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곤노 아키쓰구는 일본의 스키점프 선수로서 유년 시절부터 선수 경력, 그리고 은퇴 후의 삶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1. 출생 및 유년 시절
곤노 아키쓰구는 1944년 9월 1일 홋카이도 삿포로시 니시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스키점프를 시작하며 어린 시절부터 이 스포츠에 대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외가 쪽 혈연 중에는 오쿠라야마 점프 경기장의 초대 바켄 레코드(점프 비거리 기록) 보유자인 하마 겐지가 있어, 스키 점프에 대한 가족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1.2. 학력 및 초기 경력
곤노는 북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니혼 대학에 진학하여 스키 활동을 이어갔다. 대학 스키부에서는 감독 야기 유시로의 지도를 받으며 기량을 향상시켰다. 대학 졸업 후에는 홋카이도척식은행에 입사하여 실업 선수로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3. 선수 경력
곤노 아키쓰구는 여러 국제 대회에 참가하며 일본 스키 점프의 주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올림픽에서의 활약은 그의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으로 평가받는다.
1.3.1. 1968년 그르노블 올림픽
곤노는 1968년 2월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열린 1968년 동계 올림픽에 일본 국가대표로 처음 출전했다. 당시 그는 노멀힐 개인전(70m급)에서 24위, 라지힐 개인전(90m급)에서 20위에 머물렀다. 4년 뒤 삿포로 동계 올림픽 개최가 예정되어 있던 일본은 이 대회에 당시 역대 최대 규모인 62명의 선수단을 파견했으나, 메달은 물론 모든 종목에서 6위 이내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운 결과를 기록했다.
1.3.2. 1972년 삿포로 올림픽
1972년 고향인 삿포로에서 열린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은 곤노 아키쓰구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대회였다. 그는 노멀힐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대회에서 일본은 가사야 유키오가 금메달, 아오치 세이지가 동메달을 획득하며 일본 선수 3명이 시상대를 독점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고, 이들은 '日の丸飛行隊히노마루 히코타이일본어'(일장기 비행대)로 불리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곤노는 일본 선수 중 가장 먼저 점프하여 뛰어난 비거리를 선보이며 '日本の切り込み隊長니혼노 키리코미 다이초일본어'(일본의 선봉장)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라지힐에서는 12위를 기록했다.
1.3.3. 1976년 인스브루크 올림픽
곤노는 197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1976년 인스브루크 동계 올림픽의 일본 대표팀 예비 명단에 선발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노멀힐과 라지힐 모두 4명의 출전 선수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1.3.4. 점프 스타일 및 별명
곤노 아키쓰구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고 날카로운 점프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의 키는 162 cm에 몸무게는 53 kg으로 스키 점프 선수치고는 작은 편이었지만, 도약(사츠)의 타이밍과 힘이 매우 뛰어나 'カミソリサッツ카미소리 사츠일본어'(칼날 같은 도약)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러한 스타일은 그가 큰 점프를 성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4. 은퇴 후 활동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후, 곤노 아키쓰구는 스키 점프계를 떠나 홋카이도척식은행의 영업 사원으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1998년 1월 6일 삿포로시에서 시작된 동일본 성화 봉송의 첫 주자로 나서며 올림픽 정신을 이어갔다. 또한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이가야 지하루, 가사야 유키오, 기타자와 요시히로, 나가쿠보 하쓰에, 오타카 유코, 하시모토 세이코, 야마모토 히로미와 함께 8명의 기수단으로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하여 올림픽의 상징적인 인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2. 개인사
곤노 아키쓰구는 1944년 9월 1일 삿포로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외가 쪽에는 오쿠라야마 점프 경기장의 초대 바켄 레코드 보유자인 하마 겐지가 있었다. 선수 시절 그의 신체적 특징은 162 cm의 키와 53 kg의 몸무게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3. 사망
곤노 아키쓰구는 2019년 9월 5일 홋카이도 삿포로시의 한 병원에서 향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원인은 하인두암으로 알려졌다.
4. 평가 및 영향
곤노 아키쓰구는 일본 스키 점프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고향에서 열린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가사야 유키오, 아오치 세이지와 함께 일본 선수들의 시상대 독점을 이끌어내 '日の丸飛行隊히노마루 히코타이일본어'라는 상징적인 별명을 탄생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는 일본 동계 스포츠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그의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カミソリサッツ카미소리 사츠일본어'로 불릴 만큼 날카롭고 인상적인 점프 스타일은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은퇴 후에도 나가노 동계 올림픽 성화 봉송과 개막식 기수단 참여를 통해 올림픽 정신을 알리는 데 기여하며 스포츠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