및 성장 배경
권근은 1352년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안동 권씨이다. 그의 가문인 안동 권씨는 고려 시대에 매우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다. 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 또는 사숙(思淑), 호는 양촌(陽村),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그의 호인 양촌은 그가 고려 말 충주로 유배되었을 때 고을 남쪽 양촌이라는 마을에 살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색이 지은 양촌기(陽村記)에 따르면 그 이전부터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의 증조부는 권부이며, 할아버지는 권고(權皐), 아버지는 검교 정승을 지낸 권희(權僖, 1319~1405)이다. 어머니는 한양 한씨(漢陽 韓氏, 1315~1398)이다.
1.2. 교육 및 초기 경력
권근은 일찍이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이색의 수제자인 정몽주의 문하에서도 학문을 배웠다. 그는 17세인 1368년(공민왕 17년)에 성균시에 합격하였고, 18세인 1369년(공민왕 18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검열에 임명되었다. 이후 1374년(공민왕 23년)에는 성균관 직강(直講)과 예문관 응교(應敎)를 지냈다. 또한,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6년간 체류하며 그곳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성균관대사성, 지신사(知申事) 등을 역임하였다. 1388년(창왕 1년)에는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이은(李垠) 등을 선발했다.
1.3. 고려 말 정치적 활동과 유배
권근은 공민왕이 죽은 후 정몽주, 정도전 등과 함께 원나라를 배척하고 명나라와 친교를 맺는 배원친명(排元親明) 정책을 강력히 주장했다. 1389년(창왕 2년)에는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使)에 올라 문하평리 윤승순과 함께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그러나 당시 공양왕이 즉위하면서 명나라에서 가져온 문서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유배되었다. 이때 그는 창왕의 외조부인 이림(李琳)의 일파로 몰려 극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으나, 이성계의 구원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는 이색의 일파와 함께 청주옥(淸州獄)에 갇혔다가, 마침 발생한 큰 수해를 하늘의 징조로 여겨 용서받고 익주(益주)로 옮겨졌다. 유배 중에도 학문 연구에 매진하여 《입학도설》을 저술하였다. 또한 그는 이성계의 등극을 막기 위해 명나라에 이를 알리는 등 고려 왕조에 충성하는 파벌의 활동에 관여하기도 했다.
1.4. 조선 왕조에서의 활동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이성계는 권근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새 왕조에 협력하도록 설득했다. 1396년 태조는 이천시 율면 산성리 정문말에 권근을 찾아와 임금님 바위에서 권근과 정치적인 담론을 하였고, 조선 왕조에 협조를 거부하던 권근은 절의를 굽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새 왕조에 협력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도전 일파의 견제로 인해 그의 역할이 미미했으나,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과 그의 동료들이 제거된 후부터 권근은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학자로 부상했다.
1393년(태조 2년)에는 정총과 함께 정릉의 비문을 지었고 중추원사(中樞院事)가 되었다. 1396년(태조 5년)에는 명나라 홍무제가 조선에서 보낸 글(찬표)의 문장을 문제 삼아 작성자인 정도전을 잡아들이라고 요구했을 때, 권근이 자진하여 명나라에 가서 해명하여 극진한 예우를 받고 돌아왔다. 귀국 후에는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으로 화산군(花山君)에 봉군되었다.
정종 시기에는 정당문학(政堂文學) 겸 대사헌(兼大司憲),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部事) 등을 역임했다. 1401년(태종 1년) 이방원이 즉위하자 좌명공신의 호를 받고 길창군(吉昌君)에 피봉되었다. 그는 사병 혁파를 주장하며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했고, 대명 관계 개선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후 찬성사(贊成使)를 거쳐 대제학에 이르렀으며, 검열로부터 재상에 이르기까지 항상 문한(文翰) 관련 직책에 임명되었다. 1407년에는 조선 최초의 문과 중시(重試)에서 독권관(讀卷官)이 되어 변계량 등 10인을 선발했다.
2. 학문과 사상
권근은 조선 초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하고 그 학문적 깊이를 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1. 성리학 수용 및 발전
권근은 고려 시대에 불교가 지배적이었던 시대를 지나 조선 왕조의 여명기에 활동하며 주자학적 성리학을 한국에 소개하고 보급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조선의 새로운 지배 이념으로서 성리학의 정당성을 제공하고, 조선 문인들의 사상적 틀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저술들은 후대 성리학자들의 학문적 기반이 되었다.
2.2. 주요 저술 및 학문적 업적
권근은 다작의 학자였으며, 문학적 능력과 경학(經學)에 대한 깊은 이해를 겸비하여 이 두 분야를 조화롭게 발전시켰다. 그는 고려 시대의 많은 공문서들을 작성하기도 했다.
- 《입학도설》 (入學圖說): 그의 성리학 저술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유배 중이던 1390년, 학문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찾아온 학생들을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한국 최초로 그림을 사용하여 학문의 원리를 설명한 서적으로, 후일 이황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경학 주석서 (經學註釋書): 이색의 위임을 받아 예기에 대한 주석서인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을 저술했다. 그는 이 책의 내용을 재정리하고 자신의 주석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 학자들의 주석도 추가했다. 이 작업은 1391년에 시작되어 1404년에야 완성되었다. 아쉽게도 다른 경전에 대한 그의 주석서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 예론(禮論)과 사회 질서 : 권근은 예(禮)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키고 사회 질서 유지에 있어 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악학궤범의 원전이 되는 악서를 재정리하여 앞부분을 원전으로, 뒷부분을 주석으로 구성했다.
- 불교 비판 : 그는 여러 불교 비판 서적을 저술하는 데 기여했으며, 특히 정도전의 《불씨잡변》(佛氏雜辨) 서문을 작성했다. 또한, 백성들의 불안한 영혼을 달래기 위한 제사 의례의 표준화에도 공헌했다.
- 문학적 업적 : 그는 문학에도 뛰어나 《태종》의 즉위 교서인 '수선교서(受禪教書)'를 작성하기도 했다.
3. 저서
권근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 《양촌집》(陽村集) - 그의 문집으로, 호를 따서 명명되었다.
- 《입학도설》(入學圖說) - 학문 입문을 위한 그림과 설명이 담긴 책.
-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 - 예기에 대한 주석서.
-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 - 오경에 대한 얕은 견해를 담은 책.
- 《사서오경구결》(四書五經口訣) - 사서삼경에 대한 구결(口訣)을 담은 책.
- 《권학사의팔조》(勸學事宜八條) - 학문 권장에 관한 여덟 가지 조항.
- 《동국사략》(東國史略) - 동방(한국)의 역사를 간략히 기록한 책.
- 《대간직임사목》(臺諫職任事目) - 대간(臺諫)의 직무에 대한 사목.
- 《상대별곡》(霜臺別曲) - 문학 작품.
- 《응제시》(應題詩)
- 《동현사략》(東賢事略)
4. 가계 및 후손
권근의 가계는 다음과 같으며, 그의 후손 중에는 조선 시대의 저명한 인물들이 많다.
- 증조부: 권부(權溥, 1262년~1346년)
- 증조모: 시령 류씨(始寧柳氏), 류승(柳陞)의 딸
- 할아버지: 권고(權皐)
- 아버지: 권희(權僖, 1319~1405), 검교 정승
- 어머니: 한양 한씨(漢陽 韓氏, 1315~1398)
- 동생: 권우(權遇, 1363~1419) - 세종의 스승
- 부인: 숙경택주 경주 이씨(淑敬宅主 慶州 李氏, ?~1423) - 이존오(李存吾, 1341~1371)의 딸
- 아들: 권제(權踶, 1387~1445)
- 며느리: 이씨(李氏) - 이준(李儁)의 딸
- 손자: 길창부원군 권람(權擥, 1416~1465)
- 손자: 권우(權愚)
- 아들: 권규(權跬, 1393~1421)
- 며느리: 경안공주(慶安公主, 1393~1415) -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딸
- 손자: 권담(權聃)
- 손자: 권총(權聰, 1413~1480)
- 딸: 안동 권씨
- 사위: 이종선(李宗善)
- 외손자: 이계주(李繼疇)
- 외증손자: 이개(李塏, 1417~1456) - 사육신 중 한 명
- 딸: 안동 권씨
- 사위: 서미성(徐彌性)
- 외손자: 서거정(徐居正, 1420~1488) - 조선 최초의 양관 대제학
그 외에 권황후와 권중귀는 권근과 5촌 관계이다.
- 아들: 권제(權踶, 1387~1445)
5. 평가 및 영향
권근은 조선 초 성리학의 확립과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기에 활동하며, 새로운 왕조의 이념적 정당성을 제공하고 조선의 지성사적 틀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주자학적 성리학을 한국에 도입하고 보급하는 데 선구자였으며, 그의 저술들은 후대 성리학자들의 중요한 학문적 기반이 되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입학도설》은 한국 최초로 그림을 활용하여 학문의 원리를 설명한 책으로, 당시의 학문적 수준을 보여주며 후대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특히 조선 중기의 위대한 성리학자인 이황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권근은 이색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그의 동문으로는 그의 동생 권우와 길재 등이 있다. 그의 학문적 계보는 백이정, 안향으로부터 이제현, 이색으로 이어지는 고려 성리학의 정통을 계승하며, 다시 정몽주, 이숭인, 정도전 등을 거쳐 권근 자신에게로 이어진다. 권근의 학문은 이후 권우를 통해 세종대왕과 정인지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길재를 통해서는 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져 김굉필, 조광조, 이이(율곡) 등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또한 김종직의 학통은 성수침, 성혼(우계), 이연경, 김안국, 김정국, 이심원(주계부정), 김일손, 김전, 남곤 등 수많은 후대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성리학에 대한 깊은 조예뿐만 아니라 문장에도 능하여 경학과 문학의 양면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6. 대중 문화 속 모습
권근은 조선 건국과 관련된 역사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 《용의 눈물》(KBS 1TV, 1996년~1998년, 배우: 이정웅)
- 《정도전》(KBS 1TV, 2014년, 배우: 김철기)
- 《육룡이 나르샤》(SBS, 2015년~2016년, 배우: 양현민)
- 《태종 이방원》(KBS, 2021년~, 배우: 김영기)
7. 관련 항목
- 권중귀
- 권황후
- 정도전
- 조준
- 이성계
- 정몽주
- 권우
- 남은
- 역성혁명파
- 신진사대부
- 이방원
- 양촌집
- 음성 권근 및 경주이씨 묘표
- 성리학
- 조선
- 고려
- 안동 권씨
- 성균관
- 문과
- 사육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